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시인선 18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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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 덮인 책장의 일이란 //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바람의 지문>

  이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책 속의 시들을 만났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시집을 꺼내 들었다. 어떤 기분으로 이 시집을 읽었을까 하는 마음 혹은 내가 메모지를 붙여놓은 시구에서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메모지를 붙여놓은 시구를 다시 읊어보니 공감 가는 부분보다 왜 이런 부분에서 멈칫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서 똑 같은 글을 읽으면 나의 상황에 따라, 나의 마음에 따라 글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시집을 다시 펼쳐 들면서 이 시집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건 시의 서정성 때문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시집을 대할 때마다 늘 나의 마음은 무거운데, 시는 늘 어렵고 내가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서정적으로 다가온 시들을 만나면 일단 반갑고 안심이 된다. 어려운 시를 해석해 낼 재간도 다른 시각으로 시를 만날 자신도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혹은(곡해할지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시를 읽는 시간에 안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시는 나에게 반갑게 다가왔다. 그의 모든 시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를 읽는 내내 시라는 세계의 광활함을 맛보았고 내 마음에 들어온 몇몇 문장에 잠시 멈춰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나는 발명해야 할까> 중

  어쩌면 시를 대하는 내 마음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문학이라는 이유로 눈길 주기를 염려했는지도 모르겠다.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평범함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낯선 것을 대하는 두려움을 그대로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좀 더 열고 낯선 것을 대할 때 의도하지 않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는 겁쟁이라 이렇게 시집 하나를 읽는데도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해석에서의 동경보다 오독을 즐겨 할 것 <차갑게 타오르는>

  얼마나 매혹적인 시구인가! 이 시구에 용기를 얻어 한 권의 시집을 읽는 동안 내 멋대로, 그야말로 형편없는 오독의 시간을 즐겼다. 그 결과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지만 틀에 박힌 생각으로 제대로 읽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단 부담감은 적어도 이 시집을 읽는 동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맘껏 읽었고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그야말로 바람에 부치는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람에 대한 노래들로 넘쳐난다. (중략) 급히 오해를 막자면 이 시는 바람과 구름에 바치는 노래가 아니라 그들에게 부치는 노래라는 것이라고 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 노래들이 내 마음에 닿았다. 바람과 구름을 만날 때마다 시인의 시가 생각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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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장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고, 다 읽으면 감정의 여운이 느껴지는 서정시가 좋아요. 생각날 때마다 자꾸 읽고 싶어져요. 그런데 가끔 서정시를 표방하는 시집 중에는 너무 유치하고, 시인의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것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