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20주년 골든앨범
정태춘 박은옥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숫자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80년대와 90년대가 그렇다. 8자와 9자 하나의 차이가 왜 그리도 커보이는지, 고대사 연표 속의 한 시기같았으면 찰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20년이 어쩌면 그리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기타등등. 그리고 그 시간대 내내 만나왔던 음악인 중에 정태춘, 박은옥이 있다. 그들의 주옥같은, 때로는 서릿발같은 명곡들을 2장의 CD에 추려모아 1장값만 매겨놓았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CD 1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의 곡들이다. 30-40대라면 옛친구처럼 익숙할 '국악친화적 포크'의 명곡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거의 빠뜨린 게 없다 싶을 정도로 탁월한 선곡이다. 이들 부부의 이 시기 음악에만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다른 어떤 음반보다 이번 선집을 추천할 수밖에 없을 만큼 CD 1의 선곡은 완벽하다. 이 시기를 정리한 것으로 더 이상의 선집은 동어반복에 불과할 것이다. 전집이라면 몰라도.

반면에 CD 2는 그 이후의 사회참여적 노래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선곡상의 한 가지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여성을 띄기 시작하던 [무진 새노래]에서 3곡,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후와 같은 느낌이었던 [92년 장마, 종로에서]로부터는 무려 6곡, 일보후퇴 후의 모색과 같았던 [정동진]에서 4곡, 반면 가장 뜨겁고 목청높았던 [아, 대한민국...]에서는 단 2곡...... 그나마 80년대 초반에 써놓았던 곡을 뒤늦게 수록한 것들이다. 글쎄, 시의성이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되돌아보기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상의 구별이 철폐된 오늘날 [홍길동]은 불쏘시개로나 써야 할까? 이혼율이 세계수위를 다투는 판에 [춘향전]은 냄비받침에나 쓰는 게 맞을까?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고대의 다신교는 사라진지 아득하니 그 많은 신전과 상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아, 대한민국...] 음반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당사자가 해버렸으니 더욱 묻고 싶은 말이다. 물론 더 안찍는다고 있던 음반들까지 사라지는 거야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이만큼 알차다 못해 비좁기까지 한 2장짜리 선집을 낼 수 있는 음악인은 몇 되지 않는다. 아직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을 CD로 장만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나아가 CD 1이나 CD 2에 해당하는 음반만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도 최우선으로 추천할 만하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이 선집 이후에 나온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도 꼭 장만하실 것을, 더불어 기회가 된다면 [아, 대한민국...]도 어떻게든 구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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