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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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그의 작품은 고국 체코에서는 오른쪽으로 삐딱하다 하여 읽을 수 없었고 이역만리 한국에서는 왼쪽으로 삐딱하다 하여 읽을 수 없었다. 이제 체코는 열심히 자본주의를 배우고 있는 중이고 한국에선 그의 책을 읽지 않고서는 지식인 축에 끼지도 못할 지경이다.

어찌 보면 농담과도 같은 이 모든 역사의 흐름을 쿤데라는 일찌감치 통찰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련을 등에 업고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50년 전 체코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나의 머리 속에는 미국을 등에 업고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같은 시기 남한이, 그리고 다시 50년 뒤 두 나라의 현실이 데깔코마니처럼 중첩복제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한번은 희극으로'라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이 쿤데라의 처녀작이라는 사실은 기억하면서도 이 작품을 쓸 당시 그의 나이가 36세를 넘지 않았다는 점은 종종 망각하는 것 같다. 다른 작품들의 집필연도나 많이 알려진 노년기의 사진들로부터 각인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처녀작다운 미흡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걸출한 작품성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부분 자전적 경험에 기초했다고 하는 이 처녀작에서부터 이미 쿤데라의 작품세계는 유려하고도 탄탄하다.

각 부(部)마다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 치밀하게 얽혀나가는 이야기 구조, 화자가 바뀜에 따라 함께 바뀌면서 주인공들의 성격을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문투(불어로부터의 중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당부분 번역자의 공일 것이다), 역사와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박학다식과 이야기 자체의 극적 재미라는 세 요소의 기막힌 조화까지를 만끽할 수 있는 걸작이다. 닳고 닳은 사실주의 기법만으로 이만한 성취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적지 않은 독자들은 이 소설이 상당히 영화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조금만 손을 보면 바로 영화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특징의 배경은 쿤데라 자신이 영화학교 교수를 역임하기까지 했었다는 사실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본작은 영화화가 된 적이 있다. 체코 감독 Jaromil Jires에 의해 1969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제목은 원제와 동일한 [Zert(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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