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는 나아갔고, 흘렀으며, 다시 돌아왔다.

19세기 말의 그녀가 어떻게 일본, 프랑스, 탕헤르(모로코)를 여행하며 어떻게 조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도 궁녀의 신분으로. 그녀의 삶의 행적을 좇자면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랑이 모든걸 이겨내 주었을까?

리심에겐 사랑이 그래주질 못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맏았지만 오히려 그려는 배꽃이 되어 하늘 하늘 흩뿌려 진다.

 

그녀의 마지막 행위를 나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이였다기 보다 그녀가 견디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였다고 본다. 그래서 많은 부분 아쉬움이 들고 허망하였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마음은 슬픔이였다.

분명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 사랑의 절정을 향해 던질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그녀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던 난간함 위치의 남자들.

그랬기에 이 소설은 로멘스를 벗어나 수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불꽃 같은 삶을 태우고 간 리심.

그녀는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처음의 리심도 아니지만 그 누구의 리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리심으로 말이다.

그녀가 하늘을 날고 있을 것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춤을 출 수 있는 리심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것 같다.

 

세권으로 된 리심을 간추려 보자면 첫권 나아갈 진(進)에서는 궁녀로서의 삶, 과거의 아픈 기억, 고종과 프랑스 공사관 빅토르 콜랭과의 만남으로 인해 조선을 떠나는 운명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번째 흐를 류(流)에서는 빅토를 따라 일본, 프랑스, 탕헤르를 여행하며 겪은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선 여인으로써 그런 나라들을 여행하고 또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는게 독특했지만 그 당시의 정황으로 보건대 그녀의 여행은 그렇게 호락 호락 하지 않았다. 동양인으로써 프랑스 여행이 얼마나 위험하고 상처 투성이인지 그리고 외교관인 빅토르의 신분때문에 정치적으로 얼마나 묶여 있는지 색다른 여행기 밖에는 그 많은 상처와 음모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3권 돌아올 회(回)에서 그러한 복선들이 절정을 이룬다.

조선의 외교관으로 다시 돌아온 빅토르를 따라 리심 역시 돌아오지만,좋아하지 않으면서 미워할 수 없는, 빈자라를 보고 그제서야 존재의 의미를 찾는 민비는 일본에 의해 살해된 후다.

조선을 지배하고자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 진을 치고 있고 그 가운데 고종을 두고 갈리어진 정치적 이념과 혼란 속에 리심은 붙들리고 만다.

빅토르가 고종의 부탁을 거절하자 고종은 리심을 원래 자기 것이였으니 다시 가져 간다며 다시 궁중의 무희로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춤을 춘다. 고종과 빅토르가 있는 황제 즉위식 특별 공연에서 어느 누구의 리심이 아닌, 춤을 추는 리심이 되어 그녀는 그렇게 사리지고 만다.

 

나라와 시대를 뛰어 넘는 러브 스토리, 혹은 최초의 조선 여인으로써의 여행기 등등이라고 생각할 뻔 했다. 그러한 사실들을 배제할 수 없으나 리심, 그녀의 처연했던 삶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세상은 그녀의 편이 아닌듯 냉정하고 그녀는 아름답지만, 슬퍼야 하는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조선으로의 돌아옴은 프랑스에서 보다 더 처절했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늘 안일한 그녀의 태도가 진부하기도 했다.

왕, 외교관이란 신분의 거대함의 어두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마음을 따라갔을 뿐인데 그래서 그들의 전부가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들에겐 그녀가 전부가 될수 없었다.

탕헤르 사막에서 길을 잃었듯이 그녀는 그렇게 홀로 사막을 걸어 가고 있었다.

 

팩션이라는 전제하에 펼쳐진 리심의 불꽃 같은 삶을 재연하기 위해 저자는 직접 그녀의 흔적을 좇는다.

그러나 조선 여인을 정식 부인으로 맞이하자면 외교관의 신분을 버려야 하기에 어디에도 리심의 흔적을 찾기 힘들고 빅토르 콜랭의 흔적 뿐이다. 그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씁쓸하긴 했지만 그녀도 감수한 삶이기에 크게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존재했을까란 의문부터 왜 그렇게 사라져 버렸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아쉬움이 꾸물 꾸물 올라온다.

증거의 대질이 아닌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금은 특별한 삶을 택한 댓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궁녀가 되지 않았더라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과거 지향적인 안타까움을 뱉어 보지만 그녀가 꾸렸던 삶이였다.

빅토르 콜랭을 따라 이루어진 삶이 아닌 그녀가 선택하고 그녀가 이루어나간 삶이였다. 그랬기에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왜 남지 않았겠냐만은 그랬기에 더 아름다운 삶이였다.

안정적인 삶, 불꽃같은 삶.

그 중에 과연 나는 어떠한 삶을 택했을까. 기회와 운명을 떠나 불꽃같은 삶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처럼 세상을 향해 부딪힐 용기가 내게는 없었을 것이다.

이 가을, 파리지엔의 리심도 사막 위의 리심도 아닌 시를 읊고 춤을 추는 리심을 기리며 그렇게 꿈을 꾸어 본다.

과연 내겐 큰 세상이 존재하는지를.

 

 

p.s: 오타 발견.

     리심 中 p. 68

     '1991년 6월부터 1993년 3월까지,'

     1891년 1893년으로 바꿔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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