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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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되어 날아 오르다  

-신영길, <나는 연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읽고


20년 넘게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는 동안 온전한 쉼을 위해 한 번도 일상을 벗어나 보지 않았던 저자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바이칼 명상여행’을 다녀왔다. 생애 처음으로 감행한 일탈이자 자신을 찾아 떠난 첫 여행. 이 책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만났던 것들을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써내려가고 있다. 손이 곱는 줄도 모르고 연을 날리던 어린 시절, 소년은 연실을 잘라내고 하늘 높이 사라져가는 연을 한 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연이 되길 꿈꾸었다. 민족의 시원 바이칼에서 마침내 그는 연이 되어 날아올랐다.

번개가 하늘을 갈라놓듯 번쩍,하고 마음에 섬광이 스친 적이 있는가. 지금이야, 바로 이거야, 라며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순간. 살아가는 동안 꼭 한 번은 만나게 될 운명 같은 시간, 사람 혹은 일들. 망설이다 놓쳐버릴 것인가,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자에게 바이칼은 그의 전 생애를 뿌리째 뒤흔드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왔다. 실전만이 존재하는 삶. 20년 내내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며 쉼 없이 달려왔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만이 존재하는 삶에서 그는 겨울의 심장이 보고 싶어졌다. 끝없는 고난의 정체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 곳, 시베리아에서라면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운명처럼 바이칼로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실을 잘라 멀리 날려 보냈던 그의 연처럼.

바이칼. 수백 개의 강으로부터 유입되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만 유출되는 자칫 부패할 수 있는 구조(p.230)로 되어있는 호수. 그럼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 그것은 일 년에도 수백 차례의 지진이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뒤집어엎는 수행(p.126)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곳. 꽁꽁 얼어붙은 표면 아래로 따뜻한 물을 간직한 곳. 그런 곳에서라면 세속에서 묻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맑고 투명하게 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자신의 본 모습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마치 처음인 듯 깨닫고 깊이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그 힘으로 앞으로의 남은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자작나무 숲. 마치 꿈인 듯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저자는 춥고도 험난했던 지난 삶이 치유되어 감을 느낀다. 그가 바이칼로 날아가 만난 것은 낯설고 황홀한 대자연의 장엄함만이 아니었다. 잊고 지냈던 다단한 추억들. 어쩌면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았던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따뜻하다.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문장들이 마음을 울린다. 맑고 깨끗한 느낌. 그래서 더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로 인해 자작나무 숲을 동경하게 되었다. 꿈 너머의 꿈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나의 본 모습이 간절히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매 순간을 간절하고 소중하게 살아내기 위해 나는 나를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이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살아있다.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곁에 두고 오래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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