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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1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하루에 한 권씩 읽어내는 홍루몽에 막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제 1권만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9권부터 읽기 시작해 아쉬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정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장편을 읽었다는 후련함보다는 익숙해졌던 분위기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장편소설은 큰맘 먹고 읽게 되는 것이고, 괜히 아끼다가 완독하지 못하고 손을 놔버린 경우가 허다한가 보다. 홍루몽만 보더라도 한 호흡에 읽어버렸다면, 이런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덜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홍루몽 읽기를 관둘 당시, 긴 이야기와 불행 앞에 지쳐있던 나를 알기에 완독을 앞둔 지금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리라.
홍루몽의 저자가 두 명인 것을 보고 공동 집필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겉표지에 저자의 소개를 보고서야 조설근이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80회부터 고악이 이어 쓴 걸로 나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79회까지 읽고 읽기를 멈춘 후, 3년 만에 80회부터 읽기 시작한터라 두 저자의 분위기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11권까지 읽어낸 것을 보면 저자가 바뀌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고 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어지는지에 초점이 맞춰 있다 보니, 이야기를 읽어내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9권부터 가씨 집안의 가세가 기운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는데, 11권에서는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먼저 대관원에서 귀신도 보이고 이상한 기운이 집안에 뻗쳐 법사를 벌여 요귀를 쫓았다. 그토록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이 돌보던 대관원에 그런 일이 터지자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설반의 부인인 금계가 앙심을 품고 향릉이에게 독약이 든 국을 먹이려다 자기가 먹고 죽는 사건이 발생했고, 가정은 발령 난 곳에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강등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가정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형 가사의 죄로 인해 집안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날 지경에 이른다. 가사의 집에 차압이 들어온 것은 물론 그의 아들인 가련과 며느리 희봉의 죄도 드러나고 말았다. 다행히 천은으로 가정의 집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그 일로 인해 가사는 귀양을 떠나고, 집안일에 무심했던 가정이 그때야 집안을 둘러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재산이 많이 바닥난 뒤였다.
무엇보다 가사가 지은 죄로 가씨 집안은 인심이 많이 깎여 버렸고, 희봉이 고리대금업을 한 일로 인해 집안의 명예에 더 먹칠을 하고 말았다. 가사가 없는 마당에 녕국부 식솔들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영국부의 살림은 더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인을 줄이고,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 해봐도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단계에 다다랐다. 집안일에 워낙 손을 놓고 있던 가정은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여전히 살림을 가련 부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으로 가사의 일로 인해 더 중한 벌을 받을 수도 있었음에도 여러 도움과 은혜로 마무리 지어 졌고, 대대로 내려오던 세습직이 파직되었다가 가정에게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인을 비롯한 여럿 식구들이 맘고생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집안이 망해간다는 조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고, 당장 돈이 쪼들려서 어려움이 따랐다. 대부인은 귀양 가는 가사를 비롯해 여러 식구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눠 주었다. 늘 향연만 좇는다 생각했던 대부인의 어른다운 면모와 살림에 능력을 다시 보게 되는 부분이었지만, 그 행위는 마치 죽음을 앞두고 이생의 삶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보옥은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전히 촉기를 잃어 버린 상태였고, 집안에 어려움이 닥쳐도 무엇 하나 힘이 될 줄 모르고 자신의 감정대로 일상을 살기 바빴다. 대옥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를 원했고, 오아를 보며 시녀 청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철부지 곁에서 그나마 보채와 습인이 지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집안은 급격히 기울어 가는데 과연 보옥이 힘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그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어른들의 노력에도, 보옥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결국은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부인이 숨을 거두었고, 집안의 어른인 만큼 화려하게 치르려던 장례는 식구들의 의견 때문에 간소하게 치르게 되었는데, 그 일을 맡은 희봉이 예전처럼 야무지게 일을 해내지 못했다. 여러 가족들의 개입과 돈 문제 때문이기도 했고, 가세가 기운다는 것을 눈치 챈 하인들의 약삭빠름 때문이었다.
결국 희봉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고, 시집간 지 1년도 안된 영춘이 남편의 구박으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12권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되면서도 마음 한편은 씁쓸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처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가씨 집안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온전한 세대교체를 이뤄내지 못하고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나면서도, 인생살이가 다 그렇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중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집약된 방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맛 본 것 같다. 이미 지나왔던 세월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내포된 삶의 모습은 쉽게 지나치게 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12권을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책 내용이 머릿속을 떠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