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구판절판



유럽 북구의 자작나무 숲이 하얗게 펼쳐진 곳. 세계에서 제일 큰 이동전화 제조회사인 노키아가 있고 지금 국내 껌시장을 잠식한 ‘자일리톨’의 원조. 사우나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 눈에 넣어도 좋을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닮은 유리병과 꽃병, 컵들은 세계로 퍼져 있다.

핀란드. 그곳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로 인식되는가. 아마 대부분은 그곳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세계학력평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매년 보도되면 교육전문가와 학부모, 기자들이 그 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련 다큐를 통해서 본 그 곳의 문화는 경쟁을 성장 동력으로 삼지 않는다. 본인이 선택하는 자유로운 일과, 성적표엔 등차가 없고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따로 교육이 일상화 되어 있어서 뒤처진(사실 그런 의식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전투적 경쟁과 살인적인 학원 스케줄의 학생들의 처지와 비교되어 몹시 우울했던 적이 있다.

교육 외에 핀란드의 핵심어는 바로 ‘디자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알토를 배출한 곳. 제일의 핸드폰 회사인 노키아는 그들의 디자인으로 커왔다. 그들의 디자인은 우리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옷이 아니라 디자인을 입고 있다. 자동차, 핸드폰, 엠피쓰리, 게임기와 티브이, 오디오, 카메라등도 모두 디자인이 그 제품을 말한다. 디자인은 삶이며 제품은 삶의 반영이다.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하며 안락한지 그리고 쉬운지를 잘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라 할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이용한 순간부터 디자인은 시작되었다. 집을 짓고 불을 지피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위한 사냥을 위해 다듬는 도구 등이 모두 가장 효율적이며 편리함을 추구하는 노력이었다. 디자인은 눈요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나누는 행위였다.


거북이 등껍질이나 대나무 양피지에서 시작해 종이가 발명이 되고 먹을 갈아 붓으로 쓰거나 잉크에 담근 펜으로 쓰다가 연필이 나오고 볼펜이 발명되고 타자기가 워드프로세서로 결국 컴퓨터에 이어지는 것도 인간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관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발명된 것이고 이를 위한 도구와 기계화가 이루어 졌다.

역사와 함께하는 디자인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분야도 다양해 졌다. 산업공정에 포함되는 생산, 가공, 포장, 운반에 필요한 도구를 유용하게 만드는 산업디자인, 우리가 사는데 필수적인 집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간을 디자인 하는 건축설계, 도시의 발달에 필수적인 도로, 항만,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의 배치와 연결, 통신과 물류에 대한 길을 생각하는 도시설계등도 다 ‘디자인’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자인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인간과 자연’이다. 인간과 활동,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 이러한 것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또한 디자인이다.


우리가 핀란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그것이다. 값비싼 핸드폰이나 자동차의 겉모양, 장착된 신기술의 조합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어우러질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인 광장, 공원 등의 ‘공공디자인’과 높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민원인들을 주눅 들게 하는 우리의 관공서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변환에 대한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일례로, 그들은 공원의 작은 벤치하나를 디자인하는 데에도 오랜 기간을 걸쳐 관찰하고 정리하고 벤치샘플을 현장에 가져다 놓고 또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실행 자료로 만든다. 이후에 대중의 반응을 본 결과를 반영해 채택한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설계부터 시행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것과 너무 큰 거리가 있다.

또 하나는 ‘자연스러움’이다. 암벽을 그대로 드러내고 경사를 계단과 조형물로 살린 공원과 놀이터의 모습은 놀이기구가 들어차있고 바닥에 고무판이 깔려서 정형화된 우리의 놀이터와 잔디와 가로수가 일률적으로 심어져 있는 공원과 너무나 큰 대비를 이룬다. ‘이게 더 깔끔해’ 라고 할런지 모르지만 역사와 자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후대에 그 장소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삽으로 파고 포클레인으로 밀고 퍼 올리고 ‘공구리’를 들이 부어 전국의 도로와 하천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고 있다. 강행. 앞으로 무조건 전진하라. 사람은 죽던 말든. 경부고속도로를 그 단기간에 완성하면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을 누군가는 기억한다. 이런 나라에서 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다못해 시골길도 온통 포장도로로 덮여가고 일률적인 ‘슬래브 집’들이 동네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박스 안에 박스로 면적이 같으면 똑같은 공간의 조합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 그것의 거품처럼 오르는 가격에만 관심을 갖는 삶에 인간과 자연의 빛이 들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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