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탐정 정약용
김재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늦은 밤, 분명 졸리고 피곤한데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책을 덮었을 땐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내일이 걱정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 후련했고 더불어 마음이 복잡했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건 흥미로웠지만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을 마주했을 땐 무엇이 정말 옳은 건지 단정 지을 수 없어 묵직함을 안고 잠들었다.


천연두를 앓은 흔적으로 삼미자란 아명으로 불리는 어린 약용과 이가환은 주막에서 의문의 사망 사건을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해보려 하고 앞으로 그들이 만나게 될 수많은 사건의 시작일 뿐이라고 짐작했다. 그들이 여행을 하다가, 혹은 시간이 흘러 의문의 사건 앞에서, 나라의 녹을 받는 입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모든 것은 의문의 사건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여행하던 시절에 만난 의문의 남성, 진이라 불리고 세구의 시신과 함께 그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도무지 늙지 않는 여러 이름을 가진 남자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홀연히 사라져 버린 뒤 그때와 비슷한 살인사건으로 재회 할 것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난 범인 중에서는 오로지 살인을 즐기는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진이라는 남자의 목적이 궁금했다. 그가 기이한 시신을 남기고 약용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들이 무엇인지 말이다. 약용이 우여곡절 끝에 그와 마주했을 땐 그는 서양의술을 비롯해 세상의 변화를 그에게 일러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평등교의 교리를 설파하면서 조선의 개혁을 바랐고 약용이 함께 도와주길 바랐다. 그 목적 때문에 오래전 약용과 마주했을 때부터 계획을 세워왔던 것이다.

독 안에 쥐처럼 가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약용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약용이 조선의 앞날을 위해 고민하는 모든 것을 훤히 들여다보는 진이란 남자에게 마음이 쏠려서인지 약용이 일단 그의 제안을 수락한 뒤 새로운 해결책을 도모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기대할 것 없는 조정에서 지원군이 오지 않을까, 진이란 남자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되진 않을까 하는 수많은 가설들을 세워가며 읽어나갔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흐름을 어느 정도 추측하면서 읽고,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반전을 주면서 흘러갈 땐 또 놀라곤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그런 과정을 여럿 거쳤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해결된 것 없이 책의 쪽수가 줄어들 때마다 어떤 결말이 드러날지 흥분되면서도 이미 과정을 통해 대강은 유추할 수 있는, 결국은 명확하게 똑 떨어지지 않는 삶에 대한 회의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당황스러웠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 안에서 약용과 진은 충돌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괴리가 만들어낸 세상의 부조리함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는 것이 씁쓸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그러한 세상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진이란 남자의 잘못된 방법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펼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갈망은 있었다. 약용이 갈망한 세상에 대해 동조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방법은 정직했기에 끈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소수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정당한 방법이 바탕이 전제된 채 그러한 의문과 실천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은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무거운 마음이 자꾸 들었던 것은 과연 나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는 것 때문이었다. 또한 현 세상은 어떻게 흘러 가느냐였다.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혼란스러움 속에서 도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묵직한 질문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중요한 질문이었다. 나의 생각이 엉뚱하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내게 남긴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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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4-24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김탁환작가의 백탑파 시리즈의 느낌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