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쑥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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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차기작은 어떤 만화가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런데 육아 만화를 출간하다니! 이렇게 상큼 발랄할 수가!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다면 시큰둥하게 아이가 생기니 이런 만화를 그렸나 보다며 무심코 넘겨 버렸을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했던가. 아이를 낳아보니 정말 이 만화 속 이야기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조금 덤덤해진 것 같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몇 억이 드네 어쩌네 그런 말들이 많지만 부모의 능력보다 부모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진 게 많다면 더 좋은 거 더 나은 걸 해주겠지만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가진 한도에서 꼭 필요한 것만 해주자고 다짐했다. 첫 고민이 산후조리였는데 아이를 빨리 낳는 바람에 병원에서 9일 정도 입원을 하고 홀로 퇴원을 해서 조리사를 불러 집에서 했다.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비용은 10만 원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저자는 아내와 함께 고른 조리원에 들어가는데 그곳 원장님의 수유 마사지에 감탄하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원장님의 손길이라면 저자도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란!) 그리고 퇴원해서 올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선물 받고 얻은 게 많아서 크게 들어간 건 젖병 소독기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괜히 기저귀용 백팩에 꽂혀 비싼 걸 주문하고 지금은 처박혀 있는 것만 빼면 육아용품을 사서 크게 실패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유모차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구입했음에도 실패했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비웃을 수 없는 게 육아용품을 구입하는 건 정말 신세계에 입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역시 받았기 때문이다. 검색만 하면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종류도 많고 애매모호한 평들에 더 헷갈리게 했다. 첫 관문이 유모차였는데 아이가 10킬로그램이 넘어가자 도저히 아기띠로는 감당이 안 되고, 얻은 유모차는 주니어용이라 8개월 때 구입했다. 그것도 친구가 절반 보태줘서 구입했지 나라면 쉽게 구입하지 않았을 금액이었다. 유모차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금액도 천차만별이라 고심하던 끝에 국산에 그나마 저렴한 유모차를 구입했다. 나름 만족하며 쓰고 있고 이제는 유모차 없는 외출은 생각지도 않을 만큼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 이외에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목돈이 들어가는 유모차를 구입했다면 그 다음은 카시트다. 카시트도 얻어서 쓰다 적립금을 받을 일이 있어 6만 원 정도 보태서 새로 구입했다. 그에 비해 옷은 거의 사지 않았던 게 물려받은 옷이 있어서 많은 부분이 절약됐다. 또 아이가 커 나갈 때마다 장난감에 고민하게 되는데 큰 금액을 넘지 않은 선에서 한 개씩 구입해주고 중간 중간에 선물로 받아서 그럭저럭 때워나가고 있다. 다행히 돌이 되기 전에 쓰는, 부피가 큰 타는 장난감부터 바운서까지 모두 얻어 써서 그 시기를 알차게 넘겼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아이 키우는 게 별거 아니다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더 커감에 따라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아니라 아이 존재 자체에 대한 노력과 고민이 더 필요함을 알고 있다. 저자도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그 기쁨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이래저래 겪게 되는 육아에 관한 에피소드와 고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일해야 하는 고충, 아이도 소중하지만 부부가 먼저여야 한다는 깨달음, 아이 존재 자체로 인해 밝아지고 다투기도 하는 관계 등 보통 부부라면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고 고민해도 쉽지 않다는 것. 험한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셋이서 잘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 모든 것이 어찌 저자만의 고민이겠는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계획 중이거나 이미 장성하게 키웠음에도 눈 감을 때까지 그런 고민을 놓지 못하는 게 부모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는 유쾌하고 찡하고 공감가기도 하는 다양함을 지니고 있다.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지만 아빠의 시선으로 녹아낸 게 더 마음에 들었고 내 남편에게도 읽히고 싶었다. 다른 아빠랑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표현해 달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나서 그런지(아니면 아기 냄새?^^) 전작과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지만 나름 재밌고 마음 찡하게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아이를 낳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보이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부분은 완전 공감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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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10 - 번외편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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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을 읽긴 했지만 이 만화는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다. 지금껏 출간된 시리즈 중에 두 세권을 읽은 게 전부다. 그것도 순서대로 읽은 것도 아니고 책이 생기는 대로 띄엄띄엄 읽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기에 그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꿰어 맞췄고 그러다 개봉된 영화도 보았다. 만화책을 제대로 읽지 않아 영화와 정확히 비교는 못하지만 굉장히 서정적이고 끝이 좀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태인데 번외편의 바로 앞 이야기인 9권을 읽은 것도 아니면서 번외편을 먼저 읽다니. 좀 이상한 읽기지만 그래도 번외편을 읽는 재미는 쏠쏠했다.

 

  번외편인 만큼 시간적 배경도 등장인물도 다양한 느낌이 들었다. 린이 다이키치 집으로 온지 얼마 안 된 이야기를 쓴 것도 있고 린의 엄마 마사코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후’라는 소제목으로 최종 이야기를 다룬 것도 있다. 고향에서 만난 린, 다이키치, 코우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린과 다이키치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는 귀여웠고 코우키와 코우키의 엄마와 함께 어울릴 땐 어색하면서도 묘한 기류가 생기기도 했다. 후에 코우키는 린에게 차이고 코우키 엄마와 다이키치도 썸을 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린과 다이키치가 10년 세월을 함께 하고 사랑을 느끼는 일이 가장 핫하다. 어찌되었건 어린 이모를 키운다는 것도 낯설긴 하지만 오랜 세월 후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한다는 게 만화이기에 가능한 건지 현실감각을 일깨우기도 했다.

 

  시리즈를 완독 한 것이 아니기에 번외편을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긴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를 어서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시리즈의 초반을 읽으면서 어린 이모와의 기묘한 동거이며 육아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사랑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좀 경악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들게 되는 애정에 대해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특히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하다 보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너무 만화속의 이야기로만 몰지 않고, 너무 현실적으로 끌어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린과 다이키치의 관계가 애정으로 변하는 걸 보며 만화 속 이야기니 가능한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육아 만화 같았던 초반을 생각해 보면 귀엽고 뭔가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정이 지배적이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린도 커가고 둘의 감정에 변화가 생기면서 확실히 초반의 그 느낌은 사라졌다. 더 이상 린을 어린아이로 대할 수도 없고 다이키치도 나이를 먹고 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에 뭔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기분도 든다. 둘의 애정전선을 보며 잘됐다는 생각과 다른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여전히 교차하는 것을 보니 띄엄띄엄 읽은 만화를 다 채워서 완독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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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반달문고 19
리처드 앳워터.플로렌스 앳워터 지음, 로버트 로손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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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면서부터 책이 가득한 방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다 책이 3면을 차지하는 방을 갖게 되자 책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거실과 방 하나에 책이 가득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과연 나는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책을 몽땅 사서 책들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차근차근 모으고 읽었음에도 책이 애물단지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사할 때, 읽어야 할 책이 읽은 책보다 넘칠 때, 책장 때문에 집이 좁아지고 먼지가 쌓일 때, 정작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 책들을 반드시 다 읽을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하기에 절망하기보단 인내를 키우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마음속에 하나쯤 자신이 꼭 바라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갖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파퍼 씨에겐 추운 곳의 이야기가 그랬다. 페인트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그지만 결혼 전에 이런저런 모험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하면서도 추운 곳의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질려 하지만 파퍼 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넋을 빼고 이야기하거나 깊은 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추운 곳의 이야기를 읽곤 한다. 그러던 그에게 펭귄 한 마리가 배달되어 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퀴즈를 맞히고 선물로 받게 된 게 바로 펭귄이었다.

  파퍼 씨는 추운 곳에 직접 가지 못한 대신 펭귄을 키울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펭귄이 일반 가정집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게 하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파퍼 씨는 자신의 안락함도 포기한 채 펭귄에게 최대한 그간 지내온 환경을 제공하려 애쓰지만 새끼를 낳아 펭귄이 12마리가 되었을 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만다. 거기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펭귄들이 기운을 잃어가자 대책을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파퍼 씨는 늘 몽상에 빠져 있고 책임 있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진 않지만 천성적인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알게 되자 이 이야기의 끝은 행복하게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집어 들게 된 책인데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도 있었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을 부지런히 넘겼다. 파퍼 씨가 펭귄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내게 전해지는 듯 했다. 분명 늘어난 펭귄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고 더 빠듯해진 살림과 엉망인 집, 아내의 잔소리가 있었음에도 파퍼 씨는 펭귄들과 떨어져 지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펭귄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겠지만 어떻게든 함께 지내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가 얼마나 추운 곳을 갈망하며 그곳에서 온 동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스런 펭귄들을 널리 알리고 지키긴 했지만 영원히 펭귄들과 살 수는 없었다. 파퍼 씨가 지켜야 할 가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환경이 펭귄들에게 맞지 않았다. 파퍼 씨는 펭귄을 선물 받은 항해를 떠나는 드레이크 제독에게 펭귄을 보내기로 한다. 펭귄을 보내면서 엉엉 울면서 인사하는 파퍼 씨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는데 드레이크 제독은 아무렇지 않은 듯 파퍼 씨에게 함께 동행 하자고 한다. 오로지 이 펭귄들이 주인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몇 년 동안 먹고 살 돈이 마련되어 있어 아내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고 파퍼 씨는 꿈에 그리던 탐험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파퍼 씨는 분명 북극 탐험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 할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이 이뤄졌을 때의 기쁨. 나이가 들면서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파퍼 씨는 오래 오래 간직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점점 속물처럼 변해가고 물질에 의존하고 어떤 것을 얻어도 쉽게 마음이 식어버리는 삶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파퍼 씨는 신선한 자극이 된 셈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없다고 해서 풀 죽어 있지 않는 것. 파퍼 씨가 탐험을 떠났던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기다려봄직하고 열심히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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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의 책
조앤 데이비스 지음, 김수경 옮김 / 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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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얽매인 것이 비교적 가벼울 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잃을 게 별로 없거나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 때, 오로지 나 혼자일 때 그런 갈망은 더 자주 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늘 생각에만 머물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현재의 삶을 변화 시킨다는 건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그리고 나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관없는 이야기 같아진다.

  만약 내가 좀 더 젊고 잃을 게 별로 없던 시절, 그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면 나는 타지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을까? 나를 감추기 위해 포장을 하거나 스스로도 낯선 나를 오롯이 드러내는, 상반 된 모습 중 하나였을 거라 추측한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서 낯선 곳에 가면 오로지 믿을 건 나뿐이기에 더 차분해지고 모든 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이 맞거나 어려움에 당한 사람을 만나면 흔쾌히 동행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매를 맞던 아이와 종의 신분에서 막 해방된 여인과 함께 하는 여행. 꿈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 양치기 죠수아는 혼자이기 전에 이렇듯 타인 같지 않은 타인과 함께 동행 하게 된다.

  어디에도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새로운 길을 찾는 여행은 신비스러우면서도 은유적이라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꿈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와 그런 이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예언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는 조금 달랐지만 양치기 죠수아와 함께 여행하는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실성이 아닌 교훈적인 메시지 등이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여행이, 그들이 만난 사람들과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크게 내 맘에 와 닿지 않았다.

  내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뭔가 큰 고민이 있을 때 만났더라면 그들이 하는 여행 자체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현재 엄마, 아내의 역할에 묶여 있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엔 뭔가 늦어버리고 뒤처져 버렸다는 기분 때문에 책 속의 이야기임에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책 안으로 이입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어 몽롱한 가운데서 꿈을 꾸고 있거나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타인에게 듯는 것 같아 꾸물꾸물 책장을 넘겼다. 계속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그런 생각을 심고 있었다.

  그들의 모험 같았던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 마음에 어떠한 일렁거림도 없었다. 다만 그들이 새로 찾은 길 안에서 행복하기를, 여행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이 마음속에 잘 간직되어 새로운 삶의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행일 수 있는데 한 장소에 안주해 있으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속으로 여행을 했다 안주했다를 반복하는 나의 복잡다단한 내면이 조금은 차분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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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들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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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이 소설을 지나칠 뻔 했다. 매력적인 표지를 열어젖히는 순간 불편한 진실, 무관심하게 봐왔던 폭력적인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들췄다 덮었다 반복했는지 모른다. 초등학생인 황순구가 자기가 당한 폭력을 '슈렉'이라 불리는 아영에게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이러한 장면들을 '사소한 문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까란 물음 때문에 책 안의 이야기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장면을 조금 건너뛰자 소설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헌책방 주인 두식과 아영의 만남이 그랬다.

  이 책을 읽고 저저와의 만남의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잔혹하고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남자가 쓴 소설이 아닐까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초등학생은 너무 심하지 않나, 최소한 중학생 정도는 되어야지'란 질문을 받았다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자는 '중학생은 되나요?'란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단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체계적으로 시켜보기도 하고 되레 왕따를 당해본 적도 있다고 했다. 작품 속처럼은 아니었지만 숨기려고 해도 어느 정도 저자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로 르포를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하고 시켜 본 경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 시골의 작은 학교라 10명도 되지 않은 아이들 틈에서 왕따를 당하고 시킨 경험이 있다. 왕따를 당했을 땐 정말 자존감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왜 학교에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고, 나는 왜 이렇게 못났는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왕따에서 헤어 나오고 내가 왕따를 시킬 때는 뭔지 모를 짜릿함과 죄책감이 서려 이런 기분은 뭔가 하는 당혹감에 빠지기도 했다.

  아영과 황순구 같은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소설 초반에 내가 느꼈던 어두운 면이나 폭력적인 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저자는 두식을 등장시켰다.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보이고 싶었고, 자발적인 소수자인 두식과 어쩔 수 없는 소수자인 아영의 만남을 통해 내면 안에서 스스로 생긴 폭력도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두식과 아영은 어떻게 보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식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 이외에는 평범한 남자인 만큼, 어쩌면 헌책방이란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아영의 시선으로 내려올 수 있었고 초등학생인 아영과 대화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영은 엄마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 앞에서보다 두식 앞에서 더 어리광을 피우며 초등학생다운 면을 보이기도 한다. 폭력과 왕따 앞에 내놓인 아영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모습이었는데 유독 두식 앞에서 만큼은 솔직한 모습을 보여 개인적으로 둘의 독특한 동거 장면이 소설 속에서 제일 즐거웠다.

  황순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순구는 아영에게 자기가 받은 폭력을 그대로 세습하는 그야말로 아영의 삶을 파괴하는 인물로 나온다. 폭력은 학습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 또한 황순구다. 두식을 여관에서 처참하게 폭행한 용복이란 인물도 같은 라인으로 볼 수 있는데, 피해자가 학습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전환되면서 덩달아 악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어 참으로 씁쓸했다.

  가정이 무너지고 폭력과 무관심이 난무한 이야기를 그려냈지만 "가족은 울타리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울림이 되었다. 그랬기에 가족 안에서 소설을 쓸 수 있었고 가정이 무너져도 울타리가 무너지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어둡고 폭력적이고 우울했던 마음들에 조금은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울타리 밖의 세상이 어떤지 처절하게 경험했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는 더욱 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울타리가 영원히 튼튼하리란 법이 없기에 일단 그 안에서의 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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