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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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모르지만 내 책 꽃이에 꽂혀 1년이 넘도록 있었던 책일 것이다.

한달에 한권 정도 읽자고 다짐해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게 종교 서적인 것 같다.

그런 책을 보다 못해 꺼내들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편하게 읽어서 어리둥절 할 정도다.

 

성경구절이 많아서인지 매주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말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형통이 무엇인가..

그 형통을 어떻게 보존하고 퍼트릴 것인가...

성경속의 인물들의 예시를 통해 현실에서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형통! 형통!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만 믿고 따랐기에 그 믿음에 의심을 갖지 않고 기만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예시들만을 늘어 놓았다면 자칫 흘려들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대입할 것인지를 예견해 주기에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원하던 형통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세상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따로 따로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서의 형통 교회 안에서의 형통을 나는 따로 따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늘 일치되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변화하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교회 밖과 안에서의 불일치를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며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관대했던게 사실이였다. 그런 불일치가 만들어 지기에 일관성 없는 믿음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런 일관성 없는 믿음의 주역에 내가 있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주님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충만한 나의 모습 긍정적이고 환하고 밝은 모습을 갖고 싶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일치를 분리해 가고 있었다.

형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

아니 형통이 무엇인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형통을 이루었던 성경속 인물들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와 가장 큰 차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였다.

오로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그것 밖에는 없었다.

과연 나는 그들의 믿음을 본받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한없이 부끄러워 진다.

형통을 말하기 전에 나의 믿음부터 점검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인가를 실행하는 믿음...

그게 가장 이상적인 믿음일테다.

성경에 대한 지식을 잘 모르더라도 내가 알아가는 것들을 실천하는 믿음.

그럴때에 자연스레 성경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생길걸로 믿고 지금껏 방심해 왔지만 이젠 진정으로 내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때 내가 형통을 만들어 가고 있을것이고 나에게도 내가 느낄 수 있는 형통이 내려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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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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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꽃' 을 읽고 단박에 김영하님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김영하님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검은꽃' 이후로 장편이 나오지 않아 내심 기다리고 있던 차에 '빛의 제국'이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로 구입하고 읽었는데 나는 잠시 멈칫 해진다.

책을 읽은 느낌을 쓴다는게 애매해지고 난해해지는 느낌이다.

민감한 남북관계의 묵직함 때문일까?

아니면 '검은 꽃'의 여운을 떨쳐버리지 못함이였을까?

그 어떤것도 이 느낌의 잔상이 아니라는걸 인정하지 못한채 나는 그렇게 빛의 제국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남자가 있다.

남파간첩으로 내려왔지만 활동이 없었던 10년만의 메세지가 귀환이라니...

이미 자신에게 연결된 선도 끊어졌고 자신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그였다.

그는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할지를 모른다.

북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이대로 남아야 하는지,아니면 제 3국으로 도망을 칠것인지, 혹시 숙청 되는 건 아닌지 수많은 고민과 걱정속에 아무런 결정을 못하는 가운데 그려진 하룻동안의 이야기다.

책이 두꺼운 반면 쉽게 읽혀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자꾸 미련이 남았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생각하게 되고 서서히 다가가는 결론에 조바심이 날법도 한데 오히려 결론을 만나고 싶지 않은채 이대로 머무르고 싶은 느낌들이 밀려왔다.

기영이 선택한 결론의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난 두려웠다.

그래서 자꾸 기영의 주변을 멤돌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의 아빠, 자기만의 일을 가지고 있고 애정이 깊진 않지만 아내도 있는 평범한 생활의 연속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간첩이고 이젠 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족에게 말했을땐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결국 딸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부득이 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내 마리는 냉담하다. 과연 15년동안 살을 섞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을 직시하며 젊은 애인과의 정사를 드러내고 난 이런 여자라고 말하는 아내.

그는 배신감 보다 혼란스럽다.

그런 아내를 보아도 도무지 어떠한 결정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하룻동안의 시간속에 오로지 자신의 결정만이 모든걸 뒤집을 수 있었을 상황임에도 기영은 결국 좁은 선택의 폭 속에서 갇히고 만다.

책의 끝을 맞이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만나고 마는 결론은 조금은 허무했다.

그가 하루종일 용을 쓰고,머리를 굴리고,정보를 모으고 고민하던 과정을 봐왔기에 기영이 당면하게 되는 위기와 결론은 팽팽한 풍선이 바람이 빠지는 듯한 허무였다.

기영은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리도 알아버렸고 이제 자신의 존재를 알아버린 정보기관이 있는한 그 전의 평범은(간첩이라는 사실을 덮어두더라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평범을 가장한 평범을 연출해야 할지도 모르겠기에 그는 제 3의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단 하룻동안의 이야기라고 하기에 속도감을 기대했던것도 사실이였다.

하루라는 시간속에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만나리라 기대하며 펼친 빛의 제국은 하루라는 시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긴박함 속에 수많은 것을 펼쳐놓은 하루가 아닌, 하루이면서 10년 20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이런 느낌의 가운데에는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분단의 역사가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민족의 비애가 현실속에 때로는 무덤덤하게 때로는 실감나게 다가와서 넘어가면서도 찜찜한 느낌들이 담겨 있었다.

기영이 남파하던 80년대와 2000년대는 분명 차이가 나지만 분단의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에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졌을뿐 그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그런 무게감이 짓눌렀는지도 모르겠다.

 

저자 또한 긴박하게 흘러감이 아닌, 절제가 보였기에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무게감이였다.

한층 더 묵직하고 신중하게 다가온 빛의 제국은 저자의 다음 작품에서의 노련함을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는 아쉬움을 담고 있었지만 진보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한 작가의 그런 과정을 만끽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기에 기꺼이 동참하려고 한다.

저자가 바라보고 향하는 방향으로의 동행이 그래서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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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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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이 생각났다.

비슷한 양상이면서도 다른 느낌을 자아냈기에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으나 그 책을 읽을때는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라 무척 지루한 기억이 난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방대한 분야의 함축된 지식들이 넘쳐나 시원스레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낯선 국외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라서 그런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팩션이라는 장르는 국내 작품보다 국외 작품을 더 많이 접했고 흐름이 무척 빨라 이 책도 쉽게 읽힐거라 생각하고 조금은 가볍게 봤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쉽게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저자의 노력과 노고가 구석 구석 배어 있어 자연스레 책을 자세히 읽으려고 했고 내게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저자가 이걸 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었다.

저자는 오랜시간 준비하고 많은 수정을 걸쳤다고 했다.

글이란게 참 신기해서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느낌으로도 스르르 묻어 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책이라고.

그리고 국외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사건을 해결해 가고 비밀을 풀어가는 가운데 거대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미 모든것은 드러났고 모든것은 예견되어 있어 결과는 차분했다.

집현전 학자의 계획적이고 비밀이 담겨있는 살인에서 발견되는 지식은 거대했다.

단순히 속국으로서의 자체적인 글자, 훈민정음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숨은 뜻은 무궁 무진했다.

비밀을 풀어가는 겸사복 강채윤이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 비상함, 끈질기면서도 탐구적인 그의 태도를 따라가지 못해 어질할 정도였지만 독자에 가까운 강채윤이란 인물은 사건을 해결하기에는전형적인 인물이였다.

강채윤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최고의 지식의 샘터 집현전 학자들의 학문을 어찌 따라갈 것인가.

따라오라는 이끔이 아닌 설명하고 전파하는 지식이였지만 어려웠다.

그런 지식을 사대부들만 습득하고 있으니 그 고립은 어떠할 것인가.

세종은 그런 편견과 권위주의를 타파해서 다양한 인재등용을 하고 백성들의 설움과 비애를 없애고자 한글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비밀스러워야 했고 수없는 시간을 투자하고 인내를 겪어야 했고 엄청난 인재손실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추진해 간다.

진정 백성을 생각하고 미래를 꾸릴 줄 아는 인에서 나온 처사이리라.

그래서 그렇게 힘겹게 한글을 만든 것이다.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받친 사람들은 얼마나 많으며 그러한 프로젝트를 막으려 명나라까지 끌어들이며 막으려는 이들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부와 명성, 권력을 쥐고 안주하기 위해 왕의 목숨까지 노리는 이들은 어떠한 이들이였을까? 어느 세대나 그런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 또한 훈민정음을 만드려는 세종대왕과 학자들 만큼이나 끈질기고 집요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을 알기에 그들의 음모 또한 처절하다.

속국으로써의 자체적인 글자 반포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마는 가장 강력한 적은 늘 가까이 있는 법이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우리의 글자, 그리고 모두가 읽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기에 그 과정과 마음은 감동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부분에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글자를 만드려는 의의와 노력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이 작품에서 그것 하나만 깊이 느끼더라도 내가 느끼었던 난해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것이라 사려된다.

 

누구나 글을 읽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세종대왕과 수 많은 학자들은 노력하고 이루고자 했다. 그러했기에 수 많은 역경을 거치며 지금까지 한글은 우뚝 솟았다.

그러나 한글을 쓰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자,영어,식민지시절의 일본어까지 수많은 언어가 통용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 언어들이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속에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한자나 당연시 되는 영어나 세계화 시대를 맞이 한 우리들은 그 언어의 습득이 지식의 한 단계 상승한듯한 이미지 속에, 또한 사회에서 그렇게 요구하기에 익히지 않을 수가 없다.

한글날과 그러한 역사는 형식적으로 기억할 뿐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히 하지 못한게 현 실정이다.

새로운 구성과 시대적 배경이 짙게 우러나오는 탁월한 언어로 씌어지고 수많은 지식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치밀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이 책은 단순한 우리의 글자 훈민정음 창제가 아닌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면 할수록 짙게 배어나는 여운과 의의는 현재의 나를 잊을 정도였다.

또한 짧은 어휘력과 감성이나마 이렇게 느낌을 남길 수 있게, 글로 남길 수 있게 우리만의 글자를 남겨주신 선조들의 노고와 뜻이 이렇듯 뿌듯할 수가 없다.

이러한 한글을 지켜가고 가꾸어 가고 아름답게 쓰며 다음 세대에 남겨주는 일은 지금껏 해왔듯 이젠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글자와 언어를 흐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좋은 말, 예쁜 말, 깨끗한 글자를 쓰는 것이 어찌 그 지킴의 일부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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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장태호 지음 / 종이심장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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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내내 시골집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책을 읽었다.

푸른 하늘이 제대로 펼쳐진 가을의 언저리에 이런 여유를 누리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너무나 좋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이 책 속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하늘은 어디나 비슷해서 낯섬이 덜할 것 같으면서도 그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하늘을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황량할 것 같은 대륙을 닮아 하늘도 황량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케이프 타운의 하늘은 더 푸르렀다.

 

내가 생각했던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일까.

가난과 억압과 고통의 대륙이라는 인식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아름다운 자연은 그들에게 사치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여행하면서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들에게 사치가 아닌 케이프 타운을 차지해 버린 백인들에게(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이면서 확실히 백인들의 도시였다.)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기꺼이 그 사치를 누려보고 싶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케이프타운은 이상적인 도시였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지만 북적 대지 않는 곳. 그리고 여유와 고독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곳.

사진속의 케이프타운은 그래 보였다.

늘 유럽을 갈망하던 나는 단박에 케이프타운으로 마음을 돌려 버렸다. 유럽처럼 무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구경거리는 부족할지라도 케이프타운은 자연과 가까운 도시, 그래서 자연스럽고 숨통이 틔이는 도시였다. 그래서 저자의 소소한 경험담들은 이미 내 마음속에 케이프타운을 상상하기에 충분해 졌고 갈망하고 있었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이 구별되지 않는 시그널 힐에 서서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고 아틀란티스 샌듄에서 모레 스노보드를 타고 셋지 필드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희망봉에 올라 나의 희망을 꾸려 보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케이프 타운을 꿈꾸고 있었다.

하루 종일 널부러져 책을 읽을 수 있고 다리가 아프도록 아름다운 자연 속을 산책하고 혹여 저자처럼 무서운 펭귄들을 만나더라도 아프리카의 펭귄 구경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상상이나 했는가. 남아공의 펭귄을?)

한없이 평화로워지고 순조로워지는 시간이였다.

케이프타운의 하늘을 볼수 없다면 고개를 들어 그와 비슷한 한국의 푸른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던 시골의 마당은 그대로 케이프타운에 닿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런 편안함을 즐기게 해주었던 요인중 하나는 저자의 글이였다.

멋을 내지도 않고 숙련도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늘 내가 하는 생각, 늘 내가 품는 마음과 비슷한 언어를 토해내고 있었다.

스스로 감상에 젖고 스스로 케이프 타운에 빠진 모습을 보면 내가 거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기에 충분했다.

미흡함이 아닌 나와 비슷한 혼을 가졌다고 할까...

저자의 소박함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랬기에 케이프타운의 여행을 마치면서도 아쉬움이 들거나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책을 펼치면 볼 수 있듯이 케이프타운은 그냥 그렇게 있어 줄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든 케이프타운을 만나 여행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향한 펭귄의 방문을 기꺼이 반갑게 맞아줄까.

 

하늘...

그 오묘한 하늘을 기억하고 있을께.

부디 나를 마중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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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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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아갔고, 흘렀으며, 다시 돌아왔다.

19세기 말의 그녀가 어떻게 일본, 프랑스, 탕헤르(모로코)를 여행하며 어떻게 조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도 궁녀의 신분으로. 그녀의 삶의 행적을 좇자면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랑이 모든걸 이겨내 주었을까?

리심에겐 사랑이 그래주질 못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맏았지만 오히려 그려는 배꽃이 되어 하늘 하늘 흩뿌려 진다.

 

그녀의 마지막 행위를 나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이였다기 보다 그녀가 견디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였다고 본다. 그래서 많은 부분 아쉬움이 들고 허망하였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마음은 슬픔이였다.

분명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 사랑의 절정을 향해 던질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그녀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던 난간함 위치의 남자들.

그랬기에 이 소설은 로멘스를 벗어나 수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불꽃 같은 삶을 태우고 간 리심.

그녀는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처음의 리심도 아니지만 그 누구의 리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리심으로 말이다.

그녀가 하늘을 날고 있을 것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춤을 출 수 있는 리심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것 같다.

 

세권으로 된 리심을 간추려 보자면 첫권 나아갈 진(進)에서는 궁녀로서의 삶, 과거의 아픈 기억, 고종과 프랑스 공사관 빅토르 콜랭과의 만남으로 인해 조선을 떠나는 운명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번째 흐를 류(流)에서는 빅토를 따라 일본, 프랑스, 탕헤르를 여행하며 겪은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선 여인으로써 그런 나라들을 여행하고 또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는게 독특했지만 그 당시의 정황으로 보건대 그녀의 여행은 그렇게 호락 호락 하지 않았다. 동양인으로써 프랑스 여행이 얼마나 위험하고 상처 투성이인지 그리고 외교관인 빅토르의 신분때문에 정치적으로 얼마나 묶여 있는지 색다른 여행기 밖에는 그 많은 상처와 음모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3권 돌아올 회(回)에서 그러한 복선들이 절정을 이룬다.

조선의 외교관으로 다시 돌아온 빅토르를 따라 리심 역시 돌아오지만,좋아하지 않으면서 미워할 수 없는, 빈자라를 보고 그제서야 존재의 의미를 찾는 민비는 일본에 의해 살해된 후다.

조선을 지배하고자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 진을 치고 있고 그 가운데 고종을 두고 갈리어진 정치적 이념과 혼란 속에 리심은 붙들리고 만다.

빅토르가 고종의 부탁을 거절하자 고종은 리심을 원래 자기 것이였으니 다시 가져 간다며 다시 궁중의 무희로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춤을 춘다. 고종과 빅토르가 있는 황제 즉위식 특별 공연에서 어느 누구의 리심이 아닌, 춤을 추는 리심이 되어 그녀는 그렇게 사리지고 만다.

 

나라와 시대를 뛰어 넘는 러브 스토리, 혹은 최초의 조선 여인으로써의 여행기 등등이라고 생각할 뻔 했다. 그러한 사실들을 배제할 수 없으나 리심, 그녀의 처연했던 삶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세상은 그녀의 편이 아닌듯 냉정하고 그녀는 아름답지만, 슬퍼야 하는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조선으로의 돌아옴은 프랑스에서 보다 더 처절했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늘 안일한 그녀의 태도가 진부하기도 했다.

왕, 외교관이란 신분의 거대함의 어두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마음을 따라갔을 뿐인데 그래서 그들의 전부가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들에겐 그녀가 전부가 될수 없었다.

탕헤르 사막에서 길을 잃었듯이 그녀는 그렇게 홀로 사막을 걸어 가고 있었다.

 

팩션이라는 전제하에 펼쳐진 리심의 불꽃 같은 삶을 재연하기 위해 저자는 직접 그녀의 흔적을 좇는다.

그러나 조선 여인을 정식 부인으로 맞이하자면 외교관의 신분을 버려야 하기에 어디에도 리심의 흔적을 찾기 힘들고 빅토르 콜랭의 흔적 뿐이다. 그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씁쓸하긴 했지만 그녀도 감수한 삶이기에 크게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존재했을까란 의문부터 왜 그렇게 사라져 버렸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아쉬움이 꾸물 꾸물 올라온다.

증거의 대질이 아닌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금은 특별한 삶을 택한 댓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궁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과거 지향적인 안타까움을 뱉어 보지만 그녀가 꾸렸던 삶이였다.

빅토르 콜랭을 따라 이루어진 삶이 아닌 그녀가 선택하고 그녀가 이루어나간 삶이였다. 그랬기에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왜 남지 않았겠냐만은 그랬기에 더 아름다운 삶이였다.

안정적인 삶, 불꽃같은 삶.

그 중에 과연 나는 어떠한 삶을 택했을까. 기회와 운명을 떠나 불꽃같은 삶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처럼 세상을 향해 부딪힐 용기가 내게는 없었을 것이다.

이 가을, 파리지엔의 리심도 사막 위의 리심도 아닌 시를 읊고 춤을 추는 리심을 기리며 그렇게 꿈을 꾸어 본다.

과연 내겐 큰 세상이 존재하는지를.

 

 

p.s: 오타 발견.

     리심 中 p. 68

     '1991년 6월부터 1993년 3월까지,'

     1891년 1893년으로 바꿔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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