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빌려드립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하늘연못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백년동안의 고독]에 감명받은 독자라면 마르께스의 책을 더 찾아볼 수밖에 없다. 위대한데다 재미있기까지 하니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같은 다른 장편으로 이어져도 좋겠지만 이 책과 같은 단편선도 권할 만하다.


아홉 편의 단편소설과 아홉 편의 산문, 그리고 관련 기사 하나와 인터뷰 하나. 이번 개정판이 3판인데 2판과 구성은 동일하다.

다만 2판에서 종종 보였던 비문과 오역을 좀 손봤다고 하니 다행이다.

(마르께스의 고향 콜럼비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역자임에도 불구하고 2판까지의 번역 솜씨는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 문장 자체가 비문인 경우가 종종 있었고, 오역으로 의심되는 경우도 못지 않았었다.)


내 경우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받은 충격 수준의 감탄이 단편소설들에까지 줄곧 이어지지는 않았다. 첫 번째로 실린 '눈 속에 흘린 피의 흔적'은 대단했지만, 뒤의 8편은 그것을 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돋보였던 것은 산문들이었다. 단편소설들보다도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상력과 유머감각과 사회의식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마르께스 특유의 솜씨가 100% 발휘되고 있다. 그의 문학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나 '환상과 예술창작'을 비롯, 책과 문학에 관심 많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와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시', 실로 흥미진진한 '노벨상의 환영 1, 2'까지 아홉 편 모두 빼놓을 것이 없다.


제대로 된 예술가와의 인터뷰가 늘 그렇듯, 96년에 진행된 인터뷰도 팬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콜럼비아라는 나라의 기막힌 현실(과 그 영향), 독특한 집필 습관, 마지막 주요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관한 생생한 구상까지 내용이 꽤 알차다.


마치 긴 꿈을 꾸는 것처럼 빠져들어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해야만 하는 그의 장편 대작들과 달리, 퇴근 후 하루에 한 편씩 읽어나가는 즐거움을 약 한 달간 만끽할 수 있는 맛깔난 글모음이다. 무엇보다도 마르께스의 단편을 한데 모아놓은 국내번역본은 사실상 이것밖에 볼 것이 없다.(나머지는 이 책의 구판이거나 이 책과 많이 겹치는데다 절판되어버린 것뿐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문학 선생들이 우리의 눈을 이성주의라는 어둠으로 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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