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이 이미 역사 교과서에 실려있는 과거사인 지금, 맑스주의에 대한 가장 합당한 대우는 '고전(古典)'으로서일 것이다. 그와 동시대 혹은 이전의 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상은 현실에서는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으나 인류의 지성사에서는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자의 측면만을 침소봉대하는 업신여김도, 후자의 측면에만 매달리는 눈가림도 모두 자기손해일 뿐이다.그만큼 커다란 족적을 남긴 맑스주의라는 고전을 우리 시대에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맑스와 엥겔스가 남긴 저작들 자체를 제대로 읽는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교조화시켰던 수많은 해설서들(동구권에서 수업교재로 쓰던 것이든 한국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펴내던 것이든)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희화화시켰던 수많은 비판서들의 해독을 되새겨보자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오역이라는 걸림돌까지 겹쳤음에랴.이러한 이유에서 감히 이 [저작선집]을 '제대로 맑스주의를 접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최고의 독본으로 꼽아본다. 원서 자체가 갖고 있는 엄밀한 선별과 체계에 더해 고지식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지켜나간 번역과 편집을 대하노라면 과연 이런 것이 학술서(특히 고전) 출판의 표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전6권으로 되어있는 선집의 제1권은 1843년부터 1849년까지의 저술들을 담고 있다. 이른바 '청년 맑스 시기'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는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이후의 연구들이 경제학에 중심을 두고 있는 데 비하여 뚜렷하게 철학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휴머니스트로서의 맑스와 엥겔스의 면모가 가려지지 않은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만큼 맑스주의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동시에 인문학 전반에 보다 넓게 관련되는 문제의식들을 담고 있는 저술들이다.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인 맑스주의 연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