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On Life
이택광 지음 / 북노마드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잠을 자다 심하게 가위가 눌렸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 남편을 불러보아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남편을 겨우 불렀고 가위에 심하게 눌렸었다고 하자 뭔가 힘든 일이 있냐며 물어왔다. 가위에 눌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래저래 자잘한 고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형체가 내 몸을 꽉 누르던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해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가슴을 탕탕 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당했던 답답함이 느껴져서 놀랐다. 가위가 눌렸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는 뭔가 알듯 말듯 나를 간질이는 언어의 나열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제목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알려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인생론 자체를 이야기하고, 역설적으로 인생론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사실 인생론 따위는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시발점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과 자기계발 담론의 문제점이다. 여전히 자기계발 도서들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기수련 지침서에서 최근에 주목을 끌었던 힐링, 즉 감정에 호소하는 도서들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 도서를 한번쯤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곳에 쓰인 내용들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경제적인 면과 연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부단한 노력과 약간은 허황된 믿음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뿐 내 삶에 적용시키기에는 가장 중점인 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틀에 박힌 방법에 스스로를 길들이려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너무나 쉽게 알게 된다. 그래서 불끈 솟아올랐던 의지는 금방 사그라지고 다시 익숙한 내 삶의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다. 문제는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도 있겠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얘기를 다른 방법으로 하고 있는 그 책들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나의 생각을 대입시키며 저자의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이 나왔을 때 초반에 내가 언급했던 답답함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시사를 알겠다며 스스로 신문 구독을 하면서도 정치면은 쳐다도 안보고 넘겼던 내게 정치에 대한 담론은 답답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덧붙일 수 없다는 것, 그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포괄적으로 나열하며 객관적인 시선은 물론 주관적인 생각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어떠한 담론을 펼치든 어떠한 사고도 생성하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질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들을 곁들어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해답은 없었다. 정보의 나열과 간간히 섞여 들어가는 저자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저자 또한 이러한 책 제목을 붙여놓고 과연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의문의 들었다. 뭔가 매끄럽긴 하지만 저자의 생각을 쉽게 간파할 수 없는 글. 톨스토이가 말한 인생론처럼 삶을 더 좋게 만든다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알겠으나 역시나 그 목적과 의미를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데에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자기계발 이전에 ‘자기’를 들여다보고 바꾸라는 것, 그리고 인생을 허황된 희망이 아닌 현실적으로 살아봐야 하며 살아야 할 목적을 잃지 말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일요 화가’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매끄럽게 구성되어 있는 일상에 균열을 내는 것. 저자는 일상에서 조금씩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일요 화가가 되어보라고 한다. 그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다. 여전히 실천이 어려울 뿐.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이니 내가 꾸려나가야 하며 삶의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어쩌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을 말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고 괜히 실천이 어려울 뿐이라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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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택광씨가 쓴 예술 관련 글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책만큼은 읽을 필요가 있을지 망설였어요. 뜬금없이 나온 책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안녕반짝 2014-12-31 02:1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