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의 책
조앤 데이비스 지음, 김수경 옮김 / 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내게 얽매인 것이 비교적 가벼울 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잃을 게 별로 없거나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 때, 오로지 나 혼자일 때 그런 갈망은 더 자주 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늘 생각에만 머물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현재의 삶을 변화 시킨다는 건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그리고 나에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관없는 이야기 같아진다.

  만약 내가 좀 더 젊고 잃을 게 별로 없던 시절, 그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면 나는 타지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을까? 나를 감추기 위해 포장을 하거나 스스로도 낯선 나를 오롯이 드러내는, 상반 된 모습 중 하나였을 거라 추측한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서 낯선 곳에 가면 오로지 믿을 건 나뿐이기에 더 차분해지고 모든 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이 맞거나 어려움에 당한 사람을 만나면 흔쾌히 동행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매를 맞던 아이와 종의 신분에서 막 해방된 여인과 함께 하는 여행. 꿈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 양치기 죠수아는 혼자이기 전에 이렇듯 타인 같지 않은 타인과 함께 동행 하게 된다.

  어디에도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새로운 길을 찾는 여행은 신비스러우면서도 은유적이라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꿈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와 그런 이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예언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는 조금 달랐지만 양치기 죠수아와 함께 여행하는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실성이 아닌 교훈적인 메시지 등이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여행이, 그들이 만난 사람들과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크게 내 맘에 와 닿지 않았다.

  내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뭔가 큰 고민이 있을 때 만났더라면 그들이 하는 여행 자체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현재 엄마, 아내의 역할에 묶여 있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엔 뭔가 늦어버리고 뒤처져 버렸다는 기분 때문에 책 속의 이야기임에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책 안으로 이입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어 몽롱한 가운데서 꿈을 꾸고 있거나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타인에게 듯는 것 같아 꾸물꾸물 책장을 넘겼다. 계속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그런 생각을 심고 있었다.

  그들의 모험 같았던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 마음에 어떠한 일렁거림도 없었다. 다만 그들이 새로 찾은 길 안에서 행복하기를, 여행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이 마음속에 잘 간직되어 새로운 삶의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행일 수 있는데 한 장소에 안주해 있으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속으로 여행을 했다 안주했다를 반복하는 나의 복잡다단한 내면이 조금은 차분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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