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의 나라 1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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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를 좋게 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봐야 할 또하나의 숨은 가작이 [칠석의 나라]이다. 다만 전작이 별 다섯 개 만점에 여섯 개를 줄 만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그냥 다섯 개로 딱 좋은 정도다. 전작에서 외계의 생물체를 끌어들였던 작가는 이번에는 마치 과거로 돌아가기라도 하듯 수상쩍은 산간오지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만화적 상상력을 빌어 진지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펼쳐나가는 그 스타일은 물론, 못 그린다고 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거칠고 강렬한 화체 또한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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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 1
키시로 유키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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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하게 많은 SF 만화(애니메이션은 제외) 중에서 최고의 걸작을 꼽으라면 [아키라], [나우시카], [잉칼] 정도가 아닐까 한다. [총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바꿔 말하면 특A급은 아니다. 대신 A급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적지 않은 일본만화의 단점, 즉 엄청나게 거창한 주제의식과 의문점들을 앞에서 던져놓고 뒤에 가서는 흐지부지 넘어가버리는 문제를 이 작품 역시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 속편 [총몽-라스트 오더]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보충되고 마무리될지 계속 지켜봐야할 새 숙제를 부여받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대단한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재미있고, 놀랍고, 박진감 넘치고, 매력적이고, 그리고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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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1 - 태조-예종편 맹꽁이 서당 고사성어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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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때 배운 한국사(주제에 맞추자면 조선왕조 500년사)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먼지 쌓인 지하실 창고의 물건들처럼 뭐가 어느 시대인지 잘 연결도 안된 채 가물가물하다. 대신에 기억에 남아있는 건 순전히 이 [맹꽁이 서당]에서 본 것들이다.

20여년 전부터 월간 [보물섬]에 연재되던 것이니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보기 시작한 것인데, 학교에서 배운 암기위주 한국사는 다 잊어버리고 부모님께 야단맞아가며 본 만화 한국사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것이 바로 만화의 힘이 아닌가 싶다. 역사를 다룬 만화가 시대가 조금 지났다고 낡을 리도 없을 것 같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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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 하우스 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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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림체만 봐도 꽤 오래된 만화구나 싶은 느낌이 들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 작품을 다카하시 류미코 최고의 작품이라고들 한다. 예전엔 [왁자지껄 한심연립]이라는 이름의 해적판으로, 지금은 [도레미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나와있지만 원제는 [메종 일각]이다. 최고걸작이 시중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내용은 그녀 특유의 왁자지껄, 시끌벅적, 티격태격, 좌충우돌식 '청춘 명랑 연애 코믹'의 전형이다. 다만 다른 작품들과 달리 지극히 사실적인 설정 하에서 철저히 연애물+코믹물의 임무에 충실하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만화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더구나 거의 만화적 비현실성이나 과장이 없이도 이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만화는 거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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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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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은 잘 되었다. 그 자체만으로 놓고 볼 때 손색이 없는 걸작이다. 일반적인 작품들을 판단할 때 들이댈 수 있는 기준들로 보아도 그렇고, 유태인 문제라는 뜨거운 감자를 요리해낸 방법으로 보아도 그렇다. 미국에서도 유태인들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는 집단이 아니다.(물론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태인을 거의 구경할 수도 없는 우리에게까지 알려져있듯, 돈만 알고 이기적이며 선민의식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악명이 높다. 슈피겔만이 그런 점을 모를 리 없고, 유태인의 비극을 다룬 만화에 대해 비유태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자신과 아버지라는 또하나의 대립항을 설정함으로써 위와 같은 비난들을 '일부 유태인만의 문제'로 비껴가게 만드는 것이었고, 이 카드는 멋지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비유태인 독자들이 하고 싶은 비난을 저자에 다름아닌 주인공 아들(본작은 자전적 실화이다)이 대신 해주고 있으니 독자들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태인들이 '당한 사연'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정교하게 의도된 장치였든, 자신의 예술가 기질과 충돌해온 유태인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배금주의로 대표되는)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든, 결과적으로 거부감을 현저히 누그러뜨리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설정은 작품의 비극적인 중압감을 덜어주는 역할도 훌륭히 해낸다. 현실이라고 믿기조차 힘든 대학살극을 다룬 작품을 보면서도 우리가 종종 웃을 수도 있고 한숨을 돌릴 수도 있는 것은, 그리하여 과도한 부담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이중구조의 덕이다.

기법적으로도 <쥐>는 뛰어나다.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인은 개, 폴란드인은 돼지 등으로 그려놓고는 유태인이 폴란드인 행세를 할 때는 돼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식의 묘사는 참으로 절묘하다. 만화만이 성공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기법이란 게 무엇인지를 작가는 영리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만화가일 뿐만 아니라 만화사 전문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내용/정신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이 형식/묘사에 있어서의 비사실주의적 기법과 어떻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상승작용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탄을 하며 읽어내린 다음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유태인 작가가 유태인의 비극에 대해서 다뤘다는 사실 자체는 하등의 문제될 바가 없을 것이다.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도 그렇고, 러시아 치하의 동유럽 유태인들 이야기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그렇다. 슈피겔만이 시오니즘을 두둔하는 흔적조차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작가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쉽지 않다. 창작자의 책무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논하는 미학적 난제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일례로 전범 당사자인 독일인들은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진해서 교육시키고 있다. 그것도 학교수업을 통해서. 반면 유태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당한 것만 끊임없이 강조하며, 심지어는 자신들과 함께 당한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기실 2차대전 당시에 최대의 희생자를 낸 것은 유태인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이었다. 또한 수많은 동유럽 사람들과 집시들, 좌익 등 반나치파도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비롯한 유태인 수난사의 어디에서도 그에 대해 적절한 만큼의 언급을 해주고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러한 점들이 본작의 성취를 절하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심심풀이용으로 소비될 것이 아닌 본작의 성격상, 더욱이 유태인도 독일인도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위와 같은 부분들에까지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을 어찌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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