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 문예출판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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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주의는 일견 매력적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라면, 기존의 권위와 체제에 온삶으로 저항할 것을 선동하는 포스트주의의 슬로건은 대단히 솔깃하게 들리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니체에서부터 본격화한 '현대의 반이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근대 서양의 이성주의-합리주의-형이상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않으면 곤란하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도 참고하지 않으면 또하나의 독단과 극단에 빠지기 딱 좋다.

요컨대 근대적 이성주의를 곧이곧대로 옹호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포스트주의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동양사상에 기반한 비판도 있고, 영미분석철학의 입장도 있고, 또 맑스주의와 비판이론도 있다. 그들 사이의 간극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사이의 그것보다 더 넓기까지 하다. 그중 비판이론(혹은 네오 맑시즘)의 마지막 대표주자로 공인된 위르겐 하버마스의 본격적인 포스트주의 비판서가 바로 이 책이다.

아직 문제가 다 지적되지 않았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포스트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서라는 선전에만 혹해서 이 책을 섣불리 집어들었다가는 입맛만 씁쓸해지기가 또한 딱 좋다.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은 차라리 대수가 아니다. 비판이론 진영의 저술치고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며 하버마스 또한 유감스럽게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나 또한 대학원 수업교재로 채택된 덕에 간신히 읽어나갔지, 혼자서 보려고 했다면 과연 완독했을지 의문이다. 쉬운 책이 아니다.

거칠게 간추리자면 핵심은 이렇다; 포스트주의자들의 반이성주의에 대한 신이성주의로의 화답. 이것은 비판이론의 오랜 주장으로서, 근대적 이성주의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것은 이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가 이성을 왜곡, 변질시킨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성 본연의 긍정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선배 학자들의 기초 위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 상호주관성'이라는 대안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올바른 극복방법이며, 아예 이성과 체계와 유토피아와 진보 자체를 거부하는 포스트주의의 방법은 틀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지를 매우 상세하고 치밀하게, 전문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인 셈이다. 모두 12개의 '강의'로 구성되어있는 책의 4강까지는 83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했던 강의를 기초로 하여 작성된 것이며, 그것을 발전시킨 것이 5~12강이다. 근대적 이성주의의 총화라 할 헤겔, 그에 대한 반란의 선봉장 니체, 그 후예들인 하이데거, 데리다, 바따유, 푸꼬, 하버마스 자신의 선배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나아가 카스토리아디스와 루만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실로 난해하고도 정치한 논리전개를 펼쳐나간다. 충분한 준비와 각오를 다진 후에 도전해야 할,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는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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