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 달콤하고 순수한 아마추어의 열정, 그리고 식물 탐사여행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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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러 가지의 매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전혀 관심이 없거나 문외한인 부분에 대해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다. 당연히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지만 종종 그 분야를 벗어난 읽기의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호기심이었고 읽다 보니 멕시코의 오악사카 식물 탐사여행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안에 식물을 들이기만 해도 다 말려버리는 내가 식물 탐사여행기를 읽고 있다니. 그것도 거의 알지 못하는 양치류에 대해서라니. 내가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났지만 저자의 솔직담백한 발랄함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양치류 식물 애호가들의 모임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열정적인 애호가들과 함께 오악사카를 여행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약 10일 정도의 기록이며 미국에서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의 소소하고 세세한 이야기다. 고대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오악사카의 양치류들은 애호가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했고 스케치로 실려 있는 여러 종류의 양치류를 볼 때마다 내 눈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이렇게 관심분야가 다름을 느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양치류를 알아간다기보다 저자의 열정에 이끌려 그 세계에 조금씩 발을 디뎌 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양치류에 대해 많이 알거나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다. 양치류 세계의 입구만 들어갔다 드넓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정도만 인지하고 다시 내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자가 그곳에서 드러낸 양치류에 대한 순수한 열정, 똑같은 열정을 가진 여러 사람들,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오로지 양치류에 대한 이야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볼 줄 알며 때로는 현재 내면의 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멕시코 역사와 함께 어우러지는 양치류의 이야기는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역사 이야기와 함께 얽혀 있어 그 식물들이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1803년에 약 4,000살쯤으로 추정되었던 툴레 나무의 사진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오래 된 나무들, 그리고 외로이 생명력을 이어가며 번식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식물들. 그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식물에 갖는 순수한 열정에 조금씩 이끌려갔다. 비록 저자가 펼쳐놓은 세계는 말 그대로 낯선 곳이라 맘껏 누리지는 못했지만 오래도록 끊임없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마음에 감탄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나의 모습을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는듯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열정이 사그라져 버린다. 그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 자신도 모를 때가 허다하다. 그나마 오래도록 좋아해온 것이 책이라지만 내가 정말 순수하게 좋아했는지를 묻는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가 없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독서, 기록, 알은체가 은연중에 혹은 의도적으로 드러났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모습을 보면 식물에 대한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그들이 가진 지식보다 그들이 가진 열정, 희열, 간구를 나는 어느 것에도 쏟아 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자괴감에 우울했던 건 아니다. 자기 반성적인 모습이 있긴 했지만 내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양치류 식물 탐방기를 이렇게 만날 수 있고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저자의 책이 책장에 한가득 있는데 한권씩 꺼내서 읽어보고 싶다. 또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펼쳐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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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세트 - 전3권 샘깊은 오늘고전 15
유성룡 원작, 김기택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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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다닐 적에 어떠한 과목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국사도 특히나 싫어했었다. 외울게 너무 많고 시대적으로 정리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 영향 때문에 잔인하다는 이유로 전쟁영화나 전쟁소설도 보지 않고, 고리타분할 것 같아 역사소설도 거의 읽지 않는다. 종종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그 모든 것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아둔함을 발견하곤 한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띄엄띄엄 주워들은 사소한 지식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고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찾아서 읽고 있으며『칼의 노래』를 재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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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대한 나의 지식과 인식은 어느 정도였을까? 1592년에 일어난 전쟁,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적을 물리쳤단 사실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유언과 난중일기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덤으로 알고 있을 뿐 더 이상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여수에 살다보니 늘 만나는 게 거북선과 연관된 지명들과 기념물이었다. 집 앞에는 거북이 모양의 호수가 있어 거북공원으로 불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했던 선소가 있다. 늘 마주치면서도 이순신 장군 때문에 유명하다며 늘 그 자리에 있는, 특별하지 않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고 『난중일기』를 읽다 자주 등장하는 여수 곳곳의 지명이 뭔지 모를 뜨끈함으로 다가왔다. 여수에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이 책으로 인해 살아나고 있었다.

 

『징비록』은 '지난 일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책 제목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데 조금만 읽어 나가다 보면 이 책을 기록한 당시의 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애절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책 제목의 뜻을 지키려 했던 글쓴이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애달팠다.

 

세 권의 소제목을 보면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 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이다. 1권에서 이 책의 제목이 사무치도록 다가왔던 이유는 충분히 준비하고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음에도 그 누구도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욕망으로 시작된 7년간의 전쟁에서 가장 참혹한 피해를 본 것은 조선이었다. 명나라가 구원병으로 와서 일본을 격퇴하고 조선 땅에서 몰아내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히데요시의 욕망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나라를 방어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피폐해져가는 조선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고 잔인했다.

 

100년 동안 어지럽게 전쟁을 했던 전국시대를 겪은 일본군은 강력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무런 제재도 없이 점령한 모습은 그야말로 한심스러운 당시의 조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무런 대비도 없었고 의로운 자들도 없었다. 군관들이 자기 자리에서 조금만 최선을 다해주었더라면 일본군의 진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거란 유성룡의 안타까움이 내 마음에서도 터져 나왔다. 그런 일본군이 조선을 만만치 않은 곳으로 보게 만든 것은 백성들이었다. 임금도 빈 약속을 한 채 서울을 떠났고,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은 싸우기는커녕 서로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백성들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바다에서 너무 잘 싸워주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식량을 제때 조달받지 못하고 다른 부대와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 속에서 힘을 잃어갔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조선은 더 피폐해졌을 것이며 히데요시의 욕심처럼 명나라까지 치고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유성룡은 전쟁의 모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재상이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그 혼란스럽고 복잡한 가운데도 이 모든 기록을 남겨 임진왜란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선의 부끄러운 모습이라 스스로 기록하면서 참담하고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금할 길이 없었을 텐데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고 그래서 더 애잔하게 임진왜란의 참담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지닌 역사적인 가치와 기록의 낱낱한 점까지 파악할 혜안이 내게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마음은 참으로 씁쓸하고 오묘했다. 이 아픈 역사를 지켜보는 것만도 이렇게 참담한데 그 모든 일을 겪은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지 상상조차 못하겠다. 명나라의 군대에 모든 식량을 대느라 정작 조선의 백성들은 굶다 인육까지 먹는 사태에 빠졌음에도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농사지을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데 7년의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피의 땅으로 조선을 뒤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 시대를 감당하고 겪고 이겨낸 이들이 현재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뭉클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과 의의처럼 지난날을 돌아보지 못하고 약 300년 후의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의 비극이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3권의 부제목처럼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그 전쟁의 파란만장함을 이렇게나마 제대로 알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편함인지 그 씁쓸한 여운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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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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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일행에게 혹시나, 시간이 허락해서 서점에 들를 수 있다면 아모스 오즈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메모지에 저자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써주고 당부하면서 한권이라도 나에게 오길 바랐다. 그러나 단체로 떠난 일정이라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었고 서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해 책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내심 아쉬웠지만 언젠가 원서를 살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싶어 열심히 번역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모스 오즈의 번역서는 띄엄띄엄 출간되었다. 온라인 서점에 지정해 놓은 출간 소식 문자가 오면 바로 구입할 정도로 아모스 오즈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할 순 없어도 잔잔한 삶의 흐름을 드러내는 섬세한 문장이 좋다고 말 할 수는 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다 좋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완성도에서 오는 호감을 뛰어넘은 익숙함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책장을 덮으며 외국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망만 앞서고 얼마나 공부해야 원서를 막힘없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모스 오즈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런 갈망이 일고 말았다.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음 번역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바심이 부른 앞선 욕심이다. 국내에 막 출간된『친구 사이』를 아껴서 읽었음에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품을 향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의 한 형태인 키부츠를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을 만나면서도 온통 저자 생각뿐이었다. 30여 년간 키부츠에서 생활한 저자이기에 무엇보다 그곳의 생활을 잘 알고 있을 테고 작품 속 어딘가에 저자가 머무르고 있다 생각하고 구석구석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공동체로 이뤄지는 집단농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썩 행복하지는 않았으나 왜 사람들은 스스로 그곳에 머무르면서도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내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소유욕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의 숙소로 들어간 후 어떠한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여자 오스낫과 키부츠란 공간을 답답해하면서도 삼촌이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며 이탈리아로 오라는 요청에도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는 요탐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키부츠에 속하지 않은 바깥세상에서도 또렷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키부츠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지켜야 하는 모든 규칙과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이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의지박약인 내가 저런 공동체 생활에 속한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한 공간의 이야기이기에 8편의 이야기는 끊겨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었다. 등장인물이 얽히고 있었고 주인공이 아닌 배경인물로 등장할 때 새로운 면모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반가움이 일었고 어떤 소식이 들려오는지 주시하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소년 모시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했고 후에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로 오는 모습만 봐도 그냥 듬직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열일곱 살의 딸이 자신의 친구와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며, 아이도 공동체로 키우는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탁아소에서 왕따를 당하자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키부츠라는 공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평등하게 배분되고 기회가 주어지는 그곳이 낙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나, 늘 불평등에 시달리면서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나에게는 그곳이 갑갑하게만 느껴진다. 무엇을 또렷이 잘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충실 하는 것만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단일화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여졌다.

그럼에도 그곳을 오로지 다른 세상 보듯 무관심 할 수 없었다. 그곳이 갑갑하게 느껴졌던 배경에는 이미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경험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을 통해 단체생활을 불편함, 차별, 불평등, 분출할 줄 모르는 열등감과 불합리화들을 이미 겪었다. 그래서 그곳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로지 공동체 공간이라는 사실에만 얽매여 있으면 저자가 그려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놓칠 수 있다. 어느 곳이나 사회가 아닌 곳이 없듯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15~16쪽)

우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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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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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로 고통은 언어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그 화염 같은 속내를 고작 말로써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됩니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27쪽

 

  내 삶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해 두려움에 떨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 소중한 것이 생길수록 그런 걱정이 더 잦아지는데 그래서인지 아무 일없이 지나가는 일상이 지속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스스로 만들고 해소하는 과정일수도 있으나 닥치지도 않은 고통에서 나를 강하게 단련하려 한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마무리 짓곤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문장을 봤을 때 뭔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나 가슴에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과연 그것을 쉽게 언어화 시켜 타인에게 말할 수 있을까? 아픔을 토로하기만 해도 치유가 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그런 말을 할 기회와 용기가 함께 내재되어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난 뒤에는 상황이 좀 달라진다. 큰 고통을 격고나면 타인이 나와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이해하려 하고 위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자기 박물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통을 감히 이해했노라고 말은 못하겠다. 이해하려는 단계에도 나아가지 못한 데는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통을 오히려 덤덤히 드러내고 있는 차분함이었다. 고통을 중심에 놓고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오히려 진부했을 터인데 추억 속에 갇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남 이야기 하듯 툭 던져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나와 밀접한 것도 있지만 동떨어지거나 상상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나와 밀접한, 그렇기에 더 애잔하고 절절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기이한 사연이 있다면서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같았다. 주변에서 일어날법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의 추억 속에 묻혀 있는 이야기들. 해설에서는 “윤대녕의 주인공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일상의 활력’이나 ‘구원의 여신’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의 오롯한 ‘재생’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주인공들이 추억하는 장면과 비슷한 혹은 상관없는 나의 추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하룻밤의 인연으로 끝나버린 여인의 모습에서 헤어진 연인을 밤새도록 기다렸던 일,「반달」노래를 부를 때는 별자리 찾겠다고 고개가 꺾이도록 밤하늘을 쳐다봤던 일들 같은 나의 추억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하나 평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도 없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뚝 떼어다 보여주며 비탄에 빠져있는 현재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이 우울하지 않게 다가온 것은 저자의 절제력 때문이었다. 멈출 때 멈춰서고 철저히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 때론 냉정하고 무관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런 절제 속에 유유히 흘려가는 문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밝고 명랑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독자를 우울함으로 빠뜨리지 않는 능력. 온갖 고통을 안은 주인공들을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무엇보다 좋았다. 삶의 애환도 애환이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유려하고 아련한 문장들이 상처어린 추억이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글을 읽은 것 같다. 해외소설을 좋아해 번역체에 길들여져 있다 이렇게 우리 문장으로 된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면 마치 개안한듯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다. 윤대녕 작가의 글은 처음인데 이렇게 첫 작품부터 좋아하게 되었으니 그간 만나지 못했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그 작품들 속에서는 또 어떤 인물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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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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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 그 이름만으로 무조건 구입합니다. 드뎌 신간이 나왔군요! 그것도 작년에 쓴 글이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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