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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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같이 세계문학의 풍년인 시기가 있을까 싶다. 여러 출판사에서 앞 다투어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이미 읽은 작품일지라도 세트로 모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시리즈가 통째로 책장에 있을 때의 그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내 책장에 있는 책이나 읽자며 무관심한 척 갖은 애를 쓰곤 한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책들을 마주하곤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색다른 작품이거나 러시아 문학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가 그랬다. 워낙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내게는 비교적 생소한 작가에 속해서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급 흥분을 하고 말았다.

 

  저자도,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도 모두 생소한 가운데 무척 설렌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또 한명의 러시아 작가를 알아간다는 기쁨도 있었고, 유명한 러시아 작품을 우려먹는 것이 아닌 초역이 된 작품이 실려 있어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세 편의 단편 모두 흡족할 만한 작품이었고 한 권의 책을 달게 읽은 것 같아 뿌듯했다. 많은 책을 읽어도 만족스러운 책들을 만나는 일은 드문데, <왼손잡이>는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 수록된 <왼손잡이>, <분장예술가>, <봉인된 천사> 모두 러시아인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러시아 작가 중 도스또예프스끼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보통 사람들의 내면을 파고들며 장황스러울 정도로 러시아 인의 삶을 말하고 있어서인데, 레스코프의 작품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세 편의 단편에서는 예술이 밑바탕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예술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해서 현재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에피소드로 받아들여야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첫 단편인 <왼손잡이>는 영국에서 제조된 인공 벼룩에 맞선 한 대장장이에 관한 이야기다. 알렉산드르 2세가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자랑하고자 황제에게 인공 벼룩을 선물한다. 그 벼룩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로 작았고 태엽을 감으면 춤을 추기도 하는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이었다. 황제는 그 기이함에 놀라 벼룩을 거금을 주고 사오지만, 같이 동행했던 플라토프 장군은 러시아인들도 그에 못지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황제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기억에서 묻힌 벼룩은 우연히 다시 들춰져 플라토프 장군에 의해 툴라의 대장장이에게 맡겨진다. 플라토프 장군은 러시아의 우수성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 믿고 그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노력 끝에 무언가를 만들어 낸 그들은 벼룩을 바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장군은 불 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툴라의 대장장이들은 별다른 도구도 없이 벼룩의 발에 굽을 달아 자신들의 이니셜을 새겼고, 그 사실이 밝혀지자 그것을 영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장장이 가운데 한명인 왼손잡이도 영국에 가게 된다. 벼룩을 보고 놀란 영국인들이 왼손잡이를 붙들려고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영국에서 알아낸 총기 간수 비법을 황제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그의 뜻은 이뤄지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고 만다. 그 총기 간수 비법이 알려졌더라면 크림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씁쓸함만 남겼다.

 

  <분장예술가>는 농노 신분의 분장사 아르카지와 여배우 류보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아르카지와 류보피가 하는 일 자체가 극단에 몸담고 있었기에,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왼손잡이>의 예술성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진 예술에 대한 속성을 내세우면서도 결국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카지와 류보피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고, 주인 백작으로 인해 류보피가 위험에 처하자 아르카지는 그녀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 벌로 아르카지는 고문을 당한 뒤 전쟁터에 나가게 되고 그런 그를 기다리며 류보피는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아르카지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운명은 가혹하게도 그녀와 만나기 하루 전날, 머무르던 여관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 고통을 술로 달래면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류보피의 이야기는 당시의 농노제와 삶의 가혹함을 돌아보게 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 작품 중에서 보통 사람들의 예술적인 면모를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낸 작품은 <봉인된 천사>였다. 분량도 가장 많을 뿐더러, 한 유랑 석공 단체의 러시아 구교도들이 이콘(성화상)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보수적인 신앙이 오히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일의 특징상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아끼는 이콘이 이적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는 욕심 많은 한 귀부인으로 인해 관청에 이콘을 빼앗기고 만다. 게다가 납으로 봉인까지 해버린 이콘을 찾기 위해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콘의 원본을 찾기 위해서는 그와 똑같은 이콘을 그린 뒤 바꿔치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사 이콘은 그리는 방법도 까다롭고, 그릴 수 있는 화가들도 드물었기에 과연 이콘을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콘을 어떻게 그려야 하며, 어떤 재료를 써야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들이야말로 평범한 사람에 속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지식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뛰어났고, 왜 이콘이 구교도들에게 중요한지를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신앙의 신실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의 태도에 감동한 영국인 감독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려 했지만, 그들만의 방식에 답답하고 가슴이 조마조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렵게 구한 이콘화가가 떠날 뻔도 했고, 실수로 인해 그림 바꿔치기에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림을 안고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는 천사가 도움을 줬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명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해설을 통해 러시아 정교회에서 구교도로 분리된 배경을 알고 나니 그들의 태도가 좀 더 이해가 갔으나, 이콘을 되찾음으로 인해 그들 모두가 정교회로 개종을 하는 사건은 개연성이 부족한 옥의 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구교도들의 이콘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의 뿌리로 인해 나눠졌던 종교의 갈등을 해소하는 걸로도 보였고, 신앙으로 인해 삶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것으로도 보였다. 세 편의 단편이 보통 사람들의 예술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날 정도로 뛰어났고, 무엇보다 러시아 사람들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색다른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사투리나 액자형식으로 서술된 기법이 재미를 더했고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인양 그들이 속한 세계로 빨려들기 바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념 논쟁과 검열로 인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삶 중반부터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작가로써 평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러시아인의 기질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출간될 세계문학 시리즈에 이렇게 숨은 작품이 많이 엮어져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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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1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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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한 권씩 읽어내는 홍루몽에 막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제 1권만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9권부터 읽기 시작해 아쉬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정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장편을 읽었다는 후련함보다는 익숙해졌던 분위기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장편소설은 큰맘 먹고 읽게 되는 것이고, 괜히 아끼다가 완독하지 못하고 손을 놔버린 경우가 허다한가 보다. 홍루몽만 보더라도 한 호흡에 읽어버렸다면, 이런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덜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홍루몽 읽기를 관둘 당시, 긴 이야기와 불행 앞에 지쳐있던 나를 알기에 완독을 앞둔 지금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리라.

 

  홍루몽의 저자가 두 명인 것을 보고 공동 집필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겉표지에 저자의 소개를 보고서야 조설근이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80회부터 고악이 이어 쓴 걸로 나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79회까지 읽고 읽기를 멈춘 후, 3년 만에 80회부터 읽기 시작한터라 두 저자의 분위기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11권까지 읽어낸 것을 보면 저자가 바뀌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고 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어지는지에 초점이 맞춰 있다 보니, 이야기를 읽어내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9권부터 가씨 집안의 가세가 기운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는데, 11권에서는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먼저 대관원에서 귀신도 보이고 이상한 기운이 집안에 뻗쳐 법사를 벌여 요귀를 쫓았다. 그토록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이 돌보던 대관원에 그런 일이 터지자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설반의 부인인 금계가 앙심을 품고 향릉이에게 독약이 든 국을 먹이려다 자기가 먹고 죽는 사건이 발생했고, 가정은 발령 난 곳에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강등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가정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형 가사의 죄로 인해 집안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날 지경에 이른다. 가사의 집에 차압이 들어온 것은 물론 그의 아들인 가련과 며느리 희봉의 죄도 드러나고 말았다. 다행히 천은으로 가정의 집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그 일로 인해 가사는 귀양을 떠나고, 집안일에 무심했던 가정이 그때야 집안을 둘러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재산이 많이 바닥난 뒤였다.

 

  무엇보다 가사가 지은 죄로 가씨 집안은 인심이 많이 깎여 버렸고, 희봉이 고리대금업을 한 일로 인해 집안의 명예에 더 먹칠을 하고 말았다. 가사가 없는 마당에 녕국부 식솔들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영국부의 살림은 더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인을 줄이고,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 해봐도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단계에 다다랐다. 집안일에 워낙 손을 놓고 있던 가정은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여전히 살림을 가련 부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으로 가사의 일로 인해 더 중한 벌을 받을 수도 있었음에도 여러 도움과 은혜로 마무리 지어 졌고, 대대로 내려오던 세습직이 파직되었다가 가정에게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인을 비롯한 여럿 식구들이 맘고생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집안이 망해간다는 조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고, 당장 돈이 쪼들려서 어려움이 따랐다. 대부인은 귀양 가는 가사를 비롯해 여러 식구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 주었다. 늘 향연만 좇는다 생각했던 대부인의 어른다운 면모와 살림에 능력을 다시 보게 되는 부분이었지만, 그 행위는 마치 죽음을 앞두고 이생의 삶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보옥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전히 촉기를 잃어 버린 상태였고, 집안에 어려움이 닥쳐도 무엇 하나 힘이 될 줄 모르고 자신의 감정대로 일상을 살기 바빴다. 대옥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를 원했고, 오아를 보며 시녀 청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철부지 곁에서 그나마 보채와 습인이 지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집안은 급격히 기울어 가는데 과연 보옥이 힘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그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어른들의 노력에도, 보옥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결국은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부인이 숨을 거두었고, 집안의 어른인 만큼 화려하게 치르려던 장례는 식구들의 의견 때문에 간소하게 치르게 되었는데, 그 일을 맡은 희봉이 예전처럼 야무지게 일을 해내지 못했다. 여러 가족들의 개입과 돈 문제 때문이기도 했고, 가세가 기운다는 것을 눈치 챈 하인들의 약삭빠름 때문이었다.

 

  결국 희봉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시집간 지 1년도 안된 영춘이 남편의 구박으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12권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되면서도 마음 한편은 씁쓸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처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가씨 집안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온전한 세대교체를 이뤄내지 못하고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나면서도, 인생살이가 다 그렇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중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집약된 방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맛 본 것 같다. 이미 지나왔던 세월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내포된 삶의 모습은 쉽게 지나치게 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12권을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책 내용이 머릿속을 떠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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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0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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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홍루몽 9권을 순식간에 읽고 나자,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바로 10권을 꺼내 읽으면서도 11권에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금방 읽을 것을 3년 동안 방치해 뒀다고 생각하니 계면쩍으면서도, 이제라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열정을 이어서 읽다 만 다른 장편들도 꼭 읽어야겠다고 거듭 다짐하면서 끝을 향해가고 있는 홍루몽에 온 힘을 기울였다.

 

  10권에서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던 가씨 집안의 몰락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었다. 결국 원춘 귀비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고, 보옥은 태어날 때 물고 나온 통령옥을 잃어 버렸다.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지고, 점을 쳐봐도 구슬이 나오지 않자 많은 식구들이 걱정하는 가운데 보옥은 백치가 되어 버렸다. 늘 혼미한 정신세계에 빠져 있었고, 말도 제대로 못했으며 거기다 대옥에 대한 마음 때문에 상심까지 해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구슬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그런 보옥을 보면서 혼사를 준비한다. 보채와 맺어지면 액운이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하고 혼사를 서두르는데, 대옥이 그 소식을 듣고 만다. 오로지 대옥 생각에 빠져 있던 보옥은 설보채가 아닌 대옥과 혼사를 맺을 거라는 식구들의 거짓말에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에서도 희희낙락 거릴 뿐이었다.

 

  한편 보채가 신부인 것을 알아보고 실망할 보옥을 위해 신부 바꿔치기까지 감행한 집안 어른들에게 대옥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대옥이 몸이 약하고 예민하며 누구나 칭찬하는 성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하녀 습인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보채와 보옥의 혼사에 변수를 두지 않았다. 보옥과 대옥이 서로를 아끼는 사이라면, 더더욱 빨리 보옥의 혼사를 치르고 그 뒤에 대옥에게도 짝을 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보옥은 정신이 온전치 않아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할 뿐이고, 대옥은 보옥의 혼사소식을 듣고부터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더니 결국 보옥이 혼사를 치르고 있을 때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만다.

 

  대옥이 보옥 때문에 죽었음에도 어른들의 처사는 인지상정이라곤 느껴질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혼사 준비로 인해 대옥이 아플 때부터 문병도 오지 않았고, 그렇게 명이 짧을 것 같아 보채와 짝을 이뤄줬다느니, 그렇게 죽은 것이 독하다느니 하면서 오로지 보옥이 생각뿐이었다. 대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긴 했으나 혹여 보옥에게 누가 될까봐 대옥의 죽음을 알리지도 않았다. 보채는 그런 보옥을 정신 차리게 할 요량으로 대옥의 죽음을 알려 충격을 줘 약간이나마 병의 차도가 있게 한다. 대옥의 죽음 앞에서 가장 마음아파 하며 울어준 사람이 보옥이긴 했으나, 여전히 예전의 자신을 되찾고 있지 못해 슬퍼하는 모습도 마땅치 않았다. 서로 아끼면서도 이어지지 못한 안타까움, 죽음을 맘껏 애도할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 보옥의 아버지 가정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보옥의 혼사를 치르자마자 서둘러 떠났다. 가정마저 없는 대관원은 무언가 듬직한 것이 빠져 나간 듯 했고, 늘 사무업무만 보던 가정은 그곳에서 유도리를 부리지 못해 난처한 일을 연거푸 당한다. 거기다 집안의 분위기를 보자면 대옥의 죽음과 보옥의 병이 완쾌 되지 않은 것 이외에도 설반의 살인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어지지 않았고, 설반의 부인들은 시동생인 설과를 유혹하려 애를 쓰며, 가근은 여승들과 놀아나 추문을 일으키고, 탐춘은 가정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시집을 갈 예정이었다. 집안도 어지럽고, 식구들이 하나둘 씩 떠나가며, 가세가 기울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대옥의 죽음으로 큰 맥이 끊긴 것 같았고, 보옥은 과연 대옥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홍루몽의 대단원은 이제 서서히 끝을 향해가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희로애락이 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해가는 것이 당연하나 오랜만에 조우한 소설이 급격히 하강세를 보이고 있어 마음이 착잡하다. 이미 알고 있던 대옥의 죽음과 보옥의 혼인을 지켜보면서도 특별하게 다루지 않고, 덤덤하게 소설의 흐름 속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비극적으로 마음 아프게 그려질 거라 생각했던 기대가 채워지지 않자, 전체적인 맥락으로 홍루몽의 결말을 지켜볼 필요성을 느꼈다. 가씨 집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보옥과 대옥이 중심성산에 있긴 하지만 워낙 등장인물이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굴곡을 보여주고 있기에 몇몇의 인생을 놓고 소설의 전반을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꼭 가씨 집안의 이야기에 틀을 가둘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키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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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9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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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에 읽은 책들을 정리하면서, 4월에는 무슨 책을 읽을지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오랫동안 미뤄왔던 독서를 4월에 해야겠다고 맘먹고, 책장에서 약 20권 가량의 책을 골라냈다. 다름 아닌 읽다 만 장편소설들이었다. 먼저 선택된 아리랑, 요셉과 그 형제들, 도스또예프스끼전집, 홍루몽을 꺼내고 보니 그야말로 책 탑을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몇 년 째 이 책들을 방치했으며, 어느 때 꺼내더라도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랐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 책들만 바라봐도 마음이 묵직해 지는 게, 완독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이미 읽은 부분에 대한 기억상실이 나를 더 짓눌렀다. 그만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큰 맘 먹고 읽기를 자청했으니, 이번에는 꼭 완독하리라 굳게 맘먹었다.

 

  읽다 만 장편들을 읽자는 거창한 포부아래 먼저 집어든 것은 4권을 남겨두고 2007년 여름에 읽기를 멈춰버린 홍루몽이었다. 꺼내 놓은 책들 중에서 가장 두께가 얇기도 했거니와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이었다. 지난 리뷰를 뒤져 줄거리라도 챙겨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귀찮다는 핑계로 무작정 책을 꺼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펴자마자 주인공들 이름도 헛갈려 1권을 꺼내 인물사전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대충 인물을 파악하고는 나머지 기억은 책의 흐름에 맡겨보기로 하고 계속 읽어 나갔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오랫동안 방치해 둔 시간이 민망할 정도의 읽힘이라, 남은 3권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홍루몽 9권을 읽기 시작하긴 했으나 그 전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은 것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유추해 나갔다. 줄거리도 중요하지만 책 속에 담긴 자잘한 일상과 대화 자체가 중요한 사료가 될 정도였으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풍습과 문화, 사상, 시대의 흐름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대관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과 인간군상을 통해 자연스레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의 뒷면만 봐도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고 말한 마오쩌둥이나 '『홍루몽』이 나타난 뒤로 전통적인 사상과 작법이 모두 타파되었다.' 라고 말한 루쉰처럼 중국 고전에 있어서 홍루몽의 위치는 확고한 것 같다.

 

  삼국지보다 더 많이 읽혔다고 하는 홍루몽이 인기가 있는 것은 봉건시대 중국인들의 삶을 농밀하게 그려내고, 그 안에 축약된 민족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대적 배경이 달라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없더라도, 윗세대들이 살아왔던 삶을 지켜본다는 것은 한편으로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적 의의나, 방대한 사료적 가치를 떠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그네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생경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의 풍경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아쉬워 홍루몽 8권의 리뷰를 들춰보니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 흐름에 지쳐버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9권을 집어 들어서인지 그런 감정이 남아있을 리 없어 홍루몽 10권을 마주하려는 시점에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굳이 홍루몽 8권의 리뷰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9권을 통해 조금씩 가세가 기울고, 불행은 거침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홍루몽의 중심선상에 있는 가보옥과 임대옥의 사랑은 점점 정점을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인물사전에 간략한 설명에 결말이 이미 나와 있어 살짝 김이 빠지긴 해도, 직접 읽는 즐거움이 다르기 때문에 보옥과 대옥의 어긋난 사랑은 피하고만 싶었다.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옥과 대옥은 하루하루 성장해서 혼사를 치룰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갔다. 여전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철부지인 가옥은 집안의 많은 시녀들과 누이들, 여자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보옥은 아버지의 충고로 학숙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었고, 대옥은 늘 약해빠진 몸을 건사하며 보옥을 마음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많은 친인척과 가족이 함께 사는 가씨 집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후에 보옥과 혼인하게 될 설보채의 오빠인 설반이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설반의 부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시끄러웠다. 거기다 원춘 귀비가 몸이 아팠고, 그로 인해 서서히 가씨 집안의 몰락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어른들의 일보다 가옥과 대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청춘남녀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기에, 너무 많이 변해버린 분위기가 낯설어 그들이 여러 자매들과 함께 어울렸던 시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젊음을 만끽하던 그때는 무척 즐거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그들이 조금씩 변해가게 만들었고, 보옥과 대옥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어갔지만 어른들에게 관철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씩 보옥의 혼사 문제가 들춰지면서 대옥은 오해를 하여 몸을 상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보옥은 여전히 철부지마냥 대관원을 훑고 다녔다.

 

  어른들은 보옥의 짝으로 설보채를 염두에 두는 것이 조금씩 드러남에 따라 그 사실이 보옥과 대옥에게 알려지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뻔했기에 괜히 우울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보옥과 대옥의 사랑은 비극을 맞이하고, 대옥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즐거움으로 대했던 9권을 읽고 나자 다음 이야기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주인공이라 해도, 홍루몽을 보옥과 대옥의 사랑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대관원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가씨 집안의 흥망성쇠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돈방의 삽화가 한껏 흥취를 더해주었고, 이 방대한 이야기의 대단원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질지 여전히 궁금하다. 어렵게 꺼내 힘겹게 재회한 만큼, 홍루몽을 끝까지 완독하고 내 나름대로의 마무리도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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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히라노 게이치로는 조금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고등학교 때 문학을 읽는답시고 도서관을 들락거릴 때, 우연히 <일식>을 읽게 되었고 어려운 작가로 인식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꼈다. <달>까지 읽고 난 뒤에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었지만, 나의 뇌리에 작가의 이름은 아로새겨졌다. 그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모두 구비해 놓았는데, 결국은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더 많은 작가에 속하고 말았다. 책에 관심이 증폭될 때 만나게 된 작가라서 그런지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감격으로 다가온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저자와는 달리 그의 작품을 제때 읽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내 수준이 형성되지 못할 때 <일식>을 읽어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이왕 읽을 거라면 제대로 읽고 싶다는 열망에 그의 책을 모두 구입하면서도 선뜻 손을 못 대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일식>부터 다시 꺼내 그의 작품을 읽어도 될 것 같아 가볍게 시작할 맘으로 <문명의 우울>을 먼저 읽게 되었다. 두께가 얇아 먼저 꺼내들었는데, 오로지 글로만 대면하게 되는 작가이며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책의 두께로 가늠할 수 없었다는 사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짧은 칼럼 형식으로 실린 글들은 2000년 1월부터 1년간 월간 <voice>에 실린 것이라고 한다. 단행본으로 만들면서 가필과 수정, 제목도 직접 붙였으며, 「사진초寫眞抄」라는 연재 글의 형식에 따라 사진을 보고 느낀 대로 쓰는 스타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저자 또한 소설가인 자신이 시사에 대해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연재 스타일을 알고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시사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작가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연재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읽었음에도 사회 현상의 화제는 옛 일이 되어 버렸을지 모르나 저자의 생각을 통해 글 속에 투영된 문제의식과 경각심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글을 읽다보면 주제에 맞는 부연설명과 저자의 생각은 충분히 드러나서 저자가 보았다는 사진을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저자후기에서야 연재 글의 성격을 알았을 정도로 시사문제라고 해서 꼭 사진이 들어가 있거나, 전문적으로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쓴이의 생각이 온전히 판에 박힌 듯 독자에게 들어가는 것보다, 글을 읽으면서 읽는 이의 생각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저자의 글이 결코 가벼웠다는 것은 아니다. 옮긴이 또한 저자가 한자를 잘 알고 잘 쓰는 젊은 작가에 속해 번역이 쉽지 않았다고 했듯이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진 글들은 꼼꼼히 읽지 않으면 이해력이 떨어지기 딱 좋았다. 글을 읽으면서 종종 멈춰서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며, 내가 수용해야 할 것과 나의 생각을 같이 관철시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며 읽어나갔다. 저자가 쓴 글들이 우리 사회와 밀접한 현상들이어서 좀 더 신경 써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말한 주제들이 일본사회를 중심으로 그려나갔다고 해도 대부분 내게도 익숙한 것들이라 관심 있게 보기도 했다. 로봇 강아지, 휴대전화를 통한 연애학, 사이비종교, 9.11사태, 고질라 등 과학과 사회현상이 빚어내는 갖가지 일들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읊조려 나갔다.

 

  저자가 읊조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저자의 생각이 풍기는 주관적인 견해와 젊은 지식인으로서의 풋풋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확성기를 들고 나의 생각은 이러하니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고 해서 바뀔 것들도 아니었고, 저자도 그런 형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문제의식과 함께 대두된 저자의 생각은 이제 막 알에서 깨어 나오려는(알은 배움의 단계인 과정, 깨어 나옴은 소설가로써 입지를 굳히는 일) 움직임으로 보였다. 그의 생각이 깊고 고르며,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면서도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자잘한 경험과 함께 일상에 녹아 있는 주변의 것들을 들춰내서 새로운 시각을 독자에게 던져 준 것 같다.

 

  정독하며 읽었음에도 눈을 뗄 수 없어 한 호흡에 읽어 버린 책이다. 소설과 에세이가 모두 뛰어난 작가를 특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저자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셈이었다. 10년 전에 읽은 소설 두 편과 이제 에세이 한 편을 읽었을 뿐이어서, 책장에 꽂힌 그의 책 중에서 다음 읽을거리로 무엇을 지목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 여전히 내게는 결코 쉽게 읽어나갈 수 없는 작가이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큰맘을 먹고 대해야 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그의 첫 작품을 읽은 후로 10년 동안 꾸준하게 그의 동태를 살펴왔다고 할 수 없으나,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단숨에 그의 작품을 독파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그의 작품을 만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호사를 누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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