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4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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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햇살 한 줌
- 이철수,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를 읽고

얼마간 속을 비우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중간중간 간식으로 식탐을 과시하지 않아도 몸에 비축된 에너지로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버텨낼 수 있다. 한 끼쯤 거른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절대적으로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습관, 이 문제다. 물론 규칙적인 식습관은 중요하다. 다만,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사 때가 되었으니 으레 밥을 먹는다거나, 단 것이 먹고파서 씹는 재미로 꾸역꾸역 간식을 밀어 넣는 것은 문제다. 늘 포만감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것은 때로 독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도 꼭 그렇다. 사회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다. 나와 내 가정, 내가 속한 사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다 혹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해체되기라도 한다면 그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외적인 성장만을 추구해 온 결과 고도비만에 걸려 그만 숨이 턱,하고 막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의미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미래를 계획하며 달려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오늘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면 내일 또한 없을지 모른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서 찾고 싶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매일 바쁘게 사는 이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일에 쫓겨 생활에 쫓겨 일 년을 하루 같이 정신없이 보낸다면 어느 순간 영혼은 텅 비어 버릴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는 오늘 이 하루를 온전히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안겨주며, 타인을 아우를 수 있는 배려를 담고 있다. 목판화가 이철수님의 나뭇잎 편지를 처음 만난 건 여러 해 전 일이다. 그 만남 이후로 매일 아침 이메일을 통해 엽서를 받아보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클릭 한 번이 내 생활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농촌 생활의 서정을 담아 마음을 정화시켜주는가 하면,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질책을 가하기도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반성도 곁들여져 있다. 이번에 책으로 출간된 내용은 작가가 누리꾼들에게 보내준 나뭇잎 편지를 계절별로 새롭게 엮어 낸 것이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지금이 겨울이라 겨울을 맨 앞에 둔 것일 수도 있고, 봄이 아닌 겨울을 시작으로 삼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겨울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 그 시작을 알리는 배려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세밀한 시선이 잠들어 있던 감성을 톡톡 건드려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신없이 산다는 핑계로 주변에 존재하는 감사한 것들에 제대로 관심 한 번 기울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눈 떠보면 한 계절이 바뀌고 눈 떠보면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그 사이 사이를 채워주는 섬세한 변화를 느껴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작가는 이런 자연을 향해 고마운 속내를 털어 놓는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눈 내리면 눈 내리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그저 고마운 자연!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과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안겨주는 농사일을 통해 사람 사는 풍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상이변에 대한 우려도 빼놓지 않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연과 농업에 대한 애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당장은 농업을 포기해도 별 탈 없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 식량 문제에 대해 작가와 함께 고민도 해 보았다. 포기는 대가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대중의 여론을 모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 직시 능력과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확립하고 있어야 한다. 작가 역시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 시점의 일들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파동, 대운하 정책, 민주주의 위기론 등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될 우리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힘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는 것과 손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느껴가며 읽는 것은 사뭇 다르다. 더 천천히 곱씹으며 읽게 된다. 딱 필요할 만큼만 그려진 절제된 그림들은 깊이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낸다. 마음에 자글거리던 주름이 어느 새 펴지는 느낌이다. 따스한 햇살이 온 몸을 파고들어 그늘진 구석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듯하다. 매일 아침 더 고마운 마음으로 나뭇잎 편지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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