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3 - 플럼 시냇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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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의 즐거움은 독서이고 단연 『초원의 집』 연작소설로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루에 한권씩 읽고 리뷰를 쓰면서 마무리하는 일상이 며칠째 이어지다보니 이 소설을 다 읽어버린 뒤에는 무척 허전할 것 같아 걱정이 벌써부터 앞선다. 신기한 것은 책의 내용에 따라 또 나의 기분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점이다. 문학을 읽을 때 그런 감정의 변화가 장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오늘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맞닥뜨린 상황 앞에서 보인 나의 행동에 적이 놀라며, 다시 한번 감정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게 되었다.

 

  오늘은 조금 힘든 하루였다. 아침부터 별일 아닌 일로 남편과 다투었고 화해를 하지 못하고 남편은 잠자리에 든 상태다. 나는 줄곧 책만 읽었지만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은 채 온통 불편한 마음만 삭히고 있었다. 그런 상태다 보니 두 번째 이야기에 비해 훨씬 밝고 따뜻하고 안정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로라네 가족에게 힘든 일이 닥치자 내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다.

 

  로라네 가족은 초원의 집을 떠나 미네소타 주까지 이주한다. 그곳에서 타고 온 말과 포장마차와 작은 토굴집과 땅 등을 맞바꾸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간다. 로라네 가족에게 토굴집은 생전 처음이었지만 초원의 집에서처럼 막연한 불안감은 많이 사그라졌다. 인디언들을 마주해야 할 불안감도 없었고 들짐승들의 출현에 겁먹지 않아도 되었다. 토굴집 근처에는 냇가도 흘렀고 읍내까지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땅이 비옥해 내년 농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로라 아빠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금방 새집을 짓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찬 미래를 그려나갔다.

 

  무엇보다 로라와 메리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풍요로운 자연과 가족들이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 좋았다. 삭막하지도 않았고 늘 긍정적인 가족애로 어디서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배려했고 아이들에게도 다정다감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로라와 메리, 막내 캐리가 건강하고 착하게 자랄 것임에 늘 안도감이 흘렀다. 한동안은 토굴집에서의 많은 경험담으로 첫 번째 이야기의 따스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로라네 아빠가 통나무집이 아닌 판자로 된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더 깨끗하고 청명한 안락함이 파고들었다.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아빠는 밀농사를 준비했고 밀을 수확하고 나면 더 풍요로워 질 거라는 기대를 한껏 안고 있었다. 로라와 메리에게도 읍내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 큰 변화가 생겼다.

 

  로라와 메리는 학교를 좋아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면서 빈부격차와 다양한 환경의 친구들의 영향을 받게 됨을 알고 잠시 로라네 가족의 현 상태를 잊고 있기도 했다. 로라와 메리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아이들이었음에도 촌뜨기라 놀림 받고 부자 아이의 시샘을 받기도 하는 등 보통 아이들이 겪을 만한 일들도 경험하게 된다. 오래 지속될 것 같았던 그런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날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로라네 가족에게 고난이 닥친다. 로라의 아빠는 밀을 수확하면 집을 지을 때 외상으로 가져온 자재 값도 치르고 말도 구입하고 이것저것 풍성하게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밀 수확을 앞두고 거대한 메뚜기 때를 만나고 모든 것이 절망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 마음이 무거웠던 터라 로라네 가족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나의 기분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로라네 가족이 너무 안타까워 지켜보기도 힘들었고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로라네 가족은 언제나 꿋꿋하고 용기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드러났다. 로라네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멀리 동부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그런 아빠를 애틋하게 기다리며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있었다. 밀농사를 망쳤지만 다음에는 잘 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가족들이 하나 되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힘든 일도 견뎌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그런 로라네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그들이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물에도 기뻐하고 감사해할 줄 아는 가족을 보면서 얼마나 검소하게 사는지 실감을 못했던 것 같다. 느닷없이 내가 눈물을 흘렸던 곳은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로라네 가족은 조금 안정이 되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들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그들의 생활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머플러, 숄, 외투, 모피 케이프가 모두 로라네 가족에게 선물로 들어왔다. 그 선물들은 목사님이 동부에 있는 교회 신자들에게 받아온 선물들이었는데 선물을 받고 너무 기뻐하는 로라네 가족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이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도 다툼이었지만 요즘 나의 마음은 굉장히 팍팍했다. 풍요롭지 않은 나의 처지에 조금은 기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침 오늘 들은 설교말씀이 생각났고 로라네 가족의 소박한 기쁨과 마주하고 보니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결코 부족하거나 불행한 것들이 아님에도 감사해 하지 않고 징징대고 있었다. 로라네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 낯모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선물과 마음 씀씀이 앞에서, 그들보다 더 풍요로우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나의 강퍅한 마음이 겹쳐져 눈물을 쏟아내자 마음이 풀어져 버렸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고,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선가 타인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엉뚱하다면 엉뚱할 수 있는 나의 이런 감정의 기울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함께 일었다.

 

  로라네 가족을 보면서 마음 졸이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며 때론 낙담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었다. 종종 누군가 왜 그렇게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책이 재밌어서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예기치 않은 내면의 치유와 맞닥뜨리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이유도 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무엇보다 달라진 게 없을지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이 나에게 꼭 그런 날이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온 로라네 가족의 이야기가 있기에 어느 곳에서 또 다른 치유와 용기를 받을지 모른다. 그런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반면 내 마음의 평화가 내려와 이 밤이 무척 풍요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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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엣권도 즐겁게 읽으셨겠지요?
아무쪼록 날마다 즐거운 삶
지으시기를 빕니다.
 
초원의 집 2 - 대초원의 작은 집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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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 '큰 숲 속의 작은 집'을 읽고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로라의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감이 샘솟았다. 아무래도 이 시리즈는 중간에 멈춤 없이 끝까지 쭉 읽어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랑스럽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로라네 가족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늑하고 포근했던 통나무집을 떠나 초원으로 이주하는 이야기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통나무집에서 들려주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될 거라 마음을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로라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지만, 통나무집을 떠나 서부로 이주하는 모습에서 개척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숲 속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로라네 아빠는 과감히 가족들과 이별을 하고 떠난다. 그러나 포장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살림살이를 싣고 서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강물을 건너기도 하고 많은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탁 트인 초원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을 짓는 일은 대부분 아빠가 해야 했기 때문에 아늑한 통나무집으로 옮겨가기까지 밖에서 생활도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인내해야 했다. 

 

  아빠는 시냇가에서 열심히 통나무를 가져와 집을 지었고 다른 이웃들의 도움을 빌려 통나무집을 완성한다. 여전히 사냥을 해서 가족들을 먹였고 엄마는 부지런히 집안 살림을 했으며 로라와 메리는 그런 엄마 아빠 곁에서 늘 조력자의 역할을 했고 동생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로라네가 초원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집을 짓고 조금씩 정착해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처럼 다양한 이야기와 아늑함은 풍부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배경이 백인 이주민들로 인해 인디언들이 서부로 밀려나던 시기라 초원에 집을 지은 로라네 가족의 불안감과 정착지의 불안정함이 교차돼서 마음이 내내 불안했다. 분명 어떤 고난이든 이겨낼 수 있는 로라네 가족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빨리 안정을 되찾아 편안함이 나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우려는 인디언들이 로라네 집까지 들어오고 종종 음식과 담배를 강탈(?)해가고 여러 종족이 모여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로라네 가족은 맘껏 초원을 누릴 수 없었고 늘 걱정과 불안감이 알게 모르게 엄습했다. 엄마 아빠는 로라와 메리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늘 조심했지만 종종 이웃들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와 아빠가 시장에 다녀와서 들은 소식들로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불안감을 감지한 듯 어린 로라도 '초원은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초원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302쪽)' 라고 되뇌었는데 인디언들이 전쟁을 치르지 않고 떠난 뒤에도 이 느낌은 여전히 로라에게도 나에게도 남아있었다.

 

  봄이 찾아오자 로라의 아빠는 밭을 일구고 씨앗을 가져와 심는다. 고기와 빵만 먹는 식단에 야채거리가 풍성해질 거라는 희망으로 온가족이 씨앗을 심고 싹을 돌보는데 나섰지만 그런 안락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군인들이 백인 이주민들을 쫓아낼 거라는 소리를 듣고 로라 아빠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가족들과 또 다시 인디펜던스로 떠나기로 한다. 애써지은 통나무집과 텃밭이 너무 아쉬웠지만 초원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엄습했던 것이 기억나, 로라네 가족이 좀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교차했다.

 

  아마 나였다면 숲 속의 작은 통나무집을 떠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떠나왔더라도 로라네 가족처럼 다시 일년 만에 초원의 집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라네 가족이 정착하기까지 아직 몇 번의 이주가 남아있기에 당분간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이 책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로라의 아빠가 늘 했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라는 말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는 로라네 가족의 이야기가 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이렇게 진한 울림으로 다가오나 보다. 변화를 심히 두려워하는 나에게 떠남과 새로운 곳에서 발견하게 될 희망이 무엇인지 조금은 진솔하게 보여준 두 번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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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나오는 분들은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기에
아쉬움 없이 새터를 찾아나섰구나 싶어요.
 
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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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힘 고속도로에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을 읽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뿐, 여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분한 고속도로가 마치 여행길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을 때 공간이동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매력을 느꼈다. 나는 10명을 따라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다리를 쭉 벋고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그 여행지를 만끽할 수 있었다. 때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맘껏 누비고, 마치 뮤지션인양 음악을 즐기고, 소소한 팬이 되어 그 나라의 영화배우나 와인을 즐길 수도 있었다.

여행지에서는 타인에게
말을 걸기가 좀 더 쉬워진다.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보다 조금 더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타인에 나에게 다정하게 느껴지는 시간. 여행을 할때 배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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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집 1 - 큰 숲 속의 작은 집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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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이 넘은 시각. 눈이 몹시 아팠고 두통도 약간 있었다. 글씨가 매우 작은 책을 집중해서 보느라 눈의 피로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잠자리에 들어야할 시간이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요 며칠사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는 일이 잦았고 늦게까지 책을 보다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책을 더 읽고 싶었지만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아 언제든지 책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인과 SNS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다 지인이 결혼선물로 준 이 책이 언급 되었고 얘기가 나오자마자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눈의 피로가 극심했던 터라 30분 정도 책을 읽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 책을 펼쳐들었다. 뭐랄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꼭 겨울방학을 맞아 신나게 뛰어노는 기분이 들었다.

 

  지인은 이 책속의 잉걸스 가족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책 속의 당찬 딸들처럼 달달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며 결혼선물로 주었다. 당시에는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언제 읽을지 알 수 없어 책장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그러다 태중에 아기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라고 언급해 주어서 꺼내들게 되었다. 내가 품고 있는 아이도 딸이고 이 책 속에 사랑스런 딸들이 나온다고 하니 지금이 적정하다 싶어 얼른 꺼내들었는데 기대이상으로 행복한 기분을 맛보고 말았다. 나의 어린 시절 생각도 많이 났고 나의 아이들이 자라나서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저자는 65세의 나이에 딸의 권유로 이 책을 쓰게 되었고 1932년에 출판되자마자 반응이 좋아 총 9권의 책(마지막 책은 사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을 집필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TV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연작은 저자의 자서전이자 19세기 후반의 미국 사회사가 풍부하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남북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일상생활의 갖가지 모습들이 어린 소녀의 순수한 눈을 통해 아기자기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은 옮긴이의 설명으로 자세하게 알게 되었지만 그런 사실을 차지하고라도 로라가 경험하고 보는 모든 것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얌전한 언니, 갓난쟁이 귀여운 동생, 다정한 아빠, 가족을 위해 많은 집안일을 하면서도 늘 사랑으로 대하는 엄마의 틈바구니에서 한 가정의 행복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로라가 사는 곳은 위스콘신 주의 큰 숲 속 통나무집으로 온통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로라네 가족이 안락한 통나무 집 안팎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그려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던 척박한 시대였지만 삶에 찌든 모습은 로라네 가족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고 필요한 만큼 욕심 부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비춰졌다. 아빠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엄마는 아빠가 준비한 식량을 비축하고 언니 메리와 로라는 엄마의 일을 거들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겨울이 되어 아빠가 사냥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밖에 나가서 놀 수 없을 때면 늘 난롯가에서 아빠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바이올린을 켰다. 아빠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숲 근처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삼촌, 이모네를 방문하면서 경험한 많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로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들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당시의 생활상이나 문화를 잘 알 수 있었고 소박하면서도 정이 살아있는 가족들의 우애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라네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가 꾸려가고 싶은 행복을 맛보았고 그 행복감이 흘러넘쳐 책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느껴졌다.

 

  9남매의 막내로 자란 나는 막내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보다 늘 치열함 속에 살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들판을 마구 쏘다니며 말썽도 부리고 신나게 뛰어 논 기억은 있지만, 워낙 식구가 많아 살림이 팍팍하다 보니 로라네 가족 같은 안락함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고 우리들이 다 자란 뒤에야 조금 살만해졌다는 되새김을 할 정도로 당시에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자 시간을 견디는 힘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로라가 경험한 자잘한 추억들을 듣고 있노라면 시골집 마당에서 보았던 수많은 별들, 겨울이면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고 스케이트를 만들어 손이 얼얼해질 때까지 빙판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정월대보름이면 직접 구멍을 뚫은 깡통으로 쥐불놀이를 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로라가 태어나고 자란 곳과 시대적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자연 속에서 자랐던 공통점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행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로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경험한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그런 수다스런 추억담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옮긴이가 말한 것처럼 가족 간의 우애, 자연의 축복, 노동의 즐거움, 고난을 이겨내고 진보를 이룩해내는 인간의 존엄성이 평화롭고 소소하게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편리함의 이면에 있는 온갖 소음과 공해들을 말끔히 잊어버릴 수 있는 청량감이 내 안으로 들어와 위스콘신 주의 숲 속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탐구생활을 풀다 잠시 펼친 책에서 만난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준 것 같다. 이 행복감이 앞으로 남은 8권의 연작 소설에서도 이어질 거라 생각하고 태중의 아기에게도 전해졌음 하는 바람이다. 내가 꾸린 가정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만난 것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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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사로운 이야기가 흐르는 한편,
손수 집을 짓고 땅을 일구며 옷을 깁고
우물을 파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든 삶이 담겼기에
이 책 전권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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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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