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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2001년 1월
평점 :
오늘 아침, 학교에 안가는 느긋한 날이라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데리고 이불 개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아들이 혼자 정리하기는 벅찬 것이라, 언젠가 나중에라도 이리 하면 된다는 걸 보여주며 함께 놀기 삼아 이불을 개는데. 커다란 차렵이불을 좍 펴서 반으로 접으려 하자 그만 아들이 그 속에 쏙 들어가 누워버리는 것이다.
'엄마 나, 만두 속이다!'
'엄마는 손큰 엄마야'
'이제 야아! 야아! 하면서 접어야지!'
그래서 나는 야아! 야아! 하면서 그 큰 만두피? 한쪽을 번쩍 들고 달려가서는, 아들 닮은 만두 속을 그 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만두를 주무르고 흔들고 뒤집고 간지르기도 하다가 결국 붙지않는 껍질을 다시 훌렁 벗겨냈다. 그러자 발갛게 달아오른 만두속이 쏙 튀어나오면서,
'이제 엄마가 만두 속 해! 진짜 재밌다!!'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이라는 것 만으로도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나게 만드는 환상의 그림책! 벌써 몇년째 이 책을 봐오고 있지만 볼수록 새록새록 재미가 살아난다. 지금도 나는 이책을 보면 불가사의라고 느낀다.
어째서 이 책을 보면 '아니 뭐 이런 엉터리가 다 있지? 이렇게 큰 함지박이 갑자기 어디서 나오고, 이렇게 큰 돗바늘은 어디서 또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고 엄청나게 큰 가마솥은 또 언제주터 준비되어 있었던거야? '라는 미덥지 못한 불평이 비어져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림책 전체가 엄청난 뻥이고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이야기인데도 왜 그냥 웃음만 터져 나오고 괜시리 기분이 꼬물꼬물 좋아지는 것일까?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어린 동물들, 어른 동물들 모두 이제는 한번 보기만 해도 이억배님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겠다. 색깔이 그렇고 모양이 그렇고 요기조기 나열되며 풀어나간 그림의 배치도 그렇다. 우리 민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안 무서운 호랑이도 그렇고, 진짜 사실적인 차림의 할머니도 그렇다. 몸빼 바지에 털실로 짠 스웨터에, 반백의 머리는 촌스러운 파마머리고 털신에 허리에 두르는 앞치마까지... 정말로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는 그 현실적인 옷을 입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너무 정겹다.
이 책의 과장은 적당한 혹은 지나친 과장, 이런 정도가 아니라 하도 엄청난 과장이어서 가만 듣고 있으면 여기 뱃속에서부터 웃음이 슬금슬금 피어나는 것만 같다. '히히.. 정말 어지간한 걸? 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아니 아니 이제 어떻게 이걸 해결하려고 이만큼 나가는거야? 무슨 대책이 있나?' 하면서 은근히 마음을 졸이며 그 기대감을 키워간다. 이 손큰 우리의 할머니는 걱정할 것 하나 없다는 듯 모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버리는데, 정말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거다.
내게는 여기에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 정말 이 책은 우리의 뱃속에 웃음덩어리 하나를 키우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그 덩어리는 재미나게도 슬슬 커져 올라오고, 나중에는 뱃속에서부터 그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하, 정말 굉장한 걸! 엄청난 뻥이야!' 내겐 그랬다.
물론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주는지 모른다. 등장 인물 혹은 동물들이 모두 정겹고 단순하면서도 세밀하다. 내 눈에는 조화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절로 나오는 노래가 있고, 마치 덤인 듯 그림 속에는 아기자기한 즐거운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큰 할머니가 겨우내 배고픈 동물들에게 넉넉히 풀어먹이는 무지무지 크고 맛좋은 만두야말로 설날 아침을 함께 푸짐하게 맞이하기에 얼마나 넉넉한가! 너나없이 실컷 배불리 먹고, 함께 만들었고, 즐거운 놀이가 있었고, 정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래, 정말, 설날 기분 그대로.
'정말 좋아라!'
'왕창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