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조윤제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행동일까? 우리는 언제나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솔직히 내가 하는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특히 요즘 10대 청소년은 이런 고민을 해볼 시간조차 없이 어릴 때부터 공부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달달 외워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정확하게 외우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을까? 아마 쉽게 그 결과를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투자한 것만큼,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질문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 답은 10명 중 9명이 '아니오.'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공부 경쟁에 내몰린 10대를 벗어나면 이제 더는 경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대학생이 되면 다시 취업 경쟁에 내몰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너무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오히려 잔인한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타인과 부딪히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겉치레를 먼저 생각해야 하니 무엇을 하더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무엇을 배운다.'는 행동의 목표는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목표가 설정되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배우는 것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게 되고, 무분별하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면서 우리는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뒤늦게 '내가 이때가지 뭘 위해 살았는지 모르겠다.'이라며 방황하고, 불행해하고, 우울해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 고전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해야 한다'는 의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통해 분명한 이유를 알고, 배움을 통해 익힌 것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인문 고전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고전을 읽는 것으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내 삶을 고민해보아야 하는지, 배움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 지를 여러 고전의 이야기와 저자의 해설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냥 고전을 있는 그대로 읽는 건 솔직히 우리에게 다소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책처럼 고전의 어려운 부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해설과 우리가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사례를 통해 고전을 내 삶에 적용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었다. 지금 우리는 왜 배우는지도 모른체, 그저 다른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악으로 깡으로 매달려 있는 상태다. 이런 시기이기에 우리는 인문 고전을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배움에 '왜'가 붙지 않으면, 그건 진정한 배움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를 통해 인문 고전과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오늘 배우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되어야 한다.


<격몽요결>에서 율곡 이이 선생이 바르게 책 읽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을 집중하고 뜻을 다하여 넓게 살펴보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운 것들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쌓는 것만으로는 결코 진정한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는 책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율곡 이이 선생은 이와 함께 책은 반드시 한 권을 숙독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은 다음 다른 책을 집어들기를 권한다. 많이 읽을 욕심으로 이 책 저 책 마구 읽다가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없다. 퇴계 이황 선생도 낮에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밤에는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그래야 읽은 것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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