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래빗 시리즈 09 : 사납고 못된 토끼 이야기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9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에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늘 교훈이 담겨 있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 것, 말썽을 피우지 말 것, 버릇없이 굴지 말 것 등등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 뒤엔 늘 이런 교훈이 따라온다. 그렇다고 그런 교훈이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먼저 빠지게 해 준 뒤 그냥 툭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구성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남는다.

 

  『사납고 못된 토끼 이야기』는 한 줄의 메시지는 없지만 못되게 굴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이야기였다. 의자 위에 있는 빨간 당근과 하얀 털뭉치를 보여주면서 관심을 유도한다. 그리고 사나운 토끼의 모습을 보여준다. 빳빳한 수염과 뾰족한 발톱을 가진 토끼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림으로 봐서는 그렇게 못된 토끼같이 보이지 않아서 탈이지만.

 

  의자에는 착한 토끼가 앉아 있었다. 엄마 주신 당근을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사납고 못된 토끼가 와서 달라고도 아닌 ‘이리 내!’ 하면서 빼앗아 버린다. 그리고 착한 토끼를 세게 밀쳐 버린다. 착한 토끼는 무서워서 굴 속에 숨어 버리고 그때 사냥꾼이 총을 들고 나타난다. 당근을 먹고 있는 못된 토끼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겼다며 의아해한다. 사냥꾼은 살금살금 다가와 못된 토끼를 향해 총을 쏜다. 하지만 의자 위에 남은 건 빨간 당근과 하얀 털뭉치 뿐이다.

 

  만약 착한 토끼가 그 자리에서 계속 당근을 먹고 있었다면 그 일을 대신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근을 빼앗아 먹고 있던 못된 토끼는 사냥꾼의 눈에 띄어 꼬리가 떨어지고 만다. 당근을 빼앗아 먹은 토끼가 나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냥꾼의 시야에 들어온 걸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지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착한 토끼와 사납고 못된 토끼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가 모순이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엔 내가 너무 약아버렸을까?

 

  여튼 꼬리가 떨어진 토끼는 우앙우앙 울며 도망을 갔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땐 좀 달라는 부탁과 사이좋게 나눠 먹는 태도를 보이라는 메시지로 이야기를 맺고 있다. 꼭 교훈을 깨닫기 위해 이 책을 읽기보다 그림이 좋아 베아트릭스 포터의 컬렉션을 읽는 이유가 크다. 그렇다보니 어떤 이야기는 유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이야기는 조금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던가 약간의 억지가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글씨도 크고 이야기도 짧아 후자에 속한 편인데 어렸을 때 누구나 타인의 물건을 빼앗아보고 욕심을 부려본 적이 있기에 사납고 못된 토끼에게 무조건적인 잘못을 물어야하는지 조금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저자가 부러웠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의문을 갖는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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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18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를 어른이 되고나서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달라요. 가끔 이야기에서 벌을 받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된 인물에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죠. 예를 들면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게으른 베짱이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