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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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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라는 생각이 보통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절박하게 된지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 생각이 그동안 점점 더 강도가 높아져서 지금은 거의 견디기가 힘들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흐름을 막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을 보는데 숨이 다 막히는 것 같더니, 선거가 있었고, 숨통이 좀 트이나 싶긴 한데 아직은 긴가민가한 시점이다. 그런 참에 '동시대'를 호흡하는 책이 나와 단숨에 읽었다. (그래도 짚어주고 긁어주니) 반갑고, (그래도 여전히 힘들고 쉽지 않다는 소리니) 무겁다.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고 제시하고 싶어하지만, 희망의 빛은 가늘고 현실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활성 네티즌이라고는 할 수 없고, 신문을, 그것도 단 하나의 신문만을 날마다 비교적 성의있게 읽는 편인데 다행히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의 저자는 거의 다 익숙한 사람들이다. 쉽게 손도 갔고, 읽는 동안 공감도 쉬웠고, 재미도 있었다. 늘 먹어 익숙한 밥상을 좀더 정색하고 차려낸 듯, 한 두 가지만 있어도 충분하다 싶은 밥상에 맛있는 찬이 열 두 가지나 된 듯 하여 한꺼번에 읽어치우기에는 포만감도 지나치니 숨도 가빴다. 어제 오늘, 손에 잡은 뒤에 놓지 못해 후다다닥 달려 읽었지만 그러다보니 열 두 가지 맛있는 반찬을 정식으로 먹지 못하고 비빔밥으로 먹어버린 듯 아쉽기도 하다. 나중에 한 가지 한 가지씩 골라서 제대로 먹어야 되겠다, 라고 마음 먹는다. 하나하나가 비빔밥의 고사리나물이나 도라지나물, 호박나물처럼 다 귀하고 제각각 맛있는 반찬과 같아서 따로 천천히 먹어야만 제 맛도 볼 수 있을 터이다.  

열 두 강연자 중에서도 물론 더 솔깃한 강연자들이 있다. 책으로 이번 강연을 몰아서 들은 내게는 김상봉과 오연호, 김찬호와 박원순의 강연이 이참에는 솔깃했다. 그러고보니 그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분석자이기보다는 제안자, 강연의 비중을 현상의 분석에 보다는 각각의 개인이 한 손이라도 내밀고 한 발짝이라도 떼 놓을 수 있는 뭔가를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려면, 책임있게 살려면 내 손도 뭔가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그나마 답답한 가운데 한 줄기 바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의 시류란 게 가만 있다가 함께 떠내려가도 될 만큼 여유롭지가 않으니 기를 쓰고 거슬러 올라야 할 것만 같은데, 뭣 하나라도 잡고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아서 우선 그런 제안들에 귀가 활짝 열렸을 것이다. 물론 다른 강연자들도 다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하지 않는 자 없었지만, 스펙트럼이 넓고 추상적이어서 천천히, 또 곰곰히 생각해볼 거리들을 남겼다.  

솔깃했던 이야기들 중에 하나라도 예를 들자면 이렇다. 2000년에 '학벌없는사회'라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사회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04년에 학벌 문제에 대한 현상적인 비판 말고 이론적인 분석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학벌사회>라는 책을 썼던 김상봉은 이렇게 말해서 내게 공감을 넘어 번쩍, 하는 깨우침을 줬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가장 첨예하게 일어나는 곳이 교육 현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계급적 불평등 또는 사회적 차별로서의 학벌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진 측면이 있고, 바로 지금이 가장 극단적으로 힘든 때입니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니 결혼하시거든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애 낳지 마세요.(그렇지..대한민국에서 부모 하겠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단순히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부모가 힘들다는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입니다.(엥? 부모되기 힘들다는 것 말고 윤리?)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냐는 것이죠. 아이들 입장에선 여기가 바로 생지옥이니까요. (!!) 

아. 내게는 이런 교육자가 필요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바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내가 학생이었던 때로부터 어언 이십오년이 지났고, 어느새 부모가 되어 '이 무슨 듣도보도못했던 난감한 상황이란 말인가' 하고 살다보니 또 어느 새 학부모가 되었고 역시나 버벅거리는 와중이다. 나는 어느새 학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질 일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새 생지옥이라는 '현장'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지고 있는 바로 당사자들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원했던 것일리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묵묵히 그 현장에 있다. 바라보는 나도 고통스럽지만, 현장의 그들은 오죽하랴.  ... 그 고통을 감내하며 그들이 익히는 것은, 그러니까 '자유와 주체성의 능력'이 아니라 책을 보면 다 나와있는 지식을 단기적으로 암기하는 것 뿐이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는 느끼지만 '자유와 주체성'을 익히고 함양하지 못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고, 주장하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아이들. 그걸 교육이라고 하고 있는 학교와 밀어붙이는 국가. 여기에는 당연히 상식적으로 희망찬 미래가 없다.  

그는 물론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상위 3퍼센트를 위해 전체를 희생시키고 있는 말도 안되는 시스템에서 지금처럼 3퍼센트 안에 들려고 생존경쟁을 하지말고 시스템을 바꾸자고. 대학을 평준화하자고 한다. 우리나라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다들 그렇게 하는 건데. 우리는 죽어도 못할 것 같은 그 일이 실은 이미 실험 끝난 일이라는 걸 그는 되새겨준다. 바로 지금처럼, 더이상 나빠질 수가 없을 때가 그 일을 해야할 때일 것이다. 학부모인 나는 사실 이미 제도교육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아이는 간당간당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나나 아이나 기대할 어떤 것이 남아있지도 않다. 언제라도 툭 던져버릴 수 있다는 마음을 다지던 차에 김상봉의 이야기는 위안도 되고 다소 희망도 되고.. 그랬다. 그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능력이 다만 세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책 읽는 사람이 되는 것,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다. 밑줄 그었다..) 그리고는, 

이 세 가지가 필요하고, 무조건 학교에서 나오는 게 중요합니다. 10년 후에는 한국 사회에서도 본격적으로 새로운 교육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제기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그 다음으로 넘어갈 발판도 마련될 겁니다.  (학교를 나와라, 는 과격해 보이는 제안 뒤에는 대안학교, 홈스쿨링, 검정고시.. 라는 가능한 대책도 보여주지만, 역시나 이런 대책들은 대책 자체로 강력하다기보다는 마음먹기에 따라 대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들이리라)

 어쨌든 그의 예언대로라면 10년 후에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겠지만, 역시나 10년간은 암흑 구덩이인 것이다. 그래도 그의 예언을 믿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사는 중에 내가 할 일도 있을 것이고...   

김상봉의 강연 뿐만 아니라, 여러 강연자의 강연에 위와 같이 꽂혔더랬다. 하나만 정리해봐도 이렇게 구구절절이다. 두루 다 이리 하기는 어렵겠으니 역시 비빔밥으로 맛봐야 할 건가....  

지금 이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 오랫동안 공들여 쌓았다고 생각했던 탑이 생각보다는 너무 약해서 순간에 폭삭 허물어지는 데 대해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는 것, 그러자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런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 온 '살아있는' 지식인들이 현재를 진단해보게 되었다는 것의 결과가 이 책이다. 강연자들은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이 들어 이미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이제야 듣고 관심 갖게되는 낯선 것도 있다. 하나하나 다 들을 만 하지만, 강연자들이 나아가는 길도 다 제각각이고 결국은 하나로 모일 것 같아도 꼭 그렇지 않구나 싶은 것도 있다. 이 사회를 '정보화사회'로 규정짓고 '미디어 패러다임에 서서 민주주의를 기획하는' 진중권의 발언과 통신기기가 신경망의 일부처럼 가동되는 요즘을 'out of connect, out of mind'라고 표현하면서도 엉뚱하게 '골목길'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김찬호의 발언은 함께 엮어서 보기가 쉽지 않다.(비빔밥의 재료들도 항상 다 조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 나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진중권의 이야기에 익숙했지만 의외로 김찬호의 썰에 끌렸다. 물론 그 둘이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길을 통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시대를 읽는다는 것도 전망을 제시한다는 것도 역시나 어렵다.  

군데군데 접어가면서, 때로 밑줄도 그어가면서 읽었다. 그새 열린 마음으로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친구랑 김찬호가 말하는 '돌봄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두고두고 천천히 읽고싶다. 하나하나 떼어서 벗들과 이야기 나누고도 싶다. 다시, 무리한 일일 것도 같지만, 여러 강연자들의 분석과 제안을 한데 버무려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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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6-0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전 아직 뜸들이고 있습니다.

sprout 2010-06-10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제가 먼저는 한달간이나 완전 게으름을 부렸거든요. 나름 피치못할 사정이 있긴 했지만.. 둘다 중요한 일인데 하나만 떨궈버린 게 갑자기 심하게 죄밑이 되지 뭡니까.. 순서 바꿔서 욕심보다 도리부터 챙기기로 마음먹고 후딱 읽었습니다. ^^
 
콩쥐 짝꿍 팥쥐 짝꿍 난 책읽기가 좋아
오채 지음, 윤봉선 그림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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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친구를 사귀게 되는 과정은 어린이에게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게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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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지음, 김중석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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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후에 아쉬워지는 가구들을 되찾듯, 진짜 소중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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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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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 편의 이야기, 김소연이라는 작가의 품위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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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은 지음, 오윤화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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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착한 주제와 새롭고 멋진 소재의 결합! 재미있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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