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디트 - 의적의 역사
에릭 홉스봄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의적의 역사'라는 부제에 홀려 로빈 후드가 뛰어다니고 홍길동이 날아다니는 내용을 기대했다면 몇 십 페이지도 못 가 책장을 덮고 말 확률이 크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수호지]에서부터 [로브 로이]까지 다종다양한 소설과 영화들이 이미 준비되어있다. 에릭 홉스봄은 소설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명망 높은 역사학자로서, 그는 참으로 착실하게도 산적(의적을 포함하여)이라는 직업을 택한 인간들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을 이어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시골의) 산적은 (도시의) 갱스터와 어떻게 다른지, 의적들이 지녔던 가치관은 혁명가의 그것과 어떻게 달랐는지, 산적의 출신성분과 활동공간은 대체로 어떠했는지, 그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기타등등. 요컨대 이 책은 산적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학술적 고찰이지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는 편이 나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꼭 좀 이 책의 독자가 되어줘야 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선정된다. 우선 산적을 소재로 뭔가 창작물을 만들어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말할나위 없는 필독서임을 확신한다. 특히 좌파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지적해내는 '산적의 의미와 한계'는 마음 속에 담아둘 가치가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의적이니 테러리스트니 아니키스트니 하는 단어들에 괜시리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9장 '부의 징발자'와 부록 2 '산적 이야기의 전통' 후반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번역은 착실하긴 하지만 그다지 노련하다고는 못할 것 같다. 직역에 가까운 딱딱한 문체가 종종 이해력을 내놓으라며 출몰콘 한다. 반면에 책의 만듦새는 칭찬할 만하다. 편집이며 디자인 모두 훌륭하고 오탈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다소 엉뚱해보일 수도 있는 아쉬움을 하나 언급해두고 싶다. 숱하게 거론되는 [수호지]는 물론이고 인도, 인도네시아, 나아가 일본의 사무라이들까지도 종횡무진으로 망라되는 산적의 목록에서 끝내 홍길동이나 임꺽정, 장길산의 이름 한 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초판도 아닌 세 번째 개정임을 홉스봄 스스로 밝히고 있다보니(초판은 1969년에 나왔다고 한다) 그 정도가 조금 더한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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