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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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던 <삼미슈퍼스타즈>로 단박에 그의 팬임을 자처하게 된 나는 또한 전도사이기도 해서 부지런히 박민규를 소개하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대상을 면밀히 고르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 도저히 박민규와는 어울리지 않아 역효과만 가져올 사람도 내 주변에 많지는 않지만 더러는 있어서이다.

그런데 <파반느>와 <삼미슈퍼스타즈>와 <핑퐁>만 해도 그건 현실이었던 거다. <카스테라>를 읽고 나니 단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카스테라>...는? 책을 읽는 동안 공간은 전 우주적으로 확장되고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했으므로 가히 4차원이었다. 박민규 따라 유쾌한 4차원 여행, 게다가 너구리와 기린과 개복치와 펠리컨이라니!  대체 이게 뭐야, 할 것 없이 한 번 따라다녀 보는 거다. 

박민규를 읽는 건 내게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그토록 분방하게 날아다니는 작가의 사고를 들여다보는 일도 즐겁고, 매이지 않은 정신의 현존을 보는 것도 신선한데다, 그의 작품들이 이 사회에 농담으로 버무려 툭, 던지는 문제의식들은 결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아니 어쩌면 우리모두, 애써 외면하며 나랑은 상관없음, 그럼 내겐 문제 아님 하던 것들을 "아니 이거 문제 맞잖아" 하며 이쪽으로 불쑥 던진다. "받아, 받으라구! 재밌다구!!" 한다. 그래, 재밌다.. 

연천유원지를 떠다니던 오리배로 들어가는 '아, 하세요 펠리컨'을 봐도 작가가 소재로 삼는 것들의 새로움을 깨닫게 된다.  연천유원지, 유원지라고는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저수지다. 그저 열세 척의 오리배와 고장난 두더지잡기, 경품크레인이 전부다. 주말에는 32키로 떨어진 소읍 에서 그렇고그런 가족나들이를 오고, 주중에는 딱봐도 불륜인 묘령의 남녀들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오리배를 타고 저수지로 나간다. 게다가 뭘 하든 계속 발로 페달을 돌리면서. 그런 상황인데, 유일한 직원인 주인공과 또 던져놓은 듯 만큼만 사업을 챙기는 정도인 사장이 주고받는 말. 

도대체 누가 이런 보트를 탈까?  

처음엔 그것이 의문이었다. 말 그대로 <오리배>다. 우선 앉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오리라니.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게다가 끊임없이 발로 페달을 돌려야한다. 퐁당퐁당 퐁당 또 그 소리가 그렇게 이상할 수 없다. 하여간에 그걸 타고 퐁당퐁당 퐁당 물 위를 떠다닌다. 그럴 리가 싶지만, 그게 전부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오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21세기인데 이걸 타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래도 꽤 타더라구. 나도 놀랐다니까. 사장은 정말이지 놀란 눈치였다. 놀랍게도, 사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휴일이 되자 이럴 수가 싶은 수의 사람들이 오리배를 타러 왔다. .... 그것은 뭐랄가, 저렴한 인생들 사이에 흐르는 심야전기와 같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있을 법한 곳이고, 아니, 실제로 어디에나 그런 데가 엄연히 있다. (안 가봤지만) 에버랜드 같은 곳이 인공의 다양한 파도를 만들고 광대한 시설을 자랑하며 어드벤쳐, 하고 있는 세상인데, 없어지지도 않고 오리배 열세 척을 두고 여기도 유원지, 라는 곳이 있지 않은가. 누가 그걸 봐도 박민규처럼 저렇게 꼭 찍어서 쓰지는 않겠지만, 우리 모두 알기는 안다. 마음 속으로 이제 저런 걸 얘기할 시점은 아니지,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생경함, 그 낯섬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박민규가 얘기를 하니까, 내겐 그 '과거에 머물고 있는 현재의'장소가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여전하잖아! 그렇게 우선 그 유원지라는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 유원지에서 참 별 일들도 많다. 몰래 보트를 훔쳐 타는 사람도 있다. 혼자 살짝, 즐기다가 호루라기를 불면 그저 강 건너편 기슭에 보트를 대고는 달아나버리면 그만이다. 허참. 오리배를 타기엔 조금 아까운 양복을 입고왔던 한 남자는, 퐁당퐁당 배를 타고 나가 저수지 한가운데서 그만 약을 먹어버린다. 생을 마감하는 장소로 고른 오리배 위. 어때? 별일도 다 있다 싶지만, 그게 또 분명 누군가 겪어본 일들처럼 생각되는 거다. 어쩌면 작가가 직접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무규칙 이종 소설가를 자처하는 작가야말로, 글로써 화려하게 데뷔하기 전에 온갖 종류의 직업을 두루 섭렵했다지 않는가. 누군가 겪어서 말해주기 전에는, 그 한적한 저수지 위 오리배에서 뭐 그런 일들까지 일어나랴고 생각이나 했을까 말이다. 신기하고 생생한 이런 이야기들은 글에 생명력을 불러넣는다. 삶의 변방을 들여다보는 일, 변방의 존재를 새삼 긍정하게 되는 일. 그런 경험을 하며 읽어가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이야기가 '오리배 세계시민연합'으로 넘어가면 슬슬 웃음이 나온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것이 숨은 기능입니다', 란다. 페루의 페르난이 우연히 오리배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는군요. 마침 뉴멕시코 농장의 기사가 났는데 거긴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였답니다. 아르헨티나엔 일자리가 없어 난린데 말입니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가면 먹고 살 텐데.. 그리고 발을 저었는데 순간 오리배가 공중으로 뜬 것입니다. 그 다음은 모든 게 쉬워진 거죠.  

그렇게 오리배의 숨은 기능을 최초로 찾아낸 페루의 페르난은 최초의 오리배 세계시민이 된 거고. 이내 많은 사람들이 그 숨은 기능을 활용하여 세계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여행하기도 하고, 뭐 그렇단다. 그렇게 다니다가 오리배가 있는 저수지에서 잠시 머물기도 하면서. 그 상황을 젊은 주인공은 그렇다치고, 나이 많은 사장은 한술 더떠 아예 오리배 세계시민연합의 일원이 되어 가족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나더니 아예 가족과 함께 오리배를 타고 돌아다닌다. 생필품도 그렇고 물건들이 늘어나 수납을 위해 아예 오리배는 이제 펠리컨이 되었다, 는 이야기이다. 

뭐지? ㅋㅋ 유쾌하게 오리배 세계시민연합 이야기를 읽다가 그렇게 펠리컨으로 끝이 나니 유쾌한 중에도 궁금하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처럼 기억하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존재들이 중심에 있다. 그 존재들은 엄연한 일상성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걸 깨닫게 해 놓고는 금세 이야기는 구름 저 위로 훌쩍 날아오른다. 그래도 좋고, 실은 그게 좋다. 작가가 솜씨 좋게 펼쳐놓는 그 이야기 보따리에는 땅을 딛고 있는 발과 구름 위에 걸친 머리와, 그 사이 어딘가 어떻게든 이어져 있을 몸뚱이가 있으리라 상상되는 그런 기분,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머리를 구름에 두자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발을 땅에 딛고 있자니 머리가 땅에서 겨우 2미터도 안되는 현실을 이렇게 가볍게 넘어서버리는 게 누구나 풀어낼 수 있는 썰은 아닐 터, 박민규가 있어 즐겁다. 나도 가끔, 발은 땅에 두고 머리는 구름 위에 두는 상상이라도 훔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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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10-03-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다시 보네요. 이 책이 많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 처음 삼미슈퍼스타즈..에 열광하던때가 오래 안된거 같은데. 그거 만큼의 아니었어요. 이 책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게 쓰셨네요.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

2010-03-17 0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