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가루지기 1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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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전(=가루지기전)]은 손꼽히는 전통해학극으로 조선시대에는 판소리 12마당 중의 하나로 이름을 올려놓기까지 했던 '기서'이다. 12마당이 5마당으로 축소정비되면서 탈락의 쓴맛을 본 바 있고, '한국인은 그저 처량하고 청승맞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일제시대 문화정책 탓인지 그에 부화뇌동한 식민지 지식인들 탓인지 우리의 명캐릭터 변강쇠(와 옹녀)는 거의 잊혀지고야 말 무렵...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완성해낸 2개의 변강쇠 부활 시도가 있었으니 그 하나는 고 박동진 명창의 창작판소리 '변강쇠전'(사설(=대본)만 남아있는 걸 다시 작곡하다시피해서 완성했음)이고, 또 하나가 바로 이 <고우영 가루지기>다. 물론 대중력 파급력은 후자가 훨씬 강력했다.

중국 고전의 현대적/만화적 재생에 골몰하던 필자가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 고전에도 손을 대야겠다'고 작정한 끝에 도전했다는 본작은 한때 성인만화 시장을 재패하다시피 했던 문제작이었다.(당시의 쟁쟁했던 경쟁자로는 박수동의 [고인돌], 강철수의 '발바리' 시리즈, 김삼의 여러 단편들 등이 있다.) 이대근의 코믹한 연기와 분장으로 이제는 하나의 캐릭터로 고정된 '강쇠'의 원형이 바로 이 만화임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의 재치와 해학이 번득이는 고전 중의 하나다. 고우영의 묵직한 중국고전 번안작품만을 접해본 독자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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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브르 - 1,2권 합본 (양장)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3
발락 지음, 이슬레르 그림,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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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이 만화는 2003년 4월말 현재 완간되지 않았다. 1/2권 합본이 2000년 9월에, 3/4권 합본이 같은 해 12월에 나온 후로 소식이 없다. 책 끝엔 분명 '5권에서 계속...'이라고 쓰여있다. 해적판도 아닌 자칭 '유럽 예술만화'가 나오다가 마는 이 해괴한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가능한 해석 하나는 '유럽만화 붐 일으키기 실패'라는 가설일 것 같다. 2000년 즈음에 한창 시도되었다가 별 재미를 못보고 만 이 작전은 그만큼 일본만화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준 셈이 아니었나 싶다. 유럽산 예술만화라고 해서 달랑 100쪽짜리에 1만원씩이나 주고 사봤더니, 단돈 500원이면 빌려볼 수 있는 일본만화보다 내용으로나 그림으로나 별 대단할 게 없더라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걸작도 있고 평작도 있게 마련이겠지만, 그거야 일본만화도 마찬가지더라는 것이다. 내용에 있어서의 질적 차이가 뒷받침되지 못한 '껍데기의 차별화'(올컬러 호화양장) 작전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겉치장만 요란한 뮤지컬들에 가족관객들이 몰리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만큼 만화독자들의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법하고.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은 작품 수준 자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권에서만 해도 제법 그럴싸하게 조성되었던 열기와 긴장감, 미스테리는 뒤로 갈수록 단순한 고열과 편두통, 아리송함으로 흐지부지되어버린다. 장작더미같이 온통 검붉은 색조로 뒤덮힌 색채감이나 역사적 배경, 시적인 대사들은 뚜렷한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꿰지 못한 서말 구슬같은 인상도 남긴다. 한 마디로 감정과잉이라는 느낌이다. '낭만주의의 걸작' 운운하더니 그게 좋은 뜻이 아니었나보다. 스토리 전개는 상당히 산만하고, 그림체는 결코 노련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별로 대단한 소재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책장을 덮은 뒤에 남는 기억은 이런 것들이다; 하여간 시종일관 불그르죽죽하구나, 이런 사랑 이런 감정 20대 초반만 됐어도 가산점 줬을지 모르겠다, 유럽에서야 이 정도 수준으로도 통할지 몰라도 숱한 걸작으로 한껏 눈을 단련시켜놓은 한일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을텐데, 근데 5권이 뒤늦게라도 나오면 그걸 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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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헌터 City Hunter 1 - 완전판
츠카사 호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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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농담이다. 색조도 곱게 바랜 추억을 더듬어 어릴 적의 명작만화를 다시 들추었더니 이건 그야말로 유치찬연의 수준이더라는 경우도 다반사임을 감안할 때, 투니버스의 애니판으로 다시 봐도 여전히 낄낄댈 수 있을 만큼 본작은 썩 양호한 수준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루팡 3세]를 떠올려도 큰 실례가 안될 만한 '잘 만들어진 상품'이다.(예술성은 다른 우물에서 찾으시도록.)

해적판으로 처음 소개될 당시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것이었다. 거짓말 안보태고, 신권이 나오면 적어도 3명은 기다려야 간신히 차례가 돌아오곤 했다. 그냥 기다리기가 지루한 덕에 '이삭줍기'로 읽혀진 만화도 꽤 될 것이다. 방의표(당시 해적판의 주인공 이름)는 마흥식과 함께 남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열광적 호응은 당시까지 성적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만화나 영화를 대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형편의 반증이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히히덕거릴 만한 것들이 원산지를 막론하고 넘쳐나지만 그때의 텍스트 세상은 콘텍스트만큼이나 양극 아니면 음극이었다.([소나기]거나 '세운상가'거나.)

그런 엄숙한 이분법에 가위눌려 살던 남학교 앞 만화방에 운석처럼 떨어진 방의표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런 비비꼬인 추억 탓에 요즘도 이 만화의 표지를 흘낏거리는 나의 표정은 회상과 신물이 묘하게 배합된 그 어떤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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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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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된 것은 90년대 후반의 일이지만,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것이다. 그나마 90년대 초반의 세 편은 월북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며, 나머지는 모두 88년부터 90년 무렵에 발표된 것들이다.

그 당시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87년 시민항쟁이 있었고, 직선제 대통령(저간의 사정이야 어쨌거나)이 선출되었고, 한 마디로 민주화라는 것이 진행되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금서, 금지곡들이 해금되고 창작의 자유가 대폭 확대되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서 만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회비판적 창작물들이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그 한 정점에 이 단편집의 수록작들이 있었다. 이른바 기념비적 작품이랄까.

하지만 21세기 초인 지금에 와서 보면 확실히 '기념비같은' 작품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동시대적 생생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소설로 치면 마치 황석영의 [객지]나 조세희의 [난쏘공]이나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같은, 시로 치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신경림의 [농무]같은, 음악으로 치면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같은 정서로 고스란히 점철되어있다. 민중적이랄지 서민적이랄지, 내용에서도 형식에서도 리얼리즘 원칙을 모범생처럼 고수하고 있는 그 모습은 좀 답답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작품의 상당수가 20세기 초중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농촌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낡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치면 명작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다수가 같은 신세가 되어야 할 터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호평을 받는 작품에는 항상 역사적 의의 이상의 것이 있기 마련이며 본작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내용뿐 아니라 그림과 구성 모두에서 구절구절 찾아볼 수 있는 '성실함'은 최대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다만 작가의 기본시각 자체가 80년대식 사실주의의 갑옷을 단단히 두르고 있는 탓에서 기인하는 '답답함'은 아쉬운 대목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그 시대의 잔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독자의 정서가 진짜 원인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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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상
시로 마사무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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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판, 즉 원작 <공각기동대>를 두고 결코 별볼일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판과 비교해보자면, 특히 당신이 애니판의 그 신산한 분위기와 두통을 수반하는 진중함을 미덕으로 여긴다면, 만화판은 아마도 기대만 못할 것이다.(상대치로 봐서 그렇다는 얘기다. 절대치로는 뭐 괜찮다.) 가장 큰 차이는 만화판이 여느 일본만화같은 통속성을 군데군데 삽입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군데군데'가 결정적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혹은 잡친다. 여주인공의 섹시함 강조하기, 실없는 개그 치기, 마구 심각해지다가 지나치다 싶으면 슬그머니 관두기 등. 애니판의 팬이라면 도저히 한번 집어들지 않을 수 없겠지만, 큰 기대는 안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다른 쪽으로 기대를 하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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