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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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이 시간이 좋다. 아이는 평온히 잠들어 있고 나의 책상은 책들이 어지럽게 흐트러져있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 그러나 종종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 생각이 마음 속 깊이 들어와 버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 앓을 때가 있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알게 모르게 내면에 가득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와는 다르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생각을 스르르 떨쳐버리고 나니 내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99~100쪽)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좋아서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이 만화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득해서 저자와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이유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주로 편집자들과 만나고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만화를 그리게 된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저자를 만들기 전,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결국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질투심도 없이 나는 좀 더 인내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공부도 못하고 내성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학창시절의 내가 딱 그랬다. 그래서 늘 후회했다. 면전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한 것을 후회했고 그렇게 억울함이 쌓이다보니 집에 돌아와서 마치 상대방이 앞에 있는 것처럼 시원스레 할 말을 다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지만 타고난 성정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친해지면 내 속을 다 드러내는데 첫 만남이 어렵다. 그렇다고 외모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나는 소심하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공부는 못하면서 책은 좋아해서 공부와 상관없는 책을 읽어대면서도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서 늘 공상이 머릿속에 넘쳐났다. 그걸 표현해내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놀랐다던 저자의 도전과 용기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저자가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광고 문구를 만드는 거였다. 응모해서 티셔츠를 한아름 받기도 하고 라면회사 문구를 만드는 데 뽑혀서 상금도 받고 부상으로 라면을 트럭으로 받았다는 데서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용기와 능력(?)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시골집에서 늘 틀어박혀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나를 조금이나마 벗어난다는 건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스스로 다독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어린 시절과는 좀 더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려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데 용기를 낼 수 있고,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잘 쓰지는 못하지만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을 그럭저럭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외모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자괴감을 많이 떨쳐냈고 결혼까지 하고 나와 닮지 않은 예쁜 아이들(?)을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갑자기 밀려온다.

 

저자가 여러 사람의 편집자를 만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분명 든든하고 믿음직스런 편집자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그러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 열심인 저자를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존재가 되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꼭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을 때 나에게도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생각이 너무 허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상경한 저자가 일반기차를 타지 않았던 걸 후회했던 것처럼 나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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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04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내성적이라서 실컷 놀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어요. 부모님 눈치 때문에 즐거운 추억을 남길 기회가 적었어요.

안녕반짝 2015-12-15 22:20   좋아요 0 | URL
저는 동네에서는 활개를 치고 놀았는데 학교에서 특히 수업시간에는 늘 소극적이고 눈치보고 타인의 시선을 보느라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한 아이였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