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재 동문선 현대신서 41
아티크 라히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작로 한쪽에 노인과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계속 귀찮게 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주문한다. 노인이 사과를 꺼낸다. 앞니 없는 아이가 사과를 깨물어 먹는 것이 힘겹다. 노인은 칼을 꺼내 사과를 자르고 다시 손자에게 준다.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는다. 사과위에도…….사과를 손으로 덮어서 감싸자 아이는 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끈다. 먼지가 앉는다고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노인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위에 기에 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손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다리 옆의 건널목을 지키는 사내에게 차가 오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초소를 지키는 이는 신경질 적이다. 노인은 쩔쩔 매면서도 꼭 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노인의 가족은 다 죽었다. 전쟁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와 폭격의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노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한탄하며 손자를 바라본다. 손자는 운이 좋아 살았으나 폭발음으로 청각을 잃었다. 노인은 발가벗은 며느리가 폭발의 화염 속에 찢겨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물을 얻기 위해 갔던 가겟집 주인은 무척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서 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이 둘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 아들에게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떼를 쓴다. 차가 올 시간이 다가온다. 노인은 갈등한다. 가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가지 않고 아들이 모르는 채 탄광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은가. 남에게 전해 듣는 것 보다 노인이 직접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는 결국 가겟집 주인이 맡아 주기로 한다. 가서 잘 곳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자신의 아들이 귀머거리가 되었음을 일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본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도 될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버스기사가 가겟집 주인의 인품을 칭찬하고 나서는 안심한다.


탄광에 도착하고 아들을 만나게 될 두려움에 망설인다. 결국 감독관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아들을 만나기를 요청하지만 감독관은 아들이 갱도 깊이에 일하고 있으며 가족모두가 다 죽은 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알면서도 집으로 오지 않은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사실 감독관의 술책으로 아들의 면회는 거절되었다. 돌아가는 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서는 노인. 동료청년에게 자신임을 증명할 담배통을 맡기고 돌아선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영화,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현실의 어두움과 인간성의 파괴, 잔혹성과 야만의 그림자 속에서의 삶을 그린다. 저자 아티크 라미히는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모국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쟁속의 무자비한 폭력의 광기는 지식인에게 가장 먼저 큰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이를 아는 이들은 국외로의 망명길에 오르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고국에서 죽음을 맞는다.


외세에 의한 전쟁과 동족끼리의 전쟁을 겪은 한국의 역사를 보아도 수백만의 눈물과 고통, 아픔이 오늘날에 전해지는 것은 기껏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전쟁이 앗아간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잃는 것에 대한 내면을 잘 그리고 있는 ‘흙과 재’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전쟁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민주화의 열망을 돌리려는 3S(스포츠, 섹스, 스크린)정책의 일환으로 전두환 정권에 출범한 프로야구도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프로야구는 우리 국민이 기대와 열망을 담은 스포츠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스타들과 진기한 기록들이 야구역사에 남고 있다. 꼭 강한 팀 뿐 아니라 최고의 약자였던 야구팀에 대한 향수를 담은 소설과 영화도 있다.


얼마 전 역대 최고의 관중을 갱신한 한국 프로야구가 점점 그 관심을 더하고 있다. ‘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계기로 불붙은 야구의 열기가 국내 프로야구 시장에서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2년 만에 통산 10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는 KIA타이거즈의 기운이 가는 곳마다 관중을 불러오고 있고, 순위와 관계없는 관중을 몰고 다니는 롯데자이언츠,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는 SK와이번스, 서울을 홈팀으로 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두산베어스의 우승을 노리는 힘과 4위권을 다투고 있는 삼성과 롯데, 히어로즈의 싸움이 흥미진진하다.


여성관중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WBC와 올림픽을 통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 특급 투수와 타자들이 젊은 여성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왔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들은 팀보다는 선수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선수들이 소속된 팀의 경기마다 선수를 응원하는 피켓이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로야구의 중흥을 국제대회의 성적만 가지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각 구장에서 관객의 흥미를 더하게 하는 각종 이벤트와 홍보가 이루어지고, 관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구장설비개선과 관중석의 보수공사 등이 이루어진 것도 관객이 많아진 것에 일조했다.


문제는 급작스러운 관심이 야구경기에 흥미를 가지는 데에 도움은 되지만 지속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야구팬이 되고자하는 야구 초보자들은 많은 정보를 접해야 하고 이중에 필요한 것은 알아 두어야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데에 더욱 흥미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아는 여자>는 최근 늘어가는 야구팬들 중에 야구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 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3년 만에 초보에서 전문가가 된 여성기자가 쓴 야구해설서다. 야구경기를 위한 기본적인 규칙과 전광판 보기, 경기 구성인원과 야구산업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 해설가와 감독, 선수, 코치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백과사전식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취향별 팀선택 가이드까지 넣고 있다. 프로야구의 역사와 알아두면 좋은 상황별 대처 팁들도 소개된다.


야구를 좋아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방황하는 분들은 지금 막판인 야구장에 가서 그 열기를 느껴보라. 그리고 좀 더 취하고 싶으면 쉽고 재미있게 쓰인 야구해설서를 읽는 것이 열광적인 야구팬이 되는 한걸음에 도움을 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2-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야구 개막 카운트다운에 해가 뜨고 지는 2월입니다!
야구 관련 도서를 즐겨 읽으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다 들어왔습니다.:)
찌질하고 부조리한 삶은 이제 모두 삼진 아웃! 국내최초의 문인야구단 구인회에서 우익수로 뛰고 있는 박상 작가가 야구장편소설 <말이 되냐>로 야구무한애정선언을 시도합니다.
야구 소설도 읽고, 야구 경기도 보고, 소설가가 시구까지 하는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참여해 보세요.
인터넷 교보와 알라딘, 인터파크, yes24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랑말랑 흥미진진한 야구해설서죠. 저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일 2010-02-27 15:56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정보 힘들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근래에 개인의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에 관한 소설을 많이 있지만, 사회적인 구조 정. 경. 학계의 공고한 시스템, 계파와 이즘의 아귀다툼과 그 속에서 생기는 소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은 흔하지 않다.


배명훈의 ‘타워’는 그래서 다르게 느껴진다. 자신의 팬을 점점 넓혀 유명기성작가이상의 호응을 받고 있는 박민규의 ‘칭찬’의 글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가진 통속성과 유머, 풍자와 해학의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일이다.


‘태초에 ‘타워’가 있었다‘ 라고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타워는 674층 높이에 50만의 인구를 수용하는 독립국가 빈스토크(잭과 콩나물에 등장하는 콩나물의 이름을 땀) 층별대로 계급구조가 이루어져 있고 수직이동 통로인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인 동시에 국가의 동맥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국가적 사태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소설은 지금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효율과 부조리에 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소설은 연작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등에 대한 ‘보너스’ 같은 글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시간, 배경을 가지고 이어지는 단편 중에 가장 직설적인 현실비판을 드러내는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을 꼽는다.


타워의 대표적 ‘사상’은 ‘수직’과 ‘수평’으로 나뉜다. ‘수평운송노조와 수직운송조합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빈스토크의 양대 이념 체계’라는 작자의 해석과, 이 단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로 해석 할 수도 있다. 타워가 가진 물리적 성격, 그리고 구성원들의 계급과 계층에 따른 분류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교통공무원이면서 수직주의자도 수평주의자도 아닌 중립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수평주의자들의 데모와 테러에 대항하기 위한 선택은 ‘수직주의자’의 것이 되고 만다. 계급과 계파, 수직주의와 수평주의의 대립이 테러를 낳고 이 테러 속에서 분열하는 계급내의 갈등까지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 5개의 에피소드는 타워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돕는다. 타워에 대한 이해가 읽는 이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더 넓게는 세계 속의 한국에 대한 위치와 그곳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처지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직 천체물리학자 ‘로익’은 눈을 감는다. ‘파트리샤’는 내 곁에 더 이상 없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 매일 계속되는 악목과 쌓여가는 죄책감. ‘모르포’라는 이름의 작은 요트를 손질하고 한 번씩 항해를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그는 어느 날 ‘파트리샤’와 닮은 ‘클라라’와 그녀의 동생 ‘솔’을 만난다.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긴 항해가 시작된다. 애초에 아이들의 꾐에 넘어가 가까운 곳에서 수영을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올 생각은 뜻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표류 후, 사흘이 흐른 뒤부터 시작된 항해일지는 홀로 구조된 로익이 병상에서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여행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나‘를 통해서 보는 그들의 ‘여행’은 몇 개월인지 몇 년인지조차 알 수 없다. 게다가 구조된 후의 상황은 소설속의 ‘나’를 정신병이나 착란증세로 보는 암시가 있다.(너무 자의적 해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혼자 항해를 하고 클라라와 솔을 창조해서 기억한다는 뜻일까? 항해일지의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삶과 행복, 그리고 내 주변과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클라라와 로익이 끊임없이 나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결정한단다. 매순간 조금씩, 아주 작고 무수한 붓질을 통해…….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수년 동안 무수히 활을 움직여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 수없이 축적된 결정들과 대수롭지 않은 행위들이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법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가벼운 것들이 핵심이 되는 골조를 구성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과 고통은 누가 준비하죠?”

“조용한 밤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릴 거야. 그들의 작고 빠른 움직임은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단다. 나는 그것을 ‘나비들의 음모’라고 부르지. “


제목 “나비들의 음모”는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은 중심에 내가 있고 나의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위에 3인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그 대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태풍과 폭풍, 소나기 등이 그들에게 시련을 더하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욕심이 가져오는 관계의 파괴. 그리고 자폐아 솔이 상어에 쫒기다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정상아’로 변하는, 외부의 충격이 가져오는 치유의 과정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참 아이러니 하다.


바다와 같은 세계와 그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개인을 극단적인 축소의 상황이 이야기하는 소설은 가을밤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만하다. 물론 페이지를 넘나드는 호기심과 재미는 없다해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구판절판



유럽 북구의 자작나무 숲이 하얗게 펼쳐진 곳. 세계에서 제일 큰 이동전화 제조회사인 노키아가 있고 지금 국내 껌시장을 잠식한 ‘자일리톨’의 원조. 사우나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 눈에 넣어도 좋을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닮은 유리병과 꽃병, 컵들은 세계로 퍼져 있다.

핀란드. 그곳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로 인식되는가. 아마 대부분은 그곳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세계학력평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매년 보도되면 교육전문가와 학부모, 기자들이 그 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련 다큐를 통해서 본 그 곳의 문화는 경쟁을 성장 동력으로 삼지 않는다. 본인이 선택하는 자유로운 일과, 성적표엔 등차가 없고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따로 교육이 일상화 되어 있어서 뒤처진(사실 그런 의식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전투적 경쟁과 살인적인 학원 스케줄의 학생들의 처지와 비교되어 몹시 우울했던 적이 있다.

교육 외에 핀란드의 핵심어는 바로 ‘디자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알토를 배출한 곳. 제일의 핸드폰 회사인 노키아는 그들의 디자인으로 커왔다. 그들의 디자인은 우리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옷이 아니라 디자인을 입고 있다. 자동차, 핸드폰, 엠피쓰리, 게임기와 티브이, 오디오, 카메라등도 모두 디자인이 그 제품을 말한다. 디자인은 삶이며 제품은 삶의 반영이다.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하며 안락한지 그리고 쉬운지를 잘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라 할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이용한 순간부터 디자인은 시작되었다. 집을 짓고 불을 지피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위한 사냥을 위해 다듬는 도구 등이 모두 가장 효율적이며 편리함을 추구하는 노력이었다. 디자인은 눈요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나누는 행위였다.


거북이 등껍질이나 대나무 양피지에서 시작해 종이가 발명이 되고 먹을 갈아 붓으로 쓰거나 잉크에 담근 펜으로 쓰다가 연필이 나오고 볼펜이 발명되고 타자기가 워드프로세서로 결국 컴퓨터에 이어지는 것도 인간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관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발명된 것이고 이를 위한 도구와 기계화가 이루어 졌다.

역사와 함께하는 디자인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분야도 다양해 졌다. 산업공정에 포함되는 생산, 가공, 포장, 운반에 필요한 도구를 유용하게 만드는 산업디자인, 우리가 사는데 필수적인 집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간을 디자인 하는 건축설계, 도시의 발달에 필수적인 도로, 항만,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의 배치와 연결, 통신과 물류에 대한 길을 생각하는 도시설계등도 다 ‘디자인’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자인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인간과 자연’이다. 인간과 활동,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 이러한 것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또한 디자인이다.


우리가 핀란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그것이다. 값비싼 핸드폰이나 자동차의 겉모양, 장착된 신기술의 조합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어우러질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인 광장, 공원 등의 ‘공공디자인’과 높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민원인들을 주눅 들게 하는 우리의 관공서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변환에 대한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일례로, 그들은 공원의 작은 벤치하나를 디자인하는 데에도 오랜 기간을 걸쳐 관찰하고 정리하고 벤치샘플을 현장에 가져다 놓고 또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실행 자료로 만든다. 이후에 대중의 반응을 본 결과를 반영해 채택한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설계부터 시행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것과 너무 큰 거리가 있다.

또 하나는 ‘자연스러움’이다. 암벽을 그대로 드러내고 경사를 계단과 조형물로 살린 공원과 놀이터의 모습은 놀이기구가 들어차있고 바닥에 고무판이 깔려서 정형화된 우리의 놀이터와 잔디와 가로수가 일률적으로 심어져 있는 공원과 너무나 큰 대비를 이룬다. ‘이게 더 깔끔해’ 라고 할런지 모르지만 역사와 자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후대에 그 장소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삽으로 파고 포클레인으로 밀고 퍼 올리고 ‘공구리’를 들이 부어 전국의 도로와 하천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고 있다. 강행. 앞으로 무조건 전진하라. 사람은 죽던 말든. 경부고속도로를 그 단기간에 완성하면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을 누군가는 기억한다. 이런 나라에서 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다못해 시골길도 온통 포장도로로 덮여가고 일률적인 ‘슬래브 집’들이 동네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박스 안에 박스로 면적이 같으면 똑같은 공간의 조합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 그것의 거품처럼 오르는 가격에만 관심을 갖는 삶에 인간과 자연의 빛이 들 날은 언제쯤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