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야기 - 재독 사진 예술가 유관호의 씨앗 속에 담긴 큰 나무 이야기
유관호 지음 / 마음의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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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씨앗에서 발견한 삶의 이야기

종잇장보다 더 얇고 가벼워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리면 금세 바스러질 것 같은 ‘씨앗’을 심은 적이 있다. 과연 꽃으로 피어나긴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가녀렸던 생명. 어느 날 땅을 뚫고 올라오는 미세한 녹색 이파리들이 보였다. 그러더니 비바람에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서 한 철 예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닌가. 무슨 꽃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생명으로 인해 한 시절 잘 보낸 기억이 있다.

바람 좋은 봄 날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풍선처럼 부푼 희망과 설렘을 전해준 씨앗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재독사진작가 유관호씨가 쓴 <씨앗이야기>가 바로 그 책! 자연이라는 방대한 주제 속에서 유독 ‘씨앗’에 애정을 보인 이유가 궁금했다. 저자의 이름도 낯설고 책에 관한 광고 한 줄 본 기억이 없어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읽을수록 나누고 싶어진다.

‘씨앗은행’이 열렸다. 씨앗을 가지고 가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준다. 그런 다음비닐봉투에 1센트짜리 동전 한 닢과 씨앗을 넣어 되돌려준다. 씨앗은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고 그 누군가는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과정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보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독사진작가 유관호씨가 실천하고 있는 ‘씨앗은행’ 작업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천에 널려있는 무언가의 씨앗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의 갈라진 작은 틈 사이에도 씨앗은 날아들어 생명을 피워낸다. 그 위대함을 그 고귀함을 잊고 살았는데 <씨앗이야기>가 메마른 마음 밭에 희망의 씨 하나를 뿌려주었다. 가끔 물을 주고 가끔 들여다보고 가끔 놀러와 봐야지. 그러다 보면 내 마음 밭에도 푸른 생명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저자가 들려주는 농부의 씨앗, 예술의 씨앗, 사람의 씨앗, 삶의 씨앗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생각이 깊어진다. 숨 가쁘게 달려오는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 번 뿐인 소중한 이 생을 ‘바쁘다, 정신없다’ 를 연발하며 휙 지나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삶의 여유가 묻어나는 반짝반짝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시간대에 살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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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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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되어 날아 오르다  

-신영길, <나는 연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읽고


20년 넘게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는 동안 온전한 쉼을 위해 한 번도 일상을 벗어나 보지 않았던 저자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바이칼 명상여행’을 다녀왔다. 생애 처음으로 감행한 일탈이자 자신을 찾아 떠난 첫 여행. 이 책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만났던 것들을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써내려가고 있다. 손이 곱는 줄도 모르고 연을 날리던 어린 시절, 소년은 연실을 잘라내고 하늘 높이 사라져가는 연을 한 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연이 되길 꿈꾸었다. 민족의 시원 바이칼에서 마침내 그는 연이 되어 날아올랐다.

번개가 하늘을 갈라놓듯 번쩍,하고 마음에 섬광이 스친 적이 있는가. 지금이야, 바로 이거야, 라며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순간. 살아가는 동안 꼭 한 번은 만나게 될 운명 같은 시간, 사람 혹은 일들. 망설이다 놓쳐버릴 것인가,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자에게 바이칼은 그의 전 생애를 뿌리째 뒤흔드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왔다. 실전만이 존재하는 삶. 20년 내내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며 쉼 없이 달려왔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만이 존재하는 삶에서 그는 겨울의 심장이 보고 싶어졌다. 끝없는 고난의 정체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 곳, 시베리아에서라면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명처럼 바이칼로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실을 잘라 멀리 날려 보냈던 그의 연처럼.

바이칼. 수백 개의 강으로부터 유입되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만 유출되는 자칫 부패할 수 있는 구조(p.230)로 되어있는 호수. 그럼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 그것은 일 년에도 수백 차례의 지진이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뒤집어엎는 수행(p.126)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곳. 꽁꽁 얼어붙은 표면 아래로 따뜻한 물을 간직한 곳. 그런 곳에서라면 세속에서 묻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맑고 투명하게 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자신의 본 모습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처음인 듯 깨닫고 깊이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그 힘으로 앞으로의 남은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자작나무 숲. 마치 꿈인 듯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저자는 춥고도 험난했던 지난 삶이 치유되어 감을 느낀다. 그가 바이칼로 날아가 만난 것은 낯설고 황홀한 대자연의 장엄함만이 아니었다. 잊고 지냈던 다단한 추억들. 어쩌면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았던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따뜻하다.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문장들이 마음을 울린다. 맑고 깨끗한 느낌. 그래서 더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로 인해 자작나무 숲을 동경하게 되었다. 꿈 너머의 꿈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나의 본 모습이 간절히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매 순간을 간절하고 소중하게 살아내기 위해 나는 나를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이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살아있다.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곁에 두고 오래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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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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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꽃밭을 둘러보다
- 최인호, 『꽃밭』을 읽고

 곳곳에서 꽃 잔치가 열리는 봄이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진다. 화사하고 싱그럽고 그래서 더 생명력 넘치는 봄. 우리네 인생을 봄날의 꽃밭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벌레가 꼬일 때가 있을 것이다. 모진 바람과 비에 애써 피워 올린 꽃망울을 맥없이 떨구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나비가 찾아들 것이다. 벌들도 분주하게 오고 가겠지. 생명과 생명이 오가는 꽃밭. 최인호 작가는 인생을 『꽃밭』이라 부른다.

 최인호 작가의 글에 故김점선 화가의 그림을 담아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꽃밭’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육십 인생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의 열의가 더해져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고 있다. 먼발치에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허리를 숙여 한 잎 한 잎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알아가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작가와 화가가 피워낸 인생이라는 꽃밭의 의미가 차곡차곡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살아가는 동안 가장 오랜 시간 곁을 지켜주는 벗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요 남편일 것이다. 작가는 이 오랜 벗에 대한 고마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아내를 존경하고 칭송하고 귀이 여기는 마음이 특별한 향을 지닌 꽃이 되어 책장 가득 피어오르고 있다. 아내의 따끔한 일침과 따듯한 보살핌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손길과 닮아 있다. 작가의 삶에 웃자라나는 불필요한 가지가 없도록 때마다 신경을 써서 정리를 해준다. 작가는 또 어떤가. 그 보살핌을 고맙게 여기며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한다. 안과 밖의 멋들어진 조화가 사뭇 부러워진다.

 어제까지 했던 일과 먹었던 음식과 사람과의 사귐이 처음 해보는 일인 것처럼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육십 인생을 사는 동안 문득 금생의 하루하루가 낯설게 다가온다고 고백한 작가처럼. 그럴 때는 겁먹은 채 안으로 꼭꼭 숨어들기보다는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볼 일이다. ‘처음’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새롭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니까.

 소소한 개인사와 시대의 소란스러움과 다단한 생각들이 오순도순 어우러져 피어있는 이 한 권의 꽃밭은 인생이란 무엇인지 찬찬히 반추해보게 만든다. 더불어 ‘아프기 전의 내 그림과 후의 그림이 동떨어지지 않았’(p.350)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화가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탱해줄 정체성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꽃피는 봄 날,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꽃도 보고 마음안의 꽃밭도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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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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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햇살 한 줌
- 이철수,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를 읽고

얼마간 속을 비우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중간중간 간식으로 식탐을 과시하지 않아도 몸에 비축된 에너지로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버텨낼 수 있다. 한 끼쯤 거른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절대적으로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습관, 이 문제다. 물론 규칙적인 식습관은 중요하다. 다만,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사 때가 되었으니 으레 밥을 먹는다거나, 단 것이 먹고파서 씹는 재미로 꾸역꾸역 간식을 밀어 넣는 것은 문제다. 늘 포만감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것은 때로 독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도 꼭 그렇다. 사회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다. 나와 내 가정, 내가 속한 사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다 혹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해체되기라도 한다면 그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외적인 성장만을 추구해 온 결과 고도비만에 걸려 그만 숨이 턱,하고 막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의미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미래를 계획하며 달려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오늘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면 내일 또한 없을지 모른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서 찾고 싶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매일 바쁘게 사는 이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일에 쫓겨 생활에 쫓겨 일 년을 하루 같이 정신없이 보낸다면 어느 순간 영혼은 텅 비어 버릴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는 오늘 이 하루를 온전히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안겨주며, 타인을 아우를 수 있는 배려를 담고 있다. 목판화가 이철수님의 나뭇잎 편지를 처음 만난 건 여러 해 전 일이다. 그 만남 이후로 매일 아침 이메일을 통해 엽서를 받아보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클릭 한 번이 내 생활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농촌 생활의 서정을 담아 마음을 정화시켜주는가 하면,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질책을 가하기도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반성도 곁들여져 있다. 이번에 책으로 출간된 내용은 작가가 누리꾼들에게 보내준 나뭇잎 편지를 계절별로 새롭게 엮어 낸 것이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지금이 겨울이라 겨울을 맨 앞에 둔 것일 수도 있고, 봄이 아닌 겨울을 시작으로 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겨울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 그 시작을 알리는 배려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세밀한 시선이 잠들어 있던 감성을 톡톡 건드려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신없이 산다는 핑계로 주변에 존재하는 감사한 것들에 제대로 관심 한 번 기울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눈 떠보면 한 계절이 바뀌고 눈 떠보면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그 사이 사이를 채워주는 섬세한 변화를 느껴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작가는 이런 자연을 향해 고마운 속내를 털어 놓는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눈 내리면 눈 내리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그저 고마운 자연!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과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안겨주는 농사일을 통해 사람 사는 풍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상이변에 대한 우려도 빼놓지 않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연과 농업에 대한 애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당장은 농업을 포기해도 별 탈 없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식량 문제에 대해 작가와 함께 고민도 해 보았다. 포기는 대가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대중의 여론을 모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 직시 능력과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확립하고 있어야 한다. 작가 역시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 시점의 일들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파동, 대운하 정책, 민주주의 위기론 등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될 우리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힘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는 것과 손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느껴가며 읽는 것은 사뭇 다르다. 더 천천히 곱씹으며 읽게 된다. 딱 필요할 만큼만 그려진 절제된 그림들은 깊이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낸다. 마음에 자글거리던 주름이 어느 새 펴지는 느낌이다. 따스한 햇살이 온 몸을 파고들어 그늘진 구석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듯하다. 매일 아침 더 고마운 마음으로 나뭇잎 편지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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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The Collection 2
유주연 글.그림 / 보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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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작은 새야. 너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
- 유주연, <어느 날>을 읽고

어느 날, 우연히 작은 새 한 마리를 만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행운이었다. 

 



넓은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기를 늘 소망했던 너. 어느 날, 드디어 마음을 크게 먹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 시작했지.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점점 더 낯선 곳으로……. 네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네 머리는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내느라 몹시도 분주해졌지. 보이는 모든 것에 마음이 설렜고 만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어. 어느 덧 네가 숨 쉬던 숲을 벗어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빌딩 숲으로 들어서게 되었어. 뾰족뾰족 비뚤빼뚤. 잠시 쉬고 싶어도 앉을 곳을 찾을 수가 없구나.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싶지만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구나. 네가 상상한 세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네가 꿈꾸던 세상은 정말 이런 게 아니었는데.

작디작은 날개로 하루 종일 낯선 곳을 비행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렸구나, 가엽게도. 그 때 네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네가 살던 동네였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벗어나고만 싶었던 답답했던 너의 동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하게도 안도감이 너의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버렸어.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익숙했던 그 곳이 알고 보니 세상 어느 곳 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너만의 보금자리였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늘 함께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네가 온 힘을 다해 날아오를 수 있는 가장 넓은 세상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 거야.

*

유주연의 <어느 날>은 출판사 보림에서 내놓은 The Collection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 더불어 소장가치가 있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바로 The Collection 시리즈의 핵심이다. 출판사의 취지대로 그림책에 예술적 가치를 더한 작품집이라 할만하다. 그림책에서는 쉽게 만나 볼 수 없었던 수묵화의 매력과 여백의 미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보며 글로 읽고 그 다음엔 그림만으로 상상하며 읽어보았다. 두런두런 마음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두런두런 머리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머리는 전혀 복잡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하고 명쾌해진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마음에 품어보았을 파랑새. 그 파랑새를 떠올릴만한 새 한 마리가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신 ‘파랑’새가 아닌 ‘빨강’새다. 마음에 품은 열정이 온몸으로 전해진 듯 몸 전체가 붉게 물든 작은 새 한 마리. ‘흑’과 ‘백’ 그리고 ‘빨강’. 묘한 어울림이다. 그 새를 따라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동안 많은 것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가보지 못한 곳을 동경하며 산다는 건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늘 새로운 것만 꿈꾸다 보면 자칫 현실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 건 바로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곳과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것들을 간과한 채 어찌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를 숨 쉬게 하는 지금 이 현실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책. 유주연의 <어느 날>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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