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갑작스런 추위로 온 몸이 움츠러든다.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무릎 담요를 덮고, 뜨거운 차를 마셔도 추위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여전히 발이 시리고, 몸이 덜덜 떨려 오는 것은 비단 나 뿐인가.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지만, 분명 책을 읽다 말고 꾸벅꾸벅 졸 것이기에 추위를 견디며 끄적일 수 밖에 없다. 갑작스런 추위라고 했지만, 겨울이니까 추운거고 이제서야 계절다운 맛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꽁꽁 얼어 버린 내 마음은 무엇으로 녹여 줘야 할까. 봄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고, 자꾸만 움츠러드는 내 마음을 돌보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때 김훈의 책을 만났다. 오랜만에 나온 신간이라 예약판매까지 했으면서, 정작 책에는 손을 못대고 있었다. 편하게 하는 독서에 익숙해진 터라 쉽게 마음을 터놓지 못했다.

 

  처음 그의 문체를 대하던 낯섬을 기억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펼쳐진 수 많은 섬들의 존재에 한참을 헤메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연달아 6권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의 문체가 식상해졌다.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배치해 놓은 그의 글은 무미건조했고 답답했다. 그래서 한 동안 그의 글을 읽지 않았는데, 답답함이 조금은 가셨을거라는 생각에 다시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기에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글은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듯 팍팍한 내 마음을 더 옥죄고 들어왔다. 추운 겨울날이었고, 내 마음도 스산했고, 무엇보다도 그의 녹록치 않았던 삶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별빛처럼 흩뿌려지던 첫 글, <바다의 기별>이 지나가고 아버지에 관한 글이 나왔다. 첫 시작은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였다. 그 문장에서 앞에서 멈출 수 밖에 없던 이유는 9년 전, 나의 아버지도 11월의 차가운 땅 속으로 묻혔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묻혔는지 장지까지 따라가지는 못했지만(집 근처였음에도 어른들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그 문장만으로도 그때의 분위기가 그대로 젖어오는 듯 했다(저자에게도 나에게도). 무덤앞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부재를 인정해야 했던 저자는 자상하지도 않고 가정적이지도 않은 또 다른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던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늘 바깥으로 돌던 아버지였지만, 늘 아버지 편을 들었다고 했다.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 풍화 되어 버린 슬픔은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저자.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 된다는 것이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 장모의 죽음, 딸아이의 취직, 어머니에 대한 추억등으로 채워진 글들은 그동안 저자가 드러내지 않았던 사적인 내면의 세계였다. 담담하면서도 고루하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노라면, 나와는 다른 업겁의 세월을 지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의 희비애락이 조금씩 쌓여간다고는 하지만, 저자와의 공간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일들이 저자의 글 속에서 새롭게 재조명 되기도 했지만, 아직 내겐 풍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슬픔을 말할 때는 진하게 배어나오는 아픔 앞에서 당황하고 말았다. 작은 바늘로 찌른 살갗에서 얘기치 못한 양의 혈액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내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담담했다. 세월의 깊이를 말하지 않는다면 언제 일어난 일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뎌 보였다.

 

  동병상련인지, 마음의 착찹함 때문인지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글 속에 깊이 파묻힌 것만은 사실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세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자의 내면 세계를 탐색하느라 바빴다. 특별한 얘기라기 보다 삶에 녹아드는 일상을 얘기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추억에서 벗어나 시와 음악, 기행, 그림에 관한 글들은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저자에게 어떠한 소재가 주어지든지 저자의 문체로 녹여 버리는 다양함을 맛본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읽지 않으면, 보석 같은 문장들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 문장에 찬사와 의문을 던지기도 하고, 질투섞인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은 쉽게 내 마음에 박히지 않았다. 저자의 특징이기도 한 애매모호를 가장하여 정곡을 찌르는 문장을 되풀이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특히 그가 <말과 사물>에 대해 강연한 내용은 덕지덕지 붙여놓은 메모지로 가득했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어 붙은 메모지는 정작 내 마음속을 겉돌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의 글을 다 읽었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좀 특별한 부록이 펼쳐진다. 분명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만났던 서문들과 수상소감이 실려 있었는데, 무척이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나를 훑고만 지나가는 그의 문체가 낯설어, 직접 책을 찾아 대조해 보는 미련한 행동까지 할 정도였다. 미련한 행동이 끝나자 펼쳐진 것은 화가 오치균의 작품들이었다. 화가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작품이 궁금했지만,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독자의 마음을 알고 살짝 실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와 긴 여정을 함께 한 기분이다. 하룻저녁에 읽어버린 책에서 마주한 저자는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새로운 옷을 갈아 입고 다가왔다. 그만큼 다양한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비교적 많은 작품을 통해 그와 소통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어느 위치에서 있던지 이런 소통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때마다 토를 달고, 감격하고, 냉소적이라고 무언의 암시를 나도 보낼 수 있게 말이다.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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