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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풍경, 감미로운 음악, 기분 좋은 산책을 할 때면 내 곁에 누군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곤 잠시 마음을 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런 떠올림도 잠시, 설핏 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황망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기엔 나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어떠한 확신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해버릴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었다. 깊은 열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든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22살에 읽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었기보다 어렵게 생각했던 작품이 쉽게 읽혔다는 것에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 살에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미 같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그 사이 베르테르의 선택을 극단적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누그러트렸고, 인간의 내면이 사랑에 의해 열정적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에 위대함을, 절망감이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있다는 것에 위험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베르테르의 순정에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게 무척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오고,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는 오랜만에 만끽한 휴가를 더 빛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당에 가득 찬 달빛을 보며 산책을 하다가도 명확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리워져 살짝 쓸쓸해지려 했다. 베르테르였다면 이런 고즈넉함 속에서 로테를 떠올렸을 테고, 환희보다 가슴 아픈 고통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그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 로테. 그녀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그녀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선택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리면, 마당을 거니는 나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첫 눈에 상대를 알아보고,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노라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먼저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는 나이고, 주변에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랑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원하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나약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녀 존재 자체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드높이는 베르테르 앞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에도 겁내 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총 82편으로 구성된 베르테르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 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로테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의 그의 삶은 온통 사랑과 고통, 절망과 환희로 뒤덮여 있었다. 로테가 곁에 있을 때 그의 삶은 빛이 났고,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던 그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피폐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로테를 향한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를 위대하고 숭고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면 세상에서 가장 고난 받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다네. 나는 오직 그녀만을 마음 속 깊이 흠모하고, 그녀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말일세!”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고통에 찬 편지를 보낸다. 한 사람을 이렇게 고통이 가미한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우면서도 마음 아팠던 구절이었다. 로테가 자신의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베르테르의 독백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한 쪽만 부풀려 진다고 해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이미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떠날 수 없을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로테였고,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 베르테르. 한 발짝도 물러 설 곳이 없는 그의 처지가 잔인할 만큼 안타까웠다.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지 그의 편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로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베르테르는 ‘자살행위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고, ‘나약함이나 병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일축해 버리는’ 알베르토와의 논쟁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견했었다. 하지만 베르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겼을지라도, 남겨진 사람들에겐 슬픔과 고통, 죄책감이 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은 여전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베르테르의 고통을 남겨진 사람들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슬픔 가득한 베르테르를 최후가 마음 아플 뿐이다.
사랑 때문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고통 받는 베르테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얻고 말았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녀를 향한 열정적인 마음의 일환으로 시를 읽어줄 자신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다.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닮고 싶긴 하나, 그것이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열망과 사랑의 고통으로 범벅된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 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 절망적인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기보다, 환희에 찬 사랑의 릴레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무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