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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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미니 홈페이지를 핑크색으로 꾸며 놓았더니, 혹시 연애중이냐는 물음이 들려온다. 연애를 하고 싶은 욕망에 그렇게 꾸며 놓았다고 대답하면서도 왜 이렇게 쓸쓸해지는 원. 잠시 신세한탄을 하다가도 새해 나의 목적은 연애가 아니라며(진짜 속내는 나도 모름.)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그러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의 주인공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소녀는 무슨 능력으로 사십년 동안 이어지는 한 남자의 순애보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수 많은 남자들과 전 세계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연애 담이 부럽다기보다 새로운 사랑과 환경에 적응에 가는 능력에 경탄할 뿐이다.
 

  자칭 '나쁜 소녀'로 불리는 그녀는 '착한 소년' 리카르도에게 10대 때부터 사랑 고백을 받아왔다. 페루 중산층에서 자라 온 리카르도에게 유일한 꿈은 파리에 정착해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쁜 소녀' 릴리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면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만이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는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인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앞으로 사십년 동안 리카르도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음은 물론, 필요할 때마다 불쑥 불쑥 나타나 거짓말과 배신을 일삼으며 그를 괴롭힌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리마, 파리, 런던, 도쿄, 마드리드에서 다양한 신분과 이름으로 리카르도 앞에 짓궂게 나타난 것처럼 그녀의 실체는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과연 진짜 이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어릴 적 가짜 칠레 소녀였음이 밝혀지면서 릴리는 리카르도 삶 속에서 사라진 이름인 듯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던 리카르도 앞에 나타난 릴리는 리카르도의 순애보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로를 위해 그녀를 게릴라로 떠난 보낸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긋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원하던 소녀는 쿠바에서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 아르누 부인이 되어 리카르도 앞에 나타난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없이 이름과 신분을 바꾸며 리카르도의 삶을 종횡 무진한 그녀의 본명이 오틸리타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이름은 '나쁜 소녀'를 전혀 다른 인물로 비추게 만들었고, 오히려 쉼 없이 이름을 바꿔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름에 담긴 사람의 진실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쁜 소녀'가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십년 동안 이어져 오는 독특한 러브스토리는 때때로 답답하고 분노가 느껴졌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타나는 나쁜 소녀에게 늘 휘둘리고 배신당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잊지 못하는 리카르도. 그런 리카르도에게 유치한 속삭임을 통해 자신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돈과 권력 있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그녀. 그것이 한 번이라면 족하련만 리카르도가 그녀를 잊고 새로운 도시에서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마치 그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과 살아왔는지를 밝히려는 듯이. 리카르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이 자그마한 페루 여자는 이미 내 인생을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사랑놀이의 지침 속에서 '이번에는 정말 완전한 이별이고, 내 러브스토리가 끝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중략) 이 우스꽝스러운 소극을 러브스토리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며 한탄하면서도 그녀에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리카르도의 직업인 통역은 마치 나쁜 소녀와의 사랑을 말해주는 듯 때론 씁쓸함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다른 나라 언어를 익혀 수많은 도시에서 타인의 말을 전해야하는 일.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단지 남을 위해 말했을 뿐이야.' 혹은 '우리 역관은 쓸모없는 존재일 뿐이야, 친구.'라는 말이 들려오는 직업이기도 했다. 오로지 파리에 정착하기 위해 시작한 일, 그리고 나쁜 소녀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배신할 때마다 매달렸던 일도 결국에는 리카르도의 존재를 밝혀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을 얻지 못해 궁핍해지는 그의 마음처럼, 그 일은 리카르도를 안정시켜주고 자리를 잡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딘가 붕 떠있는 존재, 떠나야만 하는 직업으로 비춰지기 일쑤였다.

 

  그런 리카르도에 나쁜 소녀의 진실한 사랑이 있었다면, 분명 행복했다고 본다. 나쁜 소녀는 부와 권력을 위해 만난 사람들로부터 큰 해를 입고 올 때마다 리카르도 옆에 정착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갑갑함을 느끼고, 리카르도가 원하는 삶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고 그렇게 해줄 수도 없다며 떠나버렸다. 늘 혼자 남겨진 리카르도가 그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면 오히려 분노를 일으키며 나타나는 그녀를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혼도 하지 않고 한 여자에게 휘둘리는 리카르도가 짠하면서도 답답하고, 늘 리카르도를 팽개쳐놓고 뻔뻔하게 돌아와 그를 다그치며 배신을 서슴지 않는 그녀가 얄미우면서도 공허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이 넘어가는 나이니 이제 그만 정착하면 좋으련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리카르도처럼 나쁜 소녀를 받아들이려는 찰나, 그녀와 오래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소설 재료를 남겨주었다는 말로 그 모든 것을 대신했다. 그녀에겐 이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일지는 몰라도, 리카르도에겐 자신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순애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미련하고도 바보 같은 순애보. 결코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것은 리카르도를 비롯해 나쁜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늘 리카르도에게 진실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받기를 거부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리카르도의 마음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리카르도 입장에서는 진실할지 몰라도 나쁜 소녀에게 리카르도는 늘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한 유일한 사람은 리카르도 뿐이라는 것을.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긴긴 세월을 돌아와 리카르도 옆에 겨우 도착한 것이다.

 

  이 독특한 사랑 얘기를 연애소설로 볼 수 있을지 고민 되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을 누비며 펼쳐지는 진기하기까지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매우 흡인력 있게 재미를 안겨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해서 이 작품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독특하고도 재미난 소설을 들려주었고, 작품마다 새로움을 안겨주는 그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론 유치하고도 우습게, 능글맞으면서도 진지하게 다가오는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다양한 문학을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곤 한다. 정말 나쁜 소녀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진귀함 들을 발견하면서 읽어나간다면, 그녀의 짓궂음에 한번쯤은 당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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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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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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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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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문장과 함께 이어지는 전쟁 중에 겪은 허기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에 겪을 수 있는 허기의 종류에 배고픔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연보라색 집 앞에 마주한 에텔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종조부 솔리망 씨를 만나게 되었다. 에텔은 솔리망 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녀다. 솔리망 씨에게 에텔의 존재는 불가항력이었다. 중산층의 부유한 집안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나고 있는 에텔의 존재를 높여주는 것은 오직 솔리망 씨 뿐이었다. 그래서 에텔에게 연보라색 집을 지어주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책의 끝에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억척스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한 젊은 여인을 기리며 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이 있다. 바로 저자의 어머니이며 전쟁과 가정의 파산 위기와 함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에텔의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에텔이 겪어내는 삶은 처절하고도 섬세했다. 종조부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유일한 친구였던 제니아의 가난을 부러워 할 정도로 철이 없었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했다. 솔리망 씨가 남겨 주었던 재산은 아버지가 모두 탕진해 버렸고, 어머니는 현실을 회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불륜과 사업 실패로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집이 파산하기 직전에 그녀가 나섰다.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삶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모든 것에."

 

  솔리망 씨로부터 '넌 내 행운의 부적, 내 작은 행운의 별이란다.'란 말을 들은 에텔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먼저는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고,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야했다.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줄기를 경험하면서도 이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에텔에게 현 상황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런 역사가 에텔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너무나 상세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엉킨 역사와 개인의 삶은 맞물리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역사, 그 안에 소소히 움직이는 에텔이 거대한 힘에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에텔이 무너져 버린 삶 위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은 어떠한 위로도 그녀를 달래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몸속을 관통하는 구덩이가 다음 날이면 사라질 거라 기대하며 잠들었지만, 눈을 뜨고 보면 상처는 여전히 커다랗기만 했다.' 라는 부분을 읽을 때 그녀가 얼마나 큰 위기 앞에서 혼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영국군과 미군의 포탄에 죽지 않았다. 대신 먹지 못해, 숨쉬지 못해, 자유롭지 못해, 꿈을 꾸지 못해 서서히,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에텔의 허기가 배고픔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라는 도입부를 증명하고 있음을 알았다. 에텔의 허기에는 배고픔, 자유, 꿈, 생명, 사랑 등 인간의 욕구이자 당시에 그녀에게 필요했던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는 갈망이었다.

 

  그럼에도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의 그녀에게 희망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역경을 이겨낸 보상이 있었다. 센 강을 보며 '강물은 역사를 씻어낸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물은 육신들을 사라지게 하고, 강비탈에 있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주 오래 머물지 못한다.' 라고 되뇔 수 있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 머무르지 않고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 삶에 뛰어들어야 했던 부딪힘으로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한국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녹아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 했지만, 오히려 당시의 문화가 잘 녹아 있는 프랑스적인 면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 본 기분이다. 어휘라든가 당시의 살롱 문화, 전쟁, 문화를 저자의 펜 끝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한 것 같다. 교차적으로 변화는 흐름 속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한 문체의 매력을 만끽했다. <성스러운 세 도시>로 저자와 처음으로 만났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워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왜 노벨문학상을 수상 할 수 있었는지 온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허기를 바탕으로 이어진 이야기 속에는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자 했던 한 여인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초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녀를 통해 삶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솔리망 씨가 에텔에게 부어주었던 깊은 애정을, 어쩌면 저자는 독자 개개인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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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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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이 소설의 첫 문장과 끝 문장은 동일하다. 얼핏 들으면 소설 속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 말은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 쉼 없이 재잘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쓱해지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해 못할 말도 아니다. 그러나 헤르타 뮐러가 말하는 '말'은 많은 것을 쏟아낸 뒤에 따라오는 허무한 '우스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날 때 가져온 것들을 그들의 얼굴에 담는다.' 라고 쓰인 노트를 보는 '나'는 롤라를 추억한다. 그 노트는 롤라의 노트였고, 그녀가 어떻게 죽었으며 어떤 일을 당했는지가 적혀 있었다. 체육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의 트렁크 안에 있던 허리띠로 목을 맨 롤라. 그런 롤라는 당에서 제명당하고 학교에서는 그런 그녀를 수치스러워해 제적시킨다.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한 채 학교가 시키는 대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구내식당에서 세 남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똑같이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 만남으로 그들의 인연은 훗날까지 이어지는데, 마치 롤라의 죽음이 암시를 하듯 그들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나와 세 남학생인 에드가, 게오르크, 쿠르트는 정권에 비판적이었고 종종 독일에서 밀반입한 책을 보기도 했다. 비밀경찰의 감시자가 된 네 학생의 운명은 편치 않았다. 어디를 가든지 비밀경찰의 감시가 있었고, 친구마저도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끄나풀이 되어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앞길을 막아 버리는 데에는 그들이 처한 정치적인 운명만큼이나 암울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정치적인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하다못해 가정교사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게오르크는 의문의 폭행을 당한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신고를 한 당사자를 더 비웃을 뿐이다. 그런 그는 출국허가를 받았음에도 한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져 즉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쿠르트도 집에서 목을 맸다. 롤라, 게으르크, 쿠르트의 죽음을 자살과 사고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만큼이나 어두운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도 실컷 뛰어놀았으니, 이제 네 마음짐승을 쉬게 하려무나'

 

  할머니는 노래한다. 마음짐승을 쉬게 하라는 이유에는 '오늘도 실컷 뛰어놀았으니'라지만 이들에게 마음짐승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방황하는 청춘이라고 하기엔 낭만적이지 못한 현실이 있다. 절망이라고 하기엔 일으켜 줄 희망이 없다. 구내식당에서 본 냉장고 속의 짐승의 내장에서 마음짐승을 보았다고 하는 '나'의 고백 속에도 '구부러지고 지쳐 있'는 짐승의 내장이자 마음짐승을 본 것이다. 또한 죽은 아버지의 마음짐승이 미친 할머니 안에 둥지를 틀었다고도 생각한다. 마음짐승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일까. 아니면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네 명의 학생이 만나서 한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에 가져온 두려움이 그대로 각자의 머릿속에 머무르듯 그렇게 마음짐승은 각자의 마음속에도 둥지를 틀었으리라.

 

  『마음짐승』은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독재치하의 루마니에어서 청년기를 보낸 저자는 두 친구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두 친구의 죽음은 이 작품속의 롤라, 게오르크, 쿠르트의 죽음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펼치지 못한 청춘, 시대의 암울함도 아마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생생함이었으리라. 독재치하를 벗어나도 자유롭게 살수 없는 그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은 인간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각자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미를 볼 수 없고, 암울했던 시절을 살아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그들을 그려내는 저자의 언어 또한 혼란스럽다.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면 수려한 문장인데도, 하나로 연결하려고 하면 혼선이 일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 언어의 혼잡함 속에서도 희망을 보길 바랐는데, 과거에 존재해왔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가깝고도 어두운 세계를 실컷 맛본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용기를 얻는다.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의지, 인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이 저자의 글 속에서 뚝뚝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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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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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누우려는데  평소보다 훤한 달빛이 느껴졌다. 밝은 달을 보며 감탄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혹시 달이 두개 뜨지 않았나를 확인하는 나를 보며, 1Q84 세계에 너무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1Q84가 출간되자마자 책을 읽고 생긴 에피소드임에도, 종종 달의 개수를 확인하곤 한다. 혹여 착각으로 달이 두개 보이더라도 덴고와 아오마메가 있는 세상이라 생각하고 안심하고 싶어 한다면 좀 억지일까? 



  1Q84 1,2권을 읽을 때만 해도 언제 3권을 기다리나 싶어 안절부절 이었다. 다음 이야기를 바로 읽을 수 없다는 초조함 속에서도 혹시나 덴고와 아오마메가 불행해질까 마음을 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오마메는 자살을 시도했고, 아오마메의 행동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덴고와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졌다. 그런 연유로 3권을 기다리면서도 불안했고, 책이 출간되자마자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면서도 내가 염려한 불행을 만나지 않을까 초조했다. 아오마메는 여전히 은신 중이었고, 덴고도 아오마메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아 어떤 전개를 추측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그들 사이에 우시카와란 인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덴고에게 의심이 가는 제안을 했던 만큼 그의 등장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선구의 끄나풀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덴고와 아오마메는 위험해지고 있었다.


  선구의 리더가 죽자 그들은 아오마메를 추적한다. 그것을 대비해 아자부 저택의 노부인은 아오마메를 피신시켰고, 그들이 찾지 못하게 그녀의 모습까지 변신시키려 했다. 그러나 놀이터에서 덴고를 본 아오마메는 위험한 것을 앎에도 덴고와의 재회를 기다렸다. 그런 사이에 우시카와는 예리한 감각과 치밀함으로 아오마메에게 조금씩 접근해왔다. 그의 활약상을 지켜보면 3권의 표지가 왜 우시카와인지를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우시카와가 지닌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어두운 면으로 발달된 날카로움은 책을 읽는 동안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전혀 닿지 않을 것 같던 덴고와 아오마메에게 조금씩 접근해가는 본능을 뛰어넘는 기질이 독자를 불안하게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가며 뒤를 쫓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덴고를 찾아내고, 그들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알아냄으로 덴고를 추적해서 아오마메를 찾겠다는 생각은 그를 탐정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기발한 추적이었다. 그것이 덴고와 아오마메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해도 우시카와의 뛰어난 감각은 인정하는 바였다. 그것을 아오마메가 역 이용하기까지는.


  아오마메가 1Q84로 넘어갔던 수도고속도로에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어떠한 느낌 때문에 그녀는 결국 행동으로 취하지 않았다. 덴고를 만나야겠다는 간절함을 뛰어넘는 행동이었으나 아오마메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몸속에 자라고 있는 생명. 덴고를 만난 적이 없고 그와는 더더욱 성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3권에서 첫 번째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아오마메의 임신이었다. 하지만 덴고와 아오마메의 현실적인 만남에 너무 빠져있다 보니, 달이 두개 뜨는 1Q84세계, 리틀피플이 등장하는 세계라는 사실은 잊은 채 아모마메가 덴고의 아이를 갖게 된 경위를 망각하고 있었다. 천둥치던 밤에 덴고와 후카에리의 성행위, 리더에게 중요한 얘기를 듣던 그 밤. 그때 아오마메를 임신하게 만들어 준 매개체는 후카에리와 선구의 리더였다. 그랬기에 아오마메는 뱃속의 생명이 덴고의 아이라 확신했고, 그 존재 때문에 총구를 당길 수 없었고, 더더욱 간절히 덴고를 만나기를 바랐다. 덴고를 어떤 식으로든 찾을 수 없다면 점점 자신을 위협해오는 우시카와란 남자를 쫓아가면 덴고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이 덴고는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에 내려갔다. 아버지의 곁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공기번데기 속의 아오마메를 본 이상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덴고가 요양원에 머무르는 동안 우시카와는 거리를 좁혀왔고, 아오마메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덴고 나름대로는 그것이 아오마메를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다 시기를 느껴 그의 거처로 돌아왔고, 덴고가 사는 아파트에 세를 내어 지내던 우시카와에게 덴고는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몰라 긴장감이 치솟을 무렵, 다마루는 아자부의 저택을 조사하던 우시카와를 뒤쫓아 동시에 덴고의 거처를 알게 되었다. 덴고를 반드시 만나야 했던 아오마메는 덴고의 아파트에 왔다 우시카와에게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하지만 어두운 밑바닥 세계에서 살던 자는 그 바닥의 사람만이 처치할 수 있는 법. 출중한 추리력과 끈기를 가지고 있던 우시카와도 결국 다마루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우시카와가 운명을 달리했다고해서 아오마메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시카와의 뒤에는 선구가 있었고, 리더를 잃은 그들은 새로운 '목소리를  듣는' 이를 간구했다. 그들은 아오마메가 임신한 사실을 통해 마더와 도터의 역할을 할 것을 알고 아오마메에게 정중한 척 접근해 오지만 위험을 감지한 아오마메가 순순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었다. 반드시 덴고를 만나야했고, 1Q84 세계를 빠져나와 1984 세계로 넘어가야만 안전했다. 그 둘을 위협하던 우시카와가 사라짐으로써 잠시나마 안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우시카와로 인해 아오마메는 덴고가 사는 곳을 알아냈다. 다마루를 통해 덴고와의 만남을 부탁할 때까지 과연 그들이 만날 수 있을지 너무 긴장되고 떨려왔다. 서로를 숱하게 그리워했음에도 오랫 동안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수함이 그들을 가로막음과 동시에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오마메가 덴고를 보았던 놀이터에서 함께 달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덴고와 아오마메의 재회는 어떤 놀라운 사실도 수긍하게 만들었고 비로소 둘을 하나 되게 만들었다. 아오마메가 수태하던 밤의 이야기며 그 아이가 덴고의 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은 채 그들은 재회의 기쁨을 누렸고, 이 세계를 빠져나가고자 했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수도고속도로를 넘어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들이 무사히 1Q84 세계를 빠져나간다고 생각될 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 세계에 왔어. 우리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그게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이었어." 덴고의 말처럼 많은 어려움과 비현실을 뛰어넘고 만난 그들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1Q84 세계를 빠져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미묘한 여지를 남겨두면서 다음 책이 나올 거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어 주었다. 분명 3권에서 이 책의 시리즈가 끝이 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역경 끝에 다시 만났고, 그곳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세계로 건너왔고 둘이 함께하는 이상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오마메는 덴고와 함께 수도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면서 '타이거를 당신 차에' 라고 쓰인 간판의 호랑이 옆얼굴의 방향이 바뀐 것을 알아챈다. 1Q84의 시리즈가 여기서 끝난다면 이 부분이 걸린다. 또한 선구 사람들이 새로운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덴고를 통해 아오마메를 추적해 오다 한 발 늦은 것으로 마무리 된 것도 무언가 찜찜하다. 신쵸사에서는 3권으로 완결이라고 말했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야기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된다. 내가 걸리는 부분도 그렇고 무엇보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힘겹게 만난 이상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다. 1Q84의 독특한 세계에 중독되어 밝은 달을 보면서도 개수를 헤아리더라도, 저자가 만들어 낸 세계에 더 빠져있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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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2019-01-2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는 태엽을 감는새를 읽어볼 예정입니다. 안녕님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