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 불일출판사 / 1986년 4월
평점 :
절판
얼핏 비교종교학 서적같은 제목을 하고 있는 이 책의 주장은 순진하거나 독단적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일 법하다. 전체 3부 중 인도기행문인 2부와 유럽 지식인들(게오르규, 이오네스코, 로브 그리예 등)과의 대화록인 3부도 흥미로울 수 있겠으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1부의 논문들이겠는데, 그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도와 티벳 유학을 통해 불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돌아가 유태교의 한계를 극복한 기독교를 창시했다.'
배타성에 있어 세계정상을 달리는 한국 개신교도들이 들으면 펄펄 뛰거나 아예 무시해버릴 만한 내용이지만, 저자는 나름대로 다양한 근거들을 제시하며 열심히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록된 글들이 학술논문으로서의 엄밀성을 별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서지나 실증적 근거들을 꼼꼼이 제시해야 할텐데도 마치 잡지 연재칼럼처럼 대충 언급하고 지나가버리기 일쑤여서 반대론자들에게 책잡히기 딱 좋게 되어있다. 논리 전개 또한 대체로 산만하여 또렷하지가 못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신학자가 [토마스 복음서와 법화경의 비교분석]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선 바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노릇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저자가 주요근거로 삼고 있는 [토마스 복음서](혹은 '도마복음')라는 고문서가 60여년 전에 새로이 발굴된 것만은 사실이며,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이것의 국역판을 구할 수도 있고, 라즈니쉬의 [도마복음 강의]까지 나와있으니 말이다.(아직까지 기독교 쪽에서는 '그노시스파가 자기들 멋대로 써제꼈던 이단 책자일 뿐'이라며 무시하는 분위기인 듯하지만.)
사실여부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또다른 이유는 이 책의 의도가 선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불교가 기독교의 스승이다'는 자랑을 하고자 글을 쓴 것은 아님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양대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모색하고 그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꼭 원조집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양측의 경전들을 통해(기존 4복음서 포함) 그 유사성을 입증하는 부분 등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을 위해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책의 개정판이 [새롭게 쓴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발간되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아직 읽어보지 못해 어느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