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유동물
윤명희 외 지음, 박정길 그림, 원병오 감수 / 동방미디어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비슷한 크기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비교적 풍부하다곤 하지만, 역시 한국은 아프리카처럼 포유동물이 와글대는 나라는 아니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위기에 몰린 게 태반이며 살아남은 녀석들은 깊게 숨죽인 채 밤에만 돌아다니는 야행성이 되었다.(인간 때문에 야행성으로 진화했을 거라고 믿는다.)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일 듯한 포유류가 정작 남의 나라 사람들이 더 먼 나라 가서 찍어온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친숙한 이유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또 고맙게도, 살아남은 포유류들이 있다. 흔하게는 다람쥐와 청설모에서부터 너구리, 족제비, 노루와 고라니, 멧돼지를 거쳐 수달과 반달가슴곰과 산양, 하늘다람쥐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 남한 땅에 중대형 포유동물들이 살아남아있다는 것이 기적적이기만 하다. 그뿐이랴. 바다에는 갖가지 돌고래와 물범 등이 저 먼 곳 어딘가에서 뛰어놀고 있다. 하지만 우린 모른다. 실은 현관 앞에 핀 꽃다지도 알아볼 줄 모르고 근처 공원에 왁자지껄한 직박구리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빛난다. 한국의 포유류에 대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할 뿐 아니라 충분히 알찬 본격 도감이다. 원로 생물학자 원병오 교수의 감수 아래 분야에 따라 총 4명의 전문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육지 포유류는 물론 바다 포유류며 박쥐목까지 그야말로 포유류란 포유류는 완전히 섭렵하고 있다. 예컨대 참돌고래과의 15종, 쇠돌고래과의 3종, 무려 21가지의 박쥐류,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종들도 모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종도 모두, 심지어 외래종인 뉴트리아까지. 실로 충실하다.

사진으로만은 도저히 어렵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세밀화를 활용했지만 사진 자료도 꽤 된다.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다니만큼 정확성과 전문성이야 보증된 것이겠지만 일반인이 읽어도 어렵거나 따분할 것은 없다. 치열(이빨)에 대한 설명이나 외형에 대한 지극히 상세한 설명만큼은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까짓것 좀 건너뛰어도 상관 없다. 화질 좋은 올컬러판 그림과 사진이 풍부하니까.

크고(대략 공책 크기) 비싸다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휴대는 어렵고(어차피 그럴 일도 거의 없겠지만) 마음을 한 차례 먹어야 될 만한 가격이다. 세밀화의 퀄리티가 조금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훨씬 싸고 내용도 괜찮은 도감 겸 해설서--[저 푸름을 닮은 야생동물], 유병호, 다른세상--도 있긴 하다.(대신 여기엔 바다 포유류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을 한 권 소장하지 않기엔 너무 허전하다. 책이 너무 아깝고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뛰어노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동물들을 사랑하는 것도 나쁠 거야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땅 어딘가에서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불쌍한 녀석들'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게 순서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난개발에 밀리고 로드킬에 치이며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지 모르는 까닭이며,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리기엔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많은 혜택을 나눠갖고 있는 탓이며, 묶인 매듭을 풀어주러 올 타국의 누군가가 있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너무나 부끄러운 노릇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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