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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리처드 셰퍼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주검을 통해 삶을 진중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책
영국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저자 _ 리처드 셰퍼드
출판 _ 김영사
영국 최고의 법의병리학자가 들려주는
죽음의 필연성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추적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를 읽기까지 얼마간 망설였습니다. 무섭고 자극적인 건 질색이라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데, 부검을 통해 죽음을 보여주는 책이라니. '죽음의 필연성만큼이나 삶의 경이로움에 대해 깨닫게 해줄 책' 이라는 설명이 끝끝내 이 책을 펼쳐들게 만들었습니다.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 죽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죽음의 실체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살인부터 불운한 죽음까지, 질병에서 사고사까지, 주검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안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 생애의 단계에 대해, 죽음에 대해, 살아 숨 쉬는 인생에 대해, 정의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법의학자로서의 자신에 관한 다채로운 분석을 담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프롤로그가 시작되기 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 중 2막 7장이 등장합니다. '이 세상은 다 무대입니다. 세상 남녀는 그저 배우이고요. 등장도 하고 퇴장도 합니다. 한 사람이 생전에 여러 역을 하는데, 인생은 7장입니다.'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인생의 7단계를 저자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인생을 관통하는 이 대목을 마주하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책이 전해줄 묵직한 울림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겸허한 자세로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펼쳐 들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에는 스물 네 건의 부검 케이스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너무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유가족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개인 정보를 변경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팩트! 부검을 포함한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의 감정선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하나의 사건마다 저자의 서사가 함께 곁들여진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들을 꺼낼까' 의문을 가지고 읽다보면 이야기는 마침내 하나로 귀결됩니다. 언뜻 보아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저자의 서사는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부검을 요하는 주검'에서 사안의 중대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엄중한 죽음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저자는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다른 삶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실 부검을 통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에만 집중했다면 어느 독자든 이 책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다양한 주검에 집중하면서도 삶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독자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하는 동시에 죽음과 삶을 관통하는 어느 지점을 똑바로 응시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 생생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 속 모든 이야기들은 명백하게 실제 했던 사건들입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유려한 필력으로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어쩌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이자 '의학 탐정'인 리처드 셰퍼드 박사가 들려주는 주검 이야기. 결국은 삶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봐 드리겠습니다.
신념을 버리는 일
▶ 인생의 1단계 : 맨 처음 어린애, 유모 품에 안겨 칭얼대며 토악질을 합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자신을 계속 재정의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노년에 이르면, 이따금 기억이 사라지면서 그 정의도 함께 사라진다. 그때 우리는 누구일까? (47)
대체 의학을 맹신한 부모로 인해 죽음에 이른 6개월 아기 퍼거슨. 선천성 대사 이상을 앓고 있던 퍼거슨은 분유에서 고형식으로 넘어오면서 문제에 직면합니다. 선천적으로 과당을 대사할 수 없었던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들만의 자연식을 제공합니다. 당밀, 사과식초, 꿀, 두유, 과일과 채소가 포함된 식단은 과당을 대사할 수 없었던 퍼거슨을 서서히 죽음으로 내몰게 되지요.
심각한 기저귀 발진과 이상 징후를 보였음에도 병원을 찾지 않고 자신들만의 자연치료를 고수했던 부모. 예방 접종 한 번 맞추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신념으로 아이가 죽었음에도 닥터라는 직함을 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대체의학 치료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야기 중간에 대체 의학 치료로 불필요하게 죽음을 앞당긴 사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퍼거슨 사건과 오버랩되면서 '신념을 버리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신념이란 무엇이고, 어떠한 신념으로 둘러싸인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
▶ 인생의 3단계 : 다음은 사랑에 빠진 역할, 용광로처럼 한숨을 내쉬며 애인의 눈썹을 찬미하는 애처로운 연시를 짓습니다.
캠핑장에서 발견된 열여섯 살 여자아이의 시신.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인으로 보입니다. 유력한 용의자는 함께 여행을 떠난 열일곱 살 남자 친구 제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절벽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판을 짜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의학자인 저자의 견해는 다릅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부검은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낼까요?
저자는 제이의 죽음에서 절친이었던 사이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사이먼의 집에서 사이먼이 택했던 삶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었습니다. 제이의 죽음을 보며 저자는 왜 '자신을 잃어버린' 사이먼을 떠올렸을까요?
사춘기, 어른이라기보다는 아직 아이에 가까운 나이. 그런 아이들에게 과도한 경험이 얼마나 버거울 수 있는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생히 목도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인생의 단계 중 하나라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고
바라본 적 없는 우리 몸속 장기를
속속들이 탐구하고 탐험하게 만들어주는 책.
이 여정을 통해
몸에 아로새겨진 삶의 흔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읽기 두렵지만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는 책.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을 깊이 이해하고
삶이 건네는 경이로움을
고요히 받아들게 해주는 책.
'부디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책.
주검을 통해 삶을 진중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책!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는
기존에 만난 책들과는 사뭇 다른
특별한 경험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김영사 서포터즈 협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