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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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달리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운동을 해보고 싶어 아침 7시에 집 근처의 작은 해안도로를 달렸는데 마침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시기가 여름이라 뭍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을 달리다 포기하고 태권도장에 접수한 기억이 난다. 그때 짧게나마 달리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내 자세가 좋지 않다는 것, 이렇게 잘못 달리다가는 발 근육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런 부분이 염려되었다면 더 공부해서 자세를 고쳐서 계속 달리기를 했어야 하는데 허황된 마음으로 시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초보 러너인 점을 감안해 10km를 신청했는데 먼 거리라는 느낌 보다는 그 구간동안 계속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힘들다는 걸 정확히 경험했다. 거의 도보수준으로 경기를 마쳤지만 달리기에 대한 나의 관심과 허황심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금세 알게 된다.『먼 북소리』에서는 달리기를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달리기를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정말 달리기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심심찮게 듣는 질문은 왜 책을 좋아하냐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던 초기에는 거창한 대답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저자에게 왜 달리기를 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달리는 것이 좋아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달리기 자체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위한 모든 과정과 변화들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혹은 다른 누구에게 있어서도 아마 그렇겠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인 것이다. 그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일이라면, 좀 더 분명하게 여러 가지 일을 따져볼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는 쉽지 않다. (38쪽)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에 집중하는 시간도 좋지만 잠시 책에서 눈을 떼 사색에 빠지는 것처럼 저자도 달리기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 나이를 먹는 일에 대한 생각 같은 건 평상시에도 할 수 있겠지만 달리면서 하는 생각은 깊이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숨만 차지 않을 뿐이지 마치 내가 러너가 되어 그 길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저자가 보는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완주했을 때의 짜릿함도 대리만족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달리는 과정, 달리고 난 후의 자신만의 생각들을 드러내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드러낼 때 타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작은 시도를 해 보려는 움직임.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 지칭하는 나는 그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근에 무엇을 시도해 보았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신이 멈춰선 선을 넘어 보는 것. 그런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달리기를 하면서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노력을 할 때도 있었지만 뛰어넘지 못해 좌절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에는 더 좋은 기록이 나올 거란 희망을 가지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모습에 스스로 멈추게 했던 작은 한계들에 당장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평소에는 깊게 보지 않았던 풍경들이나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는 것. 그리고 말은 하지 않지만 함께 달리는 이들과의 동질감 또한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또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있듯이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 자체가 내가 그어놓은 한계의 선을 허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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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2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달리기보다 걷기를 좋아해요. 날씨가 추워도 운동 삼아 걸으려고 해요. 평소에 가보지 않는 길이거나 버스 타면서 바라보기만 했던 길을 걸으면 기분이 즐거워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

안녕반짝 2015-01-28 01:55   좋아요 0 | URL
전 30대가 넘고부터는 달리기는 거의 안해요. 숨이 차서요. ㅋ 저도 산책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오래하지는 못해요. 체력이 따라주질 않네요^^ 산책하면서 풍경보고 가끔은 음악도 듣는 게 참 좋은데 최근엔 그런 여유조차 갖질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