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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는 말했다 ㅣ 느림보 그림책 9
이민희 글.그림 / 느림보 / 2007년 1월
평점 :
라이카는 뭐라고 말했을까?
우주는 아름답지만, 외롭다고? 우주는 아름답지만, 배가 고프다고? 우주는 아름답지만, 텅 비었다고? .... 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이 그림책, 왠지 잊히지가 않았다. 빌려서 보았는데, 몇 번을 보고 돌려주고 나니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서 보게 되었다. 라이카에 대한 그림책,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책이다. 1976년생의 이민희 작가, 대학 때는 천문우주학과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놀았다는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었다. 이 그림책은, 라이카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넘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게다가 오, 라이카 이야기의 슬픔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해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게다가 이렇게 분방하게 그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2007년은 라이카가 우주로 쏘아올려보내진 해로부터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에 맞춰 라이카에 대한 반추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라이카의 위대한 희생을 기반으로 인류는 우주로 나아갔다, 인류는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식으로 라이카를 추모하는 시가 나오고 노래가 울려퍼졌다.
라이카는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처음 우주로 '발사'되어서는 임무를 수행하며 일주일을 살다가 원래 계획되었던 대로 '평화롭게' 독극물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는 게 원래 소련 당국의 발표였다. 그러나 2002년 밝혀진 '진실'에는 라이카가 훨씬 고통스럽게,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나저러나 처음부터 돌아올 수는 없게 설계되어있던 스푸트니크 2호 안에서 라이카는 일주일이든 열흘 후에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그 죽음은 안락사 수준이었으므로 이 죽음의 내용이 이 일을 시행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그저 묵념하며 애도할 정도였을 터이다.
그런데 밝혀진 진실에 의하면 라이카는 위성 발사 직후부터 발사의 충격과 낯선 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라이카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세 배나 빨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로켓은 곧이어 궤도를 이탈하게 되는데, 당시 기술로는 차단이 불가능했던 태양의 열선과 방사능에 노출되어 고통 속에서 발사 직후인 5~7시간 만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검이 되어 지구 궤도를 돌던 라이카는 지구 대기권에서 스푸트니크 2호와 함께 폭발했다고 한다. 이것이 라이카에 대한 새로운, 불편한 진실. 라이카는?
지금도 수많은 실험동물들에 빚지며 수많은 의약품들이 인간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니, 딱히 그와 달리 '특별한 라이카의 슬픔'이라 생각하는 것도 생뚱맞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라이카는 어쩌면 '소중한 인류(인류만 소중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희생자' 들의 대명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미지의 우주로 향한다는 것이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행위는 아니니까 죄책감에도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오로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우주로 쏘아올려진 이래 실은 무참히 죽어간- 살해된- 한 생명을 지은이가 어떻게 바라보고,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데 대해 나는 관심이 갔다. 그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림책으로 태어난 것이니까. 그림책은 문학이고 그림이다. 게다가 지은이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니 이 그림책은 오롯이 그이의 생각이고 표현이다. 몇 번을 거듭 보면서, 나는 지은이의 그 방식에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끌리던 것의 실체를 서서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물론, 그런 라이카의 희생을 찬양하며 인류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내가 보기에) 어떤 비난도 빈정거림도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런 라이카를 위로하고 보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라이카야, 너 정말 힘들었겠어. 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한테 우리는 뭔가 크게 잘못한 거 같아..." 이런 시작. 글쎄, 그런 이해와 위로가 라이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최소한 편리한 오해와는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
라이카의 공포, 고독, 고통을 지은이가 담담하게 들려주고 보여줄 때, 우리는 그와 대비되어 기대와 설렘 속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있는 사람, 유리 가가린의 이야기를 본다. 가가린은 영웅이 되었고 그 스스로 충분한 기쁨을 누렸으나 그 반대의 경우였던 라이카를 지은이는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 담담한 어조로 하여 그 대비를 바라보는 우리는 흥분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함께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림책 첫 부분의 이 현실 인식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그 무게감이, 썩 좋았다.
그리고 곧이어 작가는 비극의 현실을 기록하는 자의 역할을 넘어 , 슬쩍 상상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곳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충분히 문학적이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우주선을 발사합니다.
사람들은 귀를 활짝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우주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이 세 문장과 세 장의 그림에서도 작가의 표현력이 돋보인다. 오로지 하나의 문장에 펼친 그림 한 장이 고요하게 이어진다. 특히나 세 번 째 면은, 정말 좋았다. 별 몇 개가 떠 있을 뿐인 캄캄한 밤하늘, 아래 수없이 늘어진 비슷비슷한 집들, 집 앞에 나와 앉은 많은 개들, 그들 모두 입 벌려 밤하늘을 향해 짖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우주를 표현함. 이 그림책 전체에서 아마도 가장 멋진 부분이 아닐까. (완전 주관적 ^^)
그리고 뿌그별의 이야기. 이야기의 분위기는 급반전을 하여, 라이카는 뿌그별 우주인들이 최초로 만나는 지구별의 생명체가 되어 존중받는다. (어.. 어쩐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라이카는 지구 대표이고(어, 이것도 이 상황에서는 당연한 이야기), 라이카와 뿌그 인들은 친구가 되고, 뿌그 인들이 만들고 있는 우주 지도에는 지구가 그려넣어진다. 그 지도에 그려진 지구 생명체의 모습은 라이카- 개의 모습이다.
우주는 깜깜하지만, 희망이 있고 기적이 있었다. 지은이의 상상 속에서 우주는 그러했고 라이카는 그러했다. 그 상상력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라이카의 이야기는 슬프지 않다. 그건 분명 사실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 왜곡 따위로 말해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는 라이카의 고독과 고통을 기억하고 있고, 나는 대답 없는 우주의 회신도 기대할 수 있고, 나는 라이카가 적절한 대우를 받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지은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이 그림책을 따르는 행로가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라이카는 말했다.
"멍멍!"
^^ 실은 이 그림책에서 라이카는 말풍선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구 대표 라이카입니다."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의 원래 이름은 '쿠드랴프카'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그녀-암컷이었다-를 우주에 보내기 위한 훈련을 시키는 동안 '라이카' 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불렀다는데, 라이카 종의 개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라이카는 또 러시아 말로 '짖는 녀석' 쯤 되는 뜻이라 하니, 우리 식으로 치면 '멍멍이' 쯤 되는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