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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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에너지는 넘쳐서 나눠받기 딱 좋다. 두고두고 보면서 그 에너지를 얻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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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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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같은 온다 리쿠.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나 쏟아져나오는 것일까. 게다가 엄청난 다작을 하는 것 같던데. 그야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생산된다는 것, 정말 작가 속에서 솟아나는 이야기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온다 리쿠의 장편이라면 뭐든 정말 몰입해서 읽게 된다. 그녀의 소설들은 대단한 이야기의 힘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네버랜드>가 펼쳐놓는 이야기의 구조는, <밤의 피크닉>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도 비슷하고 <흑과 다의 환상>에서 펼져지는 이야기와도 비슷한 아우라를 풍긴다. 그게 온다 리쿠의 아우라일까. 그녀가 만들어낸 인간들은 모두 과거에 묶여있다. 그 주인공들의 노스탤지어를 끌어와서 풀어내는 온다 리쿠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비슷비슷한 구조 속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조금씩 비슷하고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 자체는 스스로의 힘을 가진 듯 저절로 흘러가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힘있게 흘러가는 것이다. 마치 이야기가 스스로 살아있는 듯, 원래 있는 이야기가 온라 리쿠라는 메디움을 통해서 술술 풀려나오는 듯, 어느새 온다 리쿠는 등장인물들의 과거, 추억과 회한과 응어리를 풀어주는 영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온다 리쿠,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불가사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특이한 작가다.  

<네버랜드>도 역시나 재미있다. 설정도 아주 짜임새있고 긴박감이 넘친다. 언제나 과거의 비밀에 묶여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미스테리의 냄새를 풍긴다. 온다 리쿠의 '그들'은, 절대 자신을 한꺼번에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과거는, 마치 한 가닥 이게 뭐야? 하고 잘못 잡아당긴 털실 조각처럼, 끝없이 끝없이 줄줄 풀려나와 당황하게 만든다. 뭐야? 이렇게 무거운 일들이 어째서 자꾸만 자꾸만 풀려나오는 거지? 이 녀석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녀석, 또 저녀석, 또 마지막으로 너까지... 모두 "나 사실은 어릴 때..." 하면서 트라우마를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혹은 나즉나즉하게, 거북한 게 아니라 독자인 나도 살짝 한 귀퉁이에 앉아 들어도 될 것같이 풀려나온다. 나,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듣고 있다. 그런 기분이 온다 리쿠의 책을 읽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긴장이 된다.  

사이사이, 이런 덤을 얻는다. 

"세 사람은진지한 표정으로 새전을 넣듯이 손에 든 엽서를 한 장씩 우체통에 떨어뜨렸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순간은 언제나 안도와 후회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한다. 편지를 손에서 떠나보낸 순간, 그 두 가지가 불안감과 해방감으로 바뀐다." 

그래, 정말 그랬어. 그런 느낌을 글로 쓰면 이런 거구나. 

"여자애들은 귀엽고 재미도 있지만 쓸데없는 게 이것저것 너무 많이 따라오거든. 편의점 영수증이라든지, 분홍 리본이라든지, 도넛 가게에서 받은 머그컵이라든지, 수첩에 붙이는 스티커라든지. 그런 자잘한 것들이 같이 붙어오는 점이 귀엽지만, 한편으로는 싫어." 

이런, 적확한- ... 

"앞으로 취직을 하고 가정을 가져도, 그는 가끔 이 편지와 사진을 꺼내볼 것이다. 한없이 자문자답을 되풀이할 것이다. 어떻게 했어야 했나, 대체 누구 잘못인가. 그는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생각할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와 한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했어야 했나, 대체 누구 잘못인가. 한없는 자문자답. 마음을 쓰라리게 하는 표현이다. 우리 모두 이런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나처럼, 인생을 휘둘릴만한 큰일에 대한 기억도 없어 별 생각없이 살아온 인생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와 그런 순간을 나누면서 책을 읽어가는 일이 때로 사무치는 것이다.  

마쓰히로, 요시쿠니, 간지, 오사무. 이제 겨우 열일곱인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와,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그들 청춘의 생명력이랄까, 어떤 두리번거림 속에서도 힘내 서 있는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 코끝이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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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느낌일까?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5
나카야마 치나츠 지음, 장지현 옮김, 와다 마코토 그림 / 보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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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안에 담긴, 이토록 깊은 이야기. 나중에야 크게 다가오는 깨달음.  

시와 같은 간결한 문장과 단순하지만 한없이 풍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 마음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메시지- 그림책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생각, 장애가 없는 친구들에 대한 생각, 나 자신에 대한 생각- 지은이 나카야마 치나츠가 한 아이를 만난 후에 했던 생각이란다. 일본에서도 희귀한 병에 걸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끝과 눈동자, 입 뿐이었던 그 아이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의욕이 넘치는 아이이다. 그 아이와 만난 후에 이 책이 생겨났다. 그 여자 아이는 이 그림책에서 생각이 많은, 아주 특별한 히로가 되었다. 그들의 만남은 얼마나 귀한 만남이었나! 나 또한 이 책을 보고,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생각, 장애가 없는 친구들에 대한 생각,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잠시 눈을 감으면, 

깜짝 놀랄만큼 많은 소리가 들린다. 다시 눈을 뜨면 아까와 다름없는 세상이다. 그래, 안 보인다는 건 그렇게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인 걸. 보인다는 건, 조금밖에 들을 수 없는 것인 걸. 

잠시 귀를 막으면,  

갑자기 많은 것이 보인다. 그래, 안 들린다는 건 그렇게 많은 게 보인다는 거구나. 들린다는 건, 조금밖에 볼 수 없는 것인 걸. 

히로는 보이지 않는 마리와, 들리지 않는 사노와, 부모님이 없는 키미 들에게 물으며 그 느낌을 알아간다. 그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다가오는 것인지, 히로는 잠시 겪어보며 느낀다. 히로에게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느낌, 생각,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히로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건 정말 큰 일들이다. 키미와 그런 걸 나눈 다음 일요일, 키미는 이렇게 말한다.  

"나 말이지, 온종일 쭉 움직이지 않고 있어 봤어. 어떤 느낌일까 싶어서." 

히로는 움직일 수가 없는 아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움직일 수 있다는 것보다 백 배나 더 많은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우주에 대한 생각, 분자에 대한 생각, 고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 

히로는 휠체어에 몸을 고정한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차분히, 천천히  

읽고 나서, 생각하고 눈을 감고 소리를 듣고, 귀를 막고 사물을 볼 일이다. 온 세상과 내가 고요해지도록. 표지 그림에서 히로는 싱긋 웃고 있다. 히로의 머리 뒤로는 히로의 온갖 생각들이 별처럼 반짝반짝 떠 있다. 히로, 너는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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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는 말했다 느림보 그림책 9
이민희 글.그림 / 느림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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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는 뭐라고 말했을까?  

우주는 아름답지만, 외롭다고? 우주는 아름답지만, 배가 고프다고? 우주는 아름답지만, 텅 비었다고? .... 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이 그림책, 왠지 잊히지가 않았다. 빌려서 보았는데, 몇 번을 보고 돌려주고 나니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서 보게 되었다. 라이카에 대한 그림책, 우리나라 작가의 그림책이다. 1976년생의 이민희 작가, 대학 때는 천문우주학과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놀았다는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었다. 이 그림책은, 라이카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넘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게다가 오, 라이카 이야기의 슬픔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해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게다가 이렇게 분방하게 그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2007년은 라이카가 우주로 쏘아올려보내진 해로부터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에 맞춰 라이카에 대한 반추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라이카의 위대한 희생을 기반으로 인류는 우주로 나아갔다, 인류는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식으로 라이카를 추모하는 시가 나오고 노래가 울려퍼졌다.  

라이카는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처음 우주로 '발사'되어서는 임무를 수행하며 일주일을 살다가 원래 계획되었던 대로 '평화롭게' 독극물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는 게 원래 소련 당국의 발표였다. 그러나 2002년 밝혀진 '진실'에는 라이카가 훨씬 고통스럽게,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나저러나 처음부터 돌아올 수는 없게 설계되어있던 스푸트니크 2호 안에서 라이카는 일주일이든 열흘 후에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그 죽음은 안락사 수준이었으므로 이 죽음의 내용이 이 일을 시행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그저 묵념하며 애도할 정도였을 터이다.  

그런데 밝혀진 진실에 의하면 라이카는 위성 발사 직후부터 발사의 충격과 낯선 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라이카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세 배나 빨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로켓은 곧이어 궤도를 이탈하게 되는데, 당시 기술로는 차단이 불가능했던 태양의 열선과 방사능에 노출되어 고통 속에서 발사 직후인 5~7시간 만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검이 되어 지구 궤도를 돌던 라이카는 지구 대기권에서 스푸트니크 2호와 함께 폭발했다고 한다. 이것이 라이카에 대한 새로운, 불편한 진실. 라이카는?  

지금도 수많은 실험동물들에 빚지며 수많은 의약품들이 인간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니, 딱히 그와 달리 '특별한 라이카의 슬픔'이라 생각하는 것도 생뚱맞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라이카는 어쩌면 '소중한 인류(인류만 소중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희생자' 들의 대명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미지의 우주로 향한다는 것이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행위는 아니니까 죄책감에도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오로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우주로 쏘아올려진 이래 실은 무참히 죽어간- 살해된- 한 생명을 지은이가 어떻게 바라보고,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데 대해 나는 관심이 갔다. 그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림책으로 태어난 것이니까. 그림책은 문학이고 그림이다. 게다가 지은이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니 이 그림책은 오롯이 그이의 생각이고 표현이다. 몇 번을 거듭 보면서, 나는 지은이의 그 방식에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끌리던 것의 실체를 서서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물론, 그런 라이카의 희생을 찬양하며 인류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는 (내가 보기에) 어떤 비난도 빈정거림도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런 라이카를 위로하고 보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라이카야, 너 정말 힘들었겠어. 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한테 우리는 뭔가 크게 잘못한 거 같아..." 이런 시작. 글쎄, 그런 이해와 위로가 라이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최소한 편리한 오해와는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

라이카의 공포, 고독, 고통을 지은이가 담담하게 들려주고 보여줄 때, 우리는 그와 대비되어 기대와 설렘 속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있는 사람, 유리 가가린의 이야기를 본다. 가가린은 영웅이 되었고 그 스스로 충분한 기쁨을 누렸으나 그 반대의 경우였던 라이카를 지은이는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 담담한 어조로 하여 그 대비를 바라보는 우리는 흥분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함께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림책 첫 부분의 이 현실 인식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그 무게감이, 썩 좋았다.   

그리고 곧이어 작가는 비극의 현실을 기록하는 자의 역할을 넘어 , 슬쩍 상상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곳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충분히 문학적이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우주선을 발사합니다. 

 사람들은 귀를 활짝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우주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이 세 문장과 세 장의 그림에서도 작가의 표현력이 돋보인다. 오로지 하나의 문장에 펼친 그림 한 장이 고요하게 이어진다. 특히나 세 번 째 면은, 정말 좋았다. 별 몇 개가 떠 있을 뿐인 캄캄한 밤하늘, 아래 수없이 늘어진 비슷비슷한 집들, 집 앞에 나와 앉은 많은 개들, 그들 모두 입 벌려 밤하늘을 향해 짖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우주를 표현함. 이 그림책 전체에서 아마도 가장 멋진 부분이 아닐까. (완전 주관적 ^^) 

그리고 뿌그별의 이야기. 이야기의 분위기는 급반전을 하여, 라이카는 뿌그별 우주인들이 최초로 만나는 지구별의 생명체가 되어 존중받는다. (어.. 어쩐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라이카는 지구 대표이고(어, 이것도 이 상황에서는 당연한 이야기), 라이카와 뿌그 인들은 친구가 되고, 뿌그 인들이 만들고 있는 우주 지도에는 지구가 그려넣어진다. 그 지도에 그려진 지구 생명체의 모습은 라이카- 개의 모습이다.  

우주는 깜깜하지만, 희망이 있고 기적이 있었다. 지은이의 상상 속에서 우주는 그러했고 라이카는 그러했다. 그 상상력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라이카의 이야기는 슬프지 않다. 그건 분명 사실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 왜곡 따위로 말해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는 라이카의 고독과 고통을 기억하고 있고, 나는 대답 없는 우주의 회신도 기대할 수 있고, 나는 라이카가 적절한 대우를 받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지은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이 그림책을 따르는 행로가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라이카는 말했다.  

"멍멍!" 

 

^^ 실은 이 그림책에서 라이카는 말풍선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구 대표 라이카입니다."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의 원래 이름은 '쿠드랴프카'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그녀-암컷이었다-를 우주에 보내기 위한 훈련을 시키는 동안 '라이카' 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불렀다는데, 라이카 종의 개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라이카는 또 러시아 말로 '짖는 녀석' 쯤 되는 뜻이라 하니, 우리 식으로 치면 '멍멍이' 쯤 되는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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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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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이야기를 낳은 책인데 이제야 봤다.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왠지 재미는 없는 만화일 듯싶어 미루다가... 그런데 완전 재밌었다! 1편을 다 보고 손을 놓자니 뒤가 기대되어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2편을 다 보았는데. 3편은 언제 나오는거얏? 2005년에 두 권을 내놓은 이래 아직이라니? 요즘 작가의 다른 책들이 엄청 쏟아져나오는 추세던데, 이쪽은 휴업 중인가보다.  

<십자군 이야기>, 이 책은 새롭다. 추천사를 쓴 진중권의 말에 의하면, '중세에 일어났던 어떤 야만적인 사건에 대한 고발이다.' 이런 내용이라니, 새롭지 아니한가? 중세 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담뿍 담긴 만화인데, 만화책 보다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빵빵하다. 나처럼 역사에 많이 어두운 사람한테는 그저 희미한 옛그림자 같은 이야기로만 기억되던 역사였다. 어떤 만화책도 지식을 넘치게 담아버리면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 '그 좋아하는 만화조차도'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데, 이 책이 권하는 지식은 어째서 손을 놓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내 경우에는 그게, 작가의 역사 해석에 그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게 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한다.   

1편 중에서 재밌게 보았던 중세 서유럽의 T-O 지도.  

"중세 서유럽 사람들 생각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라는 세 개의 대륙은 바다로 둘러싸인 이 평평한 지구의 중앙에서 만나며, 마침 그 만나는 지점에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 날에 천상의 예루살렘이 내려와 지상의 예루살렘에 겹쳐진다고 믿었다나. T-O라는 것은 세 개의 대륙을 감싸고 있는 바다의 모양을 말한다. 이러한 티 오 지도는 당시의 신학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되거니와, 이미 고도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에 뒤늦게 도착한 서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하였노라 호들갑을 떨던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하겠다. "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조차 중국, 인도 등을 염두에 두지 않은 투르크 (나중에 '소아시아'라고 다시 명명된다)였다. 그들에게 세상은 지중해 너머 아프리카가 있고 흑해, 에게해 너머 아시아가 있고 뒤로 대양으로 막힌 땅덩어리였던 거다. 그시대 그들의 세상 인식을, 글로만 보았다면 이렇게 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잡다단하고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역사를 그리자니, 내용의 새로움 만큼이나 형식도 새롭지 않을 수 없겠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15세기 판화의 인용 모습들도, 어느샌가 보면 그 판화에 근거하여 여러 내용이 만화적으로 차용되고 있음을 본다. 그냥 상상에 의거해 그린 것이 아니라 고증에 의해 그린다는 것, 그저 판화 도판으로 등장해 있다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버릴 수 있는데 마치 그 그림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해서 슬라이드 쇼를 하는 것처럼 보여주니 이만저만 생생한 게 아니다. 그토록 생경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그 시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었구나, 실제 상황이었구나 하는 인식이 올 때, 그 리얼리티로 하여 역사가 내게 화락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거야말로 풍부한 자료를 적절하게 인용할 줄 아는 작가로부터 독자가 얻는 혜택의 정수일 것이다.  

피해자 이스라엘이 가해자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것, 중세의 십자군 정신이 부시의 이라크전의 정신이었다는 것, 십자군의 원정 목적이 종교를 명목으로 내세웠으나 실은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욕구를 구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증거를 들이대는 것이 이 책 지은이의 방식이고 해석이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내 기본 역사 지식이 워낙 얄팍한데다가 지은이가 구비한 여러 사료의 인용도 그럴싸하고  현재를 보는 눈까지 나와 비슷하니 그저 공감이다. 읽는 즐거움이 있는 만큼, 속이 쓰리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전쟁이란 말이냐!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지. 

 김태권의 유머도 좋았다. 군데군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넘었다. 은근히 웃기는 작가다. ^^ 이 만화책에 도입한 그림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림체라는데, 중세인의 모습을 그들이 그리던 그 방식으로 묘사한다는 거다. 그런 발상이 아~주 참신하다. 중간중간 중세의 그림들에서 슬쩍 튀어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를 더 크게 해준다.  

하여간, 3,4,5 권이 근간이라더니, 대체 왜 아직? 3권 나오면 1,2 권 새로 보고 다시 시작해야되는 거 아냠? 그래도 3권 나오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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