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도 덥고 밥하기가 귀찮아져 점심은 온 가족이 라면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잠이 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좀 부은 느낌이다. 잠들기 전에 읽은 이 책을 꺼내들어 마저 읽었지만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끼를 가볍게 때운 나와는 달리 요리사로 요식업계에 발을 디딘 주인공 모로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더 이상 먹지 않을 때까지 이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로가 오랫동안 한 식당에 머문다거나, 자신의 식당을 열어 끝까지 지킨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 날 요리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그가 한 경험들은 정말 그가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모로의 목소리가 아닌 그의 변화를 지켜보는 시선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피로와 끝을 알 수 없는 요식업의 세계가 뭔지 모를 불안감을 내밀었다.


이 직업의 가장 커다란 폭력은, 아시겠지만, 가장 커다란 폭력은 이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리는 우리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우리 삶까지도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 74쪽

모로가 경험한 주방에서도 그런 피로를 목도했다.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우리 삶까지도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로가 경험해 나가는 것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식당을 열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그가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해 4년의 시간을 버텨냈을 때, 직업의 폭력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그가 식당을 처분하고 방랑자가 되어 아시아로 건너가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와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식당을 연다고 했을 때, 자신의 삶을 한 방향으로 두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난 삶을 원해요. 131쪽

모로의 동선만 지켜봐도 그가 얼마나 보통의 삶에서 멀어진 시간들을 견뎌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건 모로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정체되고 고이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을 뒤집고, 뒤집어서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여겨졌다. 그러한 과정이 있기에 모로가 앞으로의 이 길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길 바랐다. 그가 새로 계획하고 있는 식당이 그러하듯 그가 다양한 곳에서 쌓은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그동안 본 적 없는 창조적인 식당이 되기를 말이다.

그래서 모로의 이야기를 다 읽었음에도 끝을 보지 못한 기분이 든 것이다. 내가 점심을 먹고 배가 불러 잠이 든 후에 또 저녁거리를 걱정하듯, 우리의 삶도, 그 안에 내려야 하는 수많은 선택도, 끝이 없는 반복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 반복을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모로처럼 홀가분하게 떠나고 되돌아오고 경험을 쌓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종종 되돌아보고 작은 변화를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반복에서 오는 안락함을 경험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