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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종종 나를 괴롭히는 악질적인 괴물을 만난다. 그 괴물은 어릴 때부터 언제나 나를 괴롭혔고, 2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이 괴물을 스스로 이겨내고자 창과 검을 들고 맞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괴물은 나를 괴롭히며 내가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저주하며 끙끙거리게 해버린다.


 이건 어떤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 괴물은 바로 무료(無聊)함이다. 오늘 살아가는 것이 무료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덮치면서 '오늘 세운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데, 도무지 할 기운이 나지 않아.'이라는 늪에 빠져 도무지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하는 데에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이 멈춰 서서 허무한 감정 속에서 초점을 잃은 상태로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억지로 무엇을 하려다 도중에 그만두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상당히 큰 자책을 하면서 나에게 화를 낸다.


 어릴 적에 들었던 '넌 해봤자 안 돼.', '네까짓 놈이 뭐가 되겠다고.'이라는 말은 내 뇌 속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서 나를 조롱하는 웃음을 만든다. 나를 덮치는 그 괴물에 저항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아 자주 시간을 의미 없이 소비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나는 이후에 나 자신에게 화가 너무 난다. 그리고 크게 자책을 한다. '왜 이렇게 시간을 쓸데없이 보냈을까?'라며 괴로워하고, '언젠가 이렇게 내 삶에서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나도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닐까?'이라는 두려움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을 떨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지금도 20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매일 플래너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이렇게 극심한 감정의 기복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사라질 것 같으니까.


 솔직히 이 부분은 아직 내가 겪은 우울증의 증상이 남아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무료함이라는 괴물이 만드는 나를 이겨내고자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생각, 좀 더 다른 풍경,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통해 이겨내려고 한다.


 피아노 레슨도 그래서 시작했고,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은 어릴 적부터 혼자였던 내게 손을 내밀어 준 몇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 삶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오늘은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 만난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 책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태도에 관하여>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인데, 이 책은 작가 임경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책의 표지가 전해주는 뭔가 여백이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태도에 관하여>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종종 한 이야기에 멈춰서 잠시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나는 전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나는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무료함'이라는 괴물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일 읽기로 미루어 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태도에 관하여> 책을 펼쳐서 읽지 않았다면, 나는 또 나를 '바보 같은 놈'이라며 질책하며 아픈 주말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책은 잠시 어지러운 마음을 가진 내게 위로, 아니, 위로라고 말하기보다 아래로 축 처진 고개를 다시 들고 앞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태도에 관하여>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런 이유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아래에서 글 한 개를 읽어보자.


'누가 뭐라든 난 이걸로 됐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p24)


 '왜 난 그렇게 바보 같은 시간을 보냈던 거지?', '왜 더 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이라는 자책감에 괴로움을 넌지시 느끼고 있을 때, 책의 거의 맨 앞에서 읽은 이 이야기는 정말 내게 힘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안고 살아가겠는가.


 우리 인생은 모두 저마다 불확실한 위험함을 가진 선택지를 선택하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그 길이 달라진다. 어떤 선택은 쭉 뻗은 길을 통해 앞으로 곧장 달려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땅으로 떨어지거나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빙빙 돌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불안한 여행이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시기하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상처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도에 관하여>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삶의 태도였고, 다소 '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내게는 더 책이 고마웠다.


 언급한 작은 이야기 이외에도 책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디까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태도에 관하여> 이 책은 10대가 읽어도 괜찮은 책이고, 20대가 읽으면 정말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독자가 어떤 삶의 태도를 결정하도록 힘주어서 강요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잠시 내 삶을 돌아보며 '난 어떻게 살았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이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책은 무수히 많다.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예의>에서도 그 주제를 엿볼 수 있었고, 배우 류승수의 에세이 <나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에서도 그런 삶의 태도에 관한 고민을 읽어볼 수 있었다. 결국, 어디에나 이런 이야기는 있다.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내 눈 앞에 펼쳐진 보이지 않은 인생에 대한 확실한 정답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삶을 사는 데에 참고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혼자 끙끙 앓을 때 손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직 내 삶을 사는 데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 <태도에 관하여>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강압적으로 '이렇게 사세요.' 하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고민에 빠진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책이기에 분명히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온기를 느끼며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른하고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방식을 항간에서는 예찬하지만, 그것이 가치 있으려면 어디까지나 자기 규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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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나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저 감정이 복잡해져서 한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몰래 훔친다.

 그런 나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글을 꾸준히 쓰고 있는데…

 여기 세 권의 책은 마치 제목 만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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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조윤제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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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행동일까? 우리는 언제나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솔직히 내가 하는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특히 요즘 10대 청소년은 이런 고민을 해볼 시간조차 없이 어릴 때부터 공부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달달 외워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정확하게 외우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을까? 아마 쉽게 그 결과를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투자한 것만큼,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질문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 답은 10명 중 9명이 '아니오.'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공부 경쟁에 내몰린 10대를 벗어나면 이제 더는 경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대학생이 되면 다시 취업 경쟁에 내몰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너무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잔인한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타인과 부딪히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겉치레를 먼저 생각해야 하니 무엇을 하더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무엇을 배운다.'는 행동의 목표는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목표가 설정되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배우는 것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게 되고, 무분별하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면서 우리는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뒤늦게 '내가 이때가지 뭘 위해 살았는지 모르겠다.'이라며 방황하고, 불행해하고, 우울해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 고전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해야 한다'는 의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통해 분명한 이유를 알고, 배움을 통해 익힌 것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인문 고전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고전을 읽는 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내 삶을 고민해보아야 하는지, 배움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 지를 여러 고전의 이야기와 저자의 해설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냥 고전을 있는 그대로 읽는 건 솔직히 우리에게 다소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책처럼 고전의 어려운 부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해설과 우리가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사례를 통해 고전을 내 삶에 적용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었다. 지금 우리는 왜 배우는지도 모른체, 그저 다른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악으로 깡으로 매달려 있는 상태다. 이런 시기이기에 우리는 인문 고전을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배움에 '왜'가 붙지 않으면, 그건 진정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를 통해 인문 고전과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오늘 배우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되어야 한다.


<격몽요결>에서 율곡 이이 선생이 바르게 책 읽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을 집중하고 뜻을 다하여 넓게 살펴보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운 것들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쌓는 것만으로는 결코 진정한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는 책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율곡 이이 선생은 이와 함께 책은 반드시 한 권을 숙독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은 다음 다른 책을 집어들기를 권한다. 많이 읽을 욕심으로 이 책 저 책 마구 읽다가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없다. 퇴계 이황 선생도 낮에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밤에는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그래야 읽은 것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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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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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가 사는 한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린 한 시민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는데, 쓰레기 무단 투기 죄가 아니라 상당히 말도 안 되는 법을 적용하여 압수 수색이나 강한 처벌이 논의되어 큰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아마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엮이는 건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이라는 사이트가 아닐까 싶다. 일베는 한국 여성을 '김치년'으로 조롱하는 글부터 시작해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숨진 피해자와 세월호 유가족, 서거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악랄하게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베의 이런 행동을 가리켜 어떤 사람은 표현의 자유라면서 옹호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정한 선을 넘은 명백한 명예훼손이자 일종의 범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 '표현의 자유'이라고 말하며 일베의 편을 드는 사람은 '박근혜 풍자 또한 똑같지 않으냐?'며 크게 반박하기도 해서 할 말이 없게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가 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위반이 되는 걸까? 이런 문제를 정의하는 데에는 상당히 격렬한 논쟁이 발생할 것 같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해서 비웃는 일베와 현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해서 비판하는 두 집단 세력은 그렇게 오늘도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선을 나눌 수 있는 건 '단순한 악의인가, 아니면,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이라는 질문이 기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베'는 그냥 악의적으로 남을 조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뿌려진 박근혜 풍자 포스터는 사회 비판을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을 향해 의견을 결정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형평성 논란부터 시작해서 걸고넘어질 수 있는 문제가 한두 가지에서 끝나지 않으니까. 아마 그래서 요즘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재정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노컷뉴스 기사를 통해서 독일 베를린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한국 홍성담 작가의 풍자 그림이 국내 기업이 운송할 수 없다1면서 작품을 운송하지 않은 일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 기사를 읽어보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과 함께 현재 우리 한국이 껴안은 문제가 꽤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을 운송하면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다.'이라며 홍성담 작가의 그림 운송을 거부한 기업의 행동은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모습 같아서 안타깝다. 그래서 '부분적 언론 자유국가'라는 이름표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할 수 있어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난제에 직면한 한국은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다 바꾸겠다던 한국 정부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드러난 잘못은 바로잡기를 선택하기보다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갑자기 내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게 된 건, 위에서 볼 수 있는 책 <조지프 앤턴>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과거 '악마의 시'를 출판해 극단주의 무슬림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전 세계를 발칵 뒤엎은 작가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이 책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책을 읽을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유명한 책이고, 책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얻고자 살펴본 서점 소개에서도 상당히 흡수력이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되어 있어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나는 도무지 책의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책은 총 818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가 읽은 건 겨우 83페이지 정도였다. 약 1/10을 읽는 데에 3일이 걸리고 말았다. 책의 글자를 읽으려고 하면 졸음이 왔고, 서서 읽더라도 내용에 집중되지 않아 책을 읽는 것을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구글에 '조지프 앤턴'과 '살만 루슈디' 두 키워드를 검색해서 책의 내용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아야 했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살해 위협과 여러 부조리한 구조와 오랫동안 다툼을 한 작가의 자서전이었고, 3인칭 시점에서 상당히 흡수력이 있다고 한다.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과대 포장해서 홍보하는 전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과 달리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도 거침없이 솔직하게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뭐, 일부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작은 변명도 붙이더라도 읽는 맛이 풍부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 참고했던 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정 혹은 변명, <조지프 앤턴> : http://goo.gl/M3aLoY

한국일보 '악마의 시' 이후… 도망자 루슈지는 조용히 살지 않았다 : http://goo.gl/9KGWKN


 나는 이 책 <조지프 앤턴>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몇 번 더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해 본 이후에 도저히 나와 맞지 않아 내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다면, 부산에서 독서 모임을 주최하는 아는 지인에게 책을 양도할 생각이다. 그게 이 책의 운명일지도 모르니까.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오늘 글에서 소개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살만 루슈디'이라는 이름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 인문, 문학에 관심이 깊은 사람 중에서 '살만 루슈디'이라는 이름과 '악마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하고….


 비록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어 구글 검색을 통해 그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슬람 광신도와 싸웠고, 문단 내부 인사와 싸웠고, 경찰 간부와 싸웠고, 배신자와 싸웠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여러 시민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이라고 말하면서 가만히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 한국은 여전히 소수 권력층에게 유리한 흐름으로 모든 문제가 흐른다. 우리는 과연 보아야 할 것을 보고 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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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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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 그저 친구가 없어서, 할 것이 없어서, 서평단 활동이라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여기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독서가와 비교하면 내가 읽은 책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나는 읽는 책의 분야가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짙고, 책을 읽은 후에 하는 활동도 그렇게 막 가치가 반짝반짝 빛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색채가 없는 그런 일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기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책을 읽은 후에 아이패드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복권을 구매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책만 읽는 게으른 선비.'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인걸.


 이 과정에서 나는 정말 이상한 책 한 권을 만났다. 그 책은 에세이 장르의 책이었고, 읽기가 편하게 작은 글과 일러스트가 함께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내내 자꾸 눈물을 꾹 참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눈물이 흘러넘쳐 너무 가슴이 아렸다.



 그 이상한 책은 바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작가 구작가 님은 실제로 어렸을 때 앓았던 열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시력마저 잃어버리는 병에 걸려 빛까지 사라지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사실이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도무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문장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귀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 상상할 수 없는데,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게 되어버릴까?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런데 구작가 님은 앞으로 빛이 보이지 않게 될 그 세상을 덤덤히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책을 통해서 구작가 님이 보낸 하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경험하게 된 눈앞의 나날을 이상한 감정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상한 감정. 나는 도대체 이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슬픈 것도 아니고, 즐거운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부분에서 막 눈물이 당장에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만약 이 책을 내가 밖이 아니라 내 방에서 읽었다면, 분명히 나는 혼자 한동안 크게 '엉엉' 울었을 것이다.


 왜 이런 감정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나를 휘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때까지 눈물이 나오는 여러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와 그림만으로 이런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된 건 26년 인생 처음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가슴 깊은 한구석에 어떤 뜨거운 덩어리가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을 읽기 전에 나는 <'행복하세요.'이라는 말은 어쩌면 잔인할지도 모른다>이라는 글을 작성했었다. 어쩌면 내가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내 삶을 돌아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기에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어떤 메시지와 감정이 나를 이렇게 울게 한 것이 아닐까?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기분 속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정확히 정리하지 않은 채로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감정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점점 옅어지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다. 비록 대단한 글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앞으로 수일 내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과연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을지. 단지 '무료하다.'고 느끼는 일상이, '도대체 언제 세상은 멸망하나?'라고 생각하는 오늘 이 하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지…….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는 생물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도 착하고, 나쁜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놓여도 나쁘니까. 결국, 우리는 그렇게 아웅다웅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작가 구작가 님은 분명히 선례에 해당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에 쉽게 절망하지 않았고, 더 깊어질지도 모르는 절망 앞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삶을 대할 수 있는지 나 스스로 묻는다면, 나는 '절대 불가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앞에서 나는 사람은 절대 쉽게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바뀌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소위 콩깍지가 씌는 사랑에 빠지는 일과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 딱 그 두 가지가 모습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무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콩깍지에 씌이는 일도 없었고(앞으로도… 아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적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꿈을 꾼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일이 내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책에서 버킷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지금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나열해보고 싶다. 음, 파리의 에펠탑 보기,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문해보기, 그랜드 피아노와 책장이 무수히 놓인 내 집 가지기, 피아노 연주회 해보기…….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몇 가지가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몇 가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왠지 무서워진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칠흑 같은 인생이 될 테고, 내일을 살 수 없을 테니까.


 아아,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금 순간에 든 감정을 지우고, 그냥 비록 그 수가 적더라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맞을 것이다.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가 독자에게 전해주는 이미지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음, 아마 그게 맞을 거야.)


 <그래도 괜찮은 하루>이라는 책을 읽고,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쓴 이 글은 여기서 마치고 싶다. 이상한 감정 속에서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가슴 안쪽이 뜨거워졌던 이상한 책. 이 이상한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혹시 과거에 나와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이 글이 발행될 토요일 아침에 블로그를 방문해 이 글을 읽을 모든 사람의 하루가 책의 제목대로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뭐, 내게는 이렇게 글을 편집해 예약 발행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래도 괜찮은 하루일까? 아하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아직 빛이 남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여기까지예요.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저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죠.

누구나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늘 미뤄놓기만 하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면….
어떨가요.
별생각 없었던 것들이 모두 큰 의미로 와 닿아요.

요즘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살을 볼 수 있는 게
아주 행복한 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분도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그렇다면 제게 들려주세요.
정말 소중한 오늘 하루,
내 하루만 소중한 게 아니라
여러분의 하루도 정말 소중하니까요.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싶어요.
대신, 규칙이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고민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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