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3 : 세계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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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중학생이 된 지인의 아들과 책 이야기를 하다가『퇴마록』이야기가 나왔다. 나에게『퇴마록』은 나의 유년시절 함께한 책이었고, 당시에는 그런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고, 뭉클했던 책이라고 말이다. 내가 너무 재미있게 말했는지 그 아이가 자꾸『퇴마록』을 빌려 달라고 했다. 나는 단번에 안 된다고 했다. 중학생이 된 네가 읽기에는 아직 그렇다, 시간이 좀 지나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나를 볼 때마다 책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기에, 그건 내 소중한 기억이라고 정 읽고 싶으면 엄마한테 허락을 받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학교 과제와 학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풀이 팍 죽어 놀 틈이 거의 없이 공부만 한다는 얘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갑자기 짠해졌다. 그래놓고 또『퇴마록』을 빌려 달라 했다.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빌려주고는 엄마 몰래 읽으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퇴마록』보다 더 험하고 자극적인 세계를 모르는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씁쓸함도 있었다.


그렇게 책을 빌려주고 난 다음 날, 얼굴에 팩을 바르고 편하게 누워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딩동’ 했다. 저녁에 올 사람이 없어서 남편보고 나가보라고 했는데 마침 씻고 있어서 내가 나갔다. 지인의 아들이었다. 목적인즉슨,『퇴마록』국내편 2권을 빌려 달라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들어오라 하고(우리 집 현관문은 거의 열려있기에), 나는 안방에 숨어 빼꼼히 고개만 내민 채 서재방 오른쪽 책장 꼭대기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알아서 책을 찾아서 나가는 아이에게 “재밌지?” 하고 물으니 “정말 장난 아니고, 심각하게 재밌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아이를 보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나만의 비밀을 뺏긴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책을 빌리러 오는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빌려 준 책을 하루 만에 읽고 또 우리 집에 들른 아이를 보며 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예 두 권을 빌려주고 오지 말라고 퉁을 놓았지만, 아이는 해맑게 이틀 뒤에 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고는 기분이 묘해져서 나도『퇴마록』을 꺼냈다. 이미 고등학교 때 완독한 책이지만 7년 전에 나온 개정판을 모두 소장하고 있어서 다시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꼭 1년 전이었고, 세계편 3편에서 멈춰 있었다.『퇴마록』에 열광하는 지인의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보다 먼저 선점해야겠단 생각에 책을 펼쳐 들었다. 유치한 목적이나마 생기자 좀 지루해서 놓아버렸던 부분부터 술술 읽혔고, 책을 덮으니 새벽 1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내가 읽다 멈춘 부분은 퇴마사들이 블랙서클의 존재를 알고 루마니아 드라큘라 성까지 간 부분이었다. 토굴에서 각자 흩어져 공격을 받은 부분이었는데 이상하게 여기부터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악행을 자행했던 코제트를 물리쳤지만 그녀는 블랙서클의 일부분이었다. 코제트의 영혼이 구원 받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수많은 사상자를 낸 힘겨운 싸움의 끝은 씁쓸했다. 무엇보다 코제트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에 소외 받은 사람들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더 그랬다. 그럼에도 퇴마사들은 나머지 블랙서클의 멤버를 찾아야했다. 코제트가 알려준 젠킨스와 히루바바를 찾아 나섰는데 젠킨스는 캐나다에, 히루바바는 아프리카 말리에 있었다.

젠킨스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물건이나 사람의 기록을 읽는 능력을 지닌 전직 형사 더글러스를 만나게 된다. 후에 블랙서클의 본거지를 찾는데 이 남자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데, 여하튼 잘못된 신념으로 블랙서클의 일원이 된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분명 잘못된 생각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백인이 가져온 문명으로부터 자신의 종족을 지키려 했던 히루바바의 이야기는 더욱 그랬다. 꼭 20년 전에 세계편을 읽으면서 메모를 해 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히루바바가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진 모습을 다시 마주했는데, 현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현암은 그 생각이 틀리지 않지만 문명이 주는 이익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히루바바나 현암의 말이 모두 맞아서, 그 절충안이 없어서 이 세상은 아직도 평화롭지 못한 모습이 많나보다 싶었다.

지금껏 만났던 어떤 인물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블랙서클 일원의 영을 모두 흡수했기에) 블랙서클의 마스터를 의외의 존재가 제압해 버리는 것을 보며, 우리가 이 세계를 아는 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연희는 자신을 늘 지켜주는 남자가 ‘리’로 불린다는 것만 알았고, 곧 그의 영체도 잃어버렸지만 그들이 파괴해가는 악한 영의 세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소설이기에, 소설의 배경 안에서 생각하려 하지만 자꾸 현재와 연관 지어지는 이야기들이 영 개운치 않았다. 나의 추억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고 싶어 정독하고 있는 시리즈였지만, 현재 읽어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무엇의 변화를 바랐던 걸까? 정의 사회? 언제나 선이 이기고, 악은 패한다는 사실? 현재에 대입해 봤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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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4-24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마록‘이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책이 국내엔 없었지요. 주로 일본소설이 이런 계통이 좀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이걸 읽던 시절이 딱 고등학교-대학교시절 같습니다. 디테일은 차이가 많겠지만, 무속인이 아닌 소위 인증된 종교소속의 퇴마사도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가 모르는 영적인 현상들이 많이 있으니 생각하면 여전히 ‘퇴마록‘의 세계는 저를 무섭게 합니다.ㅎ 책을 빌려주시기도 하는 걸 보면 너그러운신 듯...ㅎ 저는 가족이 아니면 책은 빌려주지 않습니다. 못 받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읽지 않고 그냥 욕심에 빌려가서 안 갖고오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데 위의 얘기처럼 열심히 읽으면서 빌려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힘들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안녕반짝 2018-04-25 12:03   좋아요 1 | URL
저는 언니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읽을 때는 정말 아쉽고 서운하고 뭉클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개정판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껴두면서 읽고 있었는데 이렇게 빌려달라고 하니 완전 저도 긴장감을 느끼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멈춰 있어요. 저 아이도 시험 기간이라 빌려가는 걸 금지당했고(엄마로부터), 저는 감기가 된통 와서 식욕, 독서욕, 의욕을 다 잃어버려서 지금은 그냥 감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다 읽어버릴 의욕이었는데 감기 한 방에 날아가버렸어요.
저도 책은 잘 안 빌려주는 편인데 요즘엔 거절을 못해서.. 쩝!
책이 상해오는 게 제일 마음 아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