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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10집 -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정태춘. 박은옥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새 음반을 대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단 부담감부터 느낄 것 같다. [아, 대한민국...] 이래 너무도 확연히 '운동권 가수'의 길을 걸어온 그들이기에, 그리고 그 길에 대해 본인들도 만감이 교차해하는 것 같기에, 이런 종류의 등짐을 한보따리 지고 서있는 그들의 신보를 놓고 살지 말지, 들어보고 나서는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할지 망설여지곤 했다. 내 경우엔 등짐이 유난히 버거워보였던 전작 [정동진]이 특히 그랬었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 대해서는 이런 부담을 벗어던져버려도 좋다. 이들은 마치 새로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 어디 멀리 배낭여행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처럼 등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의욕적인 재출발을 하고 있다. 전작에서의 90년대에 대한 회한과 애증과 막막함은 그 대상과 더불어 다 떠내려보내고 새롭게 맞이한 21세기를 넉넉하게 응대하는 모습이 퍽 보기 좋다. 새로운 세기의 속에는 조선족 보따리 장수도 있고(동방명주 배를 타고), 압구정동 풍경도 있고(압구정은 어디), 변화된 남북관계도 있고(리철진 동무에게), 때로는 이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기도 한다(오토바이 김씨). 사운드 역시 장타령같이 떠들썩한 풍자적 포크락이며 여전한 서정적 포크나 국악과의 접목이며 심지어 재즈까지 방물장수처럼 다양하게도 벌여놓았다.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되 조급하거나 애증에 휩싸이지 않고 길게 내다보는 이 태도는 과연 백전노장의 그것이다. 이제야 그들은 균형을 잡은 것 같다. 너무 추상적이기만 한 서정의 시대(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와 너무 구체적이기만 한 참여의 시대(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를 다 건너온 그들의 풍경화는 나무 하나하나를 그려넣어 완성한 숲과도 같다. 사람들아, 잊지 마시라. 정태춘, 박은옥은 아직 안죽었다. 오히려 이들 뒤를 추격해주는 후배가 별로 없음을 애석해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