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son's Zinnia (Paperback)
Lobel, Anita / Greenwillow / 199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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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언제까지나 한국어로는 번역 출판되기 어려울듯한 그림책. 그러니까 그냥 원래 이 책을 만들 때 사용한 언어인 영어로만 가능한 책. 그러나 전혀 아쉬움이 없다.  

눈을 홀리듯 아름다운 그림으로 이 그림책은 빛을 발하고, 그것으로도 어쩌면 충분히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눈이 시리게 새파란 화분에 담긴 스물여섯 가지의 꽃들이 풍성하게 아름다운 표지에서부터, 책의 페이지를 한 쪽씩 넘기면 꽃의 향연이 시작된다. 아니타 로벨의 꽃그림은 사실적인데도 그 풍부한 색감이나 독특한 개성으로 하여 아주 회화적이다. 그 꽃들을 어디에 둘 것인지도 꼼꼼하게 계산되어서 커다랗게 클로즈엎된 꽃들은 적절한 배경 앞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나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뽐내고 있다.  

그 꽃들은 A에서 시작해서 B, C, D... 이렇게 한 면 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다가 결국은 .. X, Y, Z 로 끝난다. 그러니까 이 꽃들은 알파벳 머릿글자와 함께 존재한다. Amaryllis, Begonia, Chrysanthemun, Daffodil...    Violet, Water lily, Xanthium, Yucca, Zinnia.    

화면 가득 커다랗게 향연을 벌이는 이들 꽃들을 보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다. 나는 이 책을 수시로 면을 바꿔가며 벽에 붙은 선반에 세워둔다. 그것은 마치 작은 화분을 둔 것과 같다. 어느날은 제비꽃이 거실 선반에 놓이고 어느 날에는 노란 수선화가 봄을 내뿜는다. 장미꽃, 작약, 목련, 백합과 같이 큼지막한 꽃들로부터 패랭이꽃 물망초, 제비꽃처럼 자그마한 꽃송이 더미들까지 사시사철 한 권의 책이 빚어내는 풍요로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게 그저, 스물 여섯 권의 꽃을 그린, 내가 좋아하는 어느 화가의 그림-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한.  

이 책에서 본 물망초 꽃을 실제로 꽃집에서 화분으로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물망초는 유명한 꽃이지만, 어쩌면 이름만으로 유명한 꽃인 듯하다. Forget-me-not, 이것이 그 꽃의 이름이다. 한자로 물망초-라 하면 '잊지말라는 풀'인 셈이다. 그 꽃은 다섯 꽃잎이 새파랗고 속이 노란, 동글동글 귀엽고 청아한 꽃이다. 우리나라의 들판에 흔히 자라는 꽃마리를 닮았다. 마리, 혹은 꽃마리와는 역시나 친척이어서 과가 같은 지치과이다. 이런 식으로 한 권의 그림책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나는 몇 년 째 아이들과 함께 수시로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는데, 그 아름다움과 이름을 함께 즐긴다. 요즘 봄이 되면 꽃집에 많이 나오는 노랗고 안에 나팔이 달린 수선화는 Daffodil, 속에 빨간 작은 동그라미가 있으면서 나팔이 없는 하얀 색 수선화는 Narcissus 이다. Violet 하면 꽃잎이 약간 크고 색이 다채로운 서양의 바이올렛이 떠오르는데, 의외로 이 책에 있는 Violet은 우리나라 들판과 아파트 화단에도 봄이면 조롱조롱 꽃을 피우는 바로 그 보라색 제비꽃이어서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꽃만 즐겨도 좋건만, 덤이 또 있으니 그 재미도 즐겨보는 게 좋겠다. 영어 말놀이가 한 쪽에 한 줄씩 이어지는데, 듣고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소리내서 읽어야 재미있는 꼬리따기 놀이다. 아주 치밀하게 짜여져있어서 읽다보면 작가가 그걸 만들어내느라 고심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듯하여 내게도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모두 일관되게 같은 형식을 따른다. 말하자면  

A-a-A-B,  B-b-B-C,  C-c-C-D,이렇게 시작하여  ... Y-y-Y-Z,  Z-z-Z-A.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식이다. 정확하게 몇을 소개하면 

Alison acquired an Amaryllis for Beryl. 

Beryl bought a Begonia for Crystal. 

Crystal cut a Chrysanthemum for Dawn. 

... 

Yolanda yanked a Yuca for Zena. 

Zena zeroed in on a Zinnia for Alison. 

여기 나오는 Alison, Beryl, Crystal, Yolanda, Zena 들은 아래 작고 긴 네모칸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이다. 그 아이들이 다음의 아이들을 위해 꽃과 함께 뭔가를 '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위의 동사들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셈이다. 그리고 Amaryllis, Begonia 들은 물론 꽃의 이름들인데 마지막 Zinnia 꽃으로 끝난다. 마지막 Z 문장에 Zena가 Alison을 위해 Zinnia 꽃을 준비하는데, 그게 이 책의 제목이다. <Alison's Zinnia>. 이와 같이 잘 준비된 말의 향연 또한, 즐기기에 얼마나 좋은것인지!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이런 생각을 해낸 데다가 그림까지 이렇게 잘 그리는 화가라니.( 이 작업을 하는 일이 어렵기만 했으랴, 또한 얼마나 즐거웠으리!) 그의 깜찍한 발상과 공들인 그림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 어른과 아이들- 이 한껏 즐거웠을까를 생각하면 무작정 기분이 좋아진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아는 이들이 이미 꽤 있다. 우연히 수 년 전에 내 손에 들어온 이래 더이상 구하지 못해 내 소중한 책이 여러 지인들 사이에 (위험하게) 돌다가, 얼마전 이곳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너무 기뻐서 주문한 새 책을 그림그리는 친구에게 주었다. 주는 나나 받는 그이나 어찌나 기뻤던지, 마치 책 한 권으로 행복을 나누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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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09-02-23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하게 '에 괄호를 보고 씨익 웃네요. 그렇지요. 구하기 힘든 책을 빌려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에요. 제 주변에 이 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한테 아침에 월척한 기분으로 바로 구매하러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sprout 2009-02-2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님, 잘 하셨어요, 제 생각에도 이 책은 월척이에요 ^^ 리뷰 보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