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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문장과 함께 이어지는 전쟁 중에 겪은 허기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에 겪을 수 있는 허기의 종류에 배고픔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연보라색 집 앞에 마주한 에텔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종조부 솔리망 씨를 만나게 되었다. 에텔은 솔리망 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녀다. 솔리망 씨에게 에텔의 존재는 불가항력이었다. 중산층의 부유한 집안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나고 있는 에텔의 존재를 높여주는 것은 오직 솔리망 씨 뿐이었다. 그래서 에텔에게 연보라색 집을 지어주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책의 끝에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억척스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한 젊은 여인을 기리며 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이 있다. 바로 저자의 어머니이며 전쟁과 가정의 파산 위기와 함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에텔의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에텔이 겪어내는 삶은 처절하고도 섬세했다. 종조부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유일한 친구였던 제니아의 가난을 부러워 할 정도로 철이 없었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했다. 솔리망 씨가 남겨 주었던 재산은 아버지가 모두 탕진해 버렸고, 어머니는 현실을 회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불륜과 사업 실패로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집이 파산하기 직전에 그녀가 나섰다.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삶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모든 것에."
솔리망 씨로부터 '넌 내 행운의 부적, 내 작은 행운의 별이란다.'란 말을 들은 에텔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먼저는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고,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야했다.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줄기를 경험하면서도 이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에텔에게 현 상황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런 역사가 에텔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너무나 상세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엉킨 역사와 개인의 삶은 맞물리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역사, 그 안에 소소히 움직이는 에텔이 거대한 힘에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에텔이 무너져 버린 삶 위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은 어떠한 위로도 그녀를 달래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몸속을 관통하는 구덩이가 다음 날이면 사라질 거라 기대하며 잠들었지만, 눈을 뜨고 보면 상처는 여전히 커다랗기만 했다.' 라는 부분을 읽을 때 그녀가 얼마나 큰 위기 앞에서 혼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영국군과 미군의 포탄에 죽지 않았다. 대신 먹지 못해, 숨쉬지 못해, 자유롭지 못해, 꿈을 꾸지 못해 서서히,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에텔의 허기가 배고픔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라는 도입부를 증명하고 있음을 알았다. 에텔의 허기에는 배고픔, 자유, 꿈, 생명, 사랑 등 인간의 욕구이자 당시에 그녀에게 필요했던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는 갈망이었다.
그럼에도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의 그녀에게 희망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역경을 이겨낸 보상이 있었다. 센 강을 보며 '강물은 역사를 씻어낸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물은 육신들을 사라지게 하고, 강비탈에 있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주 오래 머물지 못한다.' 라고 되뇔 수 있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 머무르지 않고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 삶에 뛰어들어야 했던 부딪힘으로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한국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녹아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 했지만, 오히려 당시의 문화가 잘 녹아 있는 프랑스적인 면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 본 기분이다. 어휘라든가 당시의 살롱 문화, 전쟁, 문화를 저자의 펜 끝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한 것 같다. 교차적으로 변화는 흐름 속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한 문체의 매력을 만끽했다. <성스러운 세 도시>로 저자와 처음으로 만났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워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왜 노벨문학상을 수상 할 수 있었는지 온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허기를 바탕으로 이어진 이야기 속에는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자 했던 한 여인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초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녀를 통해 삶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솔리망 씨가 에텔에게 부어주었던 깊은 애정을, 어쩌면 저자는 독자 개개인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