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풍경 - 1967-1988
김기찬 지음 / 눈빛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골목 안 풍경' 시리즈로 유명한 김기찬이지만 평생 골목길만 찍었던 것은 아니다. 역전 풍경도 있고, 서울 근교 교외 풍경도 있고, 개발현장 풍경도 있다. 그 중 뒤의 두 가지를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 이 사진집이다. 우리 곁의 변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기록을 주된 사명으로 여겨온 작가로서 서울 변두리 일대의 개발현장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는 하나, 그렇더라도 이 책의 2부는 '유난히 주장이 뚜렷한' 김기찬의 작품들을 대거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책은 1, 2부로 나뉘어있는데 1부는 개발 이전, 2부는 개발 중의 동네풍경들이다. 시기는 1967-1988이라고 책표지에 기록되어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이며, 장소는 천안 사진 3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의 변두리 동네들과 경기도다. 그런데 그 '변두리'라는 게 석촌동, 가락동, 고덕동, 고양, 수색, 부천, 미사리 등이라는 게 포인트다. 

1부의 경우 촬영정보 없이 보여주면 대개들 서울에서 차로 서너 시간은 밟아야 되는 시골의 60년대 풍경쯤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풍경들이 1부와 별 차이 없는 시기에 어떻게 아파트촌으로 변모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2부다. 그러니 정확하게는 개발 이전과 도중이 아니라, 개발의 전면과 이면이라고 해야겠다. 과연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아주 적극적으로 버려버린 것인지. 이러한 장소와 시점의 특징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익히 보아왔을 법도 한 이미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모이면서 큰 힘을 얻고 있다. 개별사진을 보는 것과 사진집을 보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일 듯하다. 

책은 하드커버 제본도 좋고 인쇄상태도 이 정도면 양호한 것 같다. 다만 조금만 더 양쪽으로 '쫙' 펼쳐질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양면으로 인쇄된 일부 사진들의 경우 보기가 약간 불편하다. 그보다는 이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의 사진집들이 대부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더 불편하긴 하지만.(나온지 10년도 안됐다.) "멀리서 아파트가 쳐들어오고 있었다"는 작가 서문의 한 구절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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