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찍는 55가지 이야기
장경환 지음 / 두솔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200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토그래피 필드가이드' 시리즈가 나오면서 사진 교재 시장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은 물론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사진 교재란 셔터스피드, 조리개, 노출, 플래쉬, 여러 가지 렌즈와 기타장비 사용법같은 부분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매뉴얼'에 불과했다. 과거의 필름카메라 교재라면 여기에 필름 선택, 현상과 인화 정도가 추가되었고, 요즘의 디지털카메라 교재일 경우 그것이 디지털 후보정으로 바뀐 정도다.

물론 이것들도 다 알 필요가 있긴 하다. 그러나 '사진 = 카메라 조작'이 아닌 이상, 이것은 어디까지나 카메라 매뉴얼이지 사진 교재는 아니며, 당연히 이런 책을 본다고 사진 실력이 늘기는 어렵다. 영화 촬영에 쓰이는 각종 장비 조작법을 마스터했다고, 음악 녹음에 쓰이는 각종 악기와 레코딩 장비 조작법을 마스터했다고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질 리 만무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DSLR 붐과 맞물려 이런 얄팍한 책들은 수도 없이 쏟아져나왔고, '100만원이나 되는 DSLR을 샀으니 이제 조작법만 알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하는 광범위한 오해에 힘입어 팔릴 만큼 팔려나갔다.

이런 흐름에 결정적 변화를 준 것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책들이었고, [나의 첫 번째 사진책] 등 일부 국내 저자의 책들도 일익을 담당했다. 이제는 사진이 어떤 장비를 어떻게 조작할 것이냐의 문제를 한참 뛰어넘는 작업이라는 진실이 느리지만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어느날 뒤를 돌아보니 이런 책이 나와있었던 것이다.

지인의 집에서 이 책을 우연히 들춰보고 깜짝 놀랐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보다 1년 이상 이전에 나온 것인데도 기조는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저자의 것이었다. 처음 눈길을 사로잡았던 목차와 서문의 충실성이 본문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진을 제대로 찍어보겠다는 사람들이 꼭 들어두어야만 할 이야기들로 알차게 채워져있음을 확인하고서야 아까운 책 하나가 속절 없이 묻혔었음을 알았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2005~6년과 2004년은 또 달랐고, 유명한 저자도 힘있는 출판사도 아니었으며, 편집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책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정도로 밋밋하며 평이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거나(어쩌면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거나), 얼핏 보고는 그저 평범한 사진 에세이 류의 책으로 여기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정말 사진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조작법은 카메라 살 때 딸려오는 매뉴얼을 보면 되고, 그래도 모르는 건 인터넷으로 뒤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찍을지, 어떻게 접근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지 등 한 마디로 '사진 창작의 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책으로 보고 강좌로 배워야 할 부분이다. 카메라 사고 만지는 게 취미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게 취미라면(일과 관련된다면 더더욱) 이런 책은 꼭 봐두어야 한다. 비록 예제사진이나 풍부한 부가정보 등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시리즈 등에 견주긴 어렵지만, 본문의 내용만큼은 추천을 아끼지 않을 만큼 미더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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