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지혜정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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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걱서걱 거칠고 투박한듯한 건조한 문체. 짧디 짧은 엽서 같은 이야기.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진솔하면서도 묵직하다. 아무튼, 삶은 그러니까 아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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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전기 작가로 더 유명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문학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문학동네 버전의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를 통해서이다. 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했고, 이 작가의 이름을 순식간에 ‘구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다 읽어볼 것’이라는 문장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이라는 <연민 Ungeduld des Herzens (1939)>을 읽게 되었는데…. 탄성이 나올 뿐이다. 이 작품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와 친구였다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인간의 심리 분석에 이토록 탁월할 수가 있을까 싶어진다.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처럼 비교적 짧은 분량의 작품에서도 내기에 집착하는 사람, 애정에 집착하는 사람의 심리를 놀랍도록 묘사했던 그는 장편 <연민>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섬세하게 인간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현미경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빌어먹을 연민은 양면이 모두 날카로운 칼입니다. 그걸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연민에서 손을, 아니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만 환자를 위한 위로이고 치료제이며 약이 되지요. 그러나 이걸 정확하게 조제할 줄 모르고, 적당한 시기에 멈출 줄 모르면 독약이 되고 맙니다. 처음에 한두 번 맞으면 통증을 진정시키고 마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들죠. 그러나 육체나 영혼이나 우리의 기관은 불행하게도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이 더 많은 양의 모르핀을 원하듯 감정도 점점 더 많은 연민을 원하게 되고 결국에는 당신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우리는 연민을 제대로 관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보다도 더 나쁜 해를 끼치게 됩니다.” (222~223쪽)

이 책의 표지에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연민’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 문장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충 어떤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내용이 펼쳐질 수도 있고 혹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빼곡한 글씨로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 작품은 지루할 틈이 없이 숨막히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을 읽기 전 심농의 추리 소설을 읽었는데, 그 작품보다(무려 추리 소설보다!) <연민>은 훨씬 더 긴박감이 느껴지고 흥미진진했다. 400페이지의 책을 단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뒤에 펼쳐질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 동정심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은 꼭 갖추고 있어야만 할, 굉장히 좋은 감정, 종종 한 사람의 ‘인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선 문장처럼 ‘연민’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 작품은 처절하게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정을 베풀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훌륭한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감동받고 감탄하고 행복해지는 인간. 그 연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을 보며 마치 ‘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 인간. 타인의 눈에 비칠 자신의 ‘좋은 모습’을 상상하며 허영에 차는 인간.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어지는 인간, 그러면서도 우유부단함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는 인간. 이런 인간의 모습이 <연민>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시작한 ‘감정’에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하는 묵직한 질문도 남는다. 연민이든 동정이든 사랑이든 어떤 감정의 신호를 또 다른 타인을 향해 보냈다면, 그 감정은 이제 순순히 ‘나만의 것’으로 남지 않는다. 이럴 경우 어디까지 그 감정의 신호를 보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주인공의 행동에 ‘이제 그만!’하고 소리를 치다가도 ‘나라면?’하는 생각을 해보면 나 역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연민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 동정을 베푼다는 것…. 시작은 쉽지만 끝까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살하지 않고 더 많은 장편을 남겼다면 어땠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사람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츠바이크의 작품은 엄청나게 흥미진진하다.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악이나 야만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우유부단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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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에디터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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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 이 책 저책 둘러보다 습관처럼 러시아 문학서가 앞에 섰다. 그 가운데서도 또 습관처럼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 꽂혀 있는 곳 앞에서 눈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있는 체호프의 단편들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뭔가 또 새로운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늘 그 앞을 기웃거린다.

‘응? 이 책은 뭐지?’ 어떤 책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뽑아 들어보니 빨간 양장본에 안톤 체호프의 사인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도서관 책은 겉표지는 떼어내기 때문에). 표지를 넘기고 안을 보니 책 제목은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이란다. 어쩐지 내가 아는 체호프의 작품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부제는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체호프와 에로티시즘이라?

목차를 훑어보니 ‘사랑에 대하여’ ‘개를 다니고 다니는 부인’이 수록되어 있다. 나머지 제목들은 조금 생소했다. 하지만 체호프가 워낙 많은 단편을 남긴 작가라 내가 읽었어도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으리라 싶어진다. 첫 번째 단편을 서서 읽어보니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는 작품이었다. 이미 읽은 작품이 많으면 책을 빌려 집에 갔을 때 좀 낭패이므로 도서관에서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이 책 한 권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제외하고(이 작품은 얼마 전에 또 읽었던 지라 그날은 읽지 않았다) ‘사랑에 대하여’까지 포함해서 쭉 읽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행스러우면서도 기쁘게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사랑에 대하여’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 초역된 작품들이었다.

‘에로티시즘 단편선’이라고 붙이기에는 살짝 과한 감이 좀 있다. 그러나 이 책 담긴 거의 모든 단편이 남녀 간의 사랑이나 결혼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욕망이나 배신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이라는 제목은 체호프와는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지만 이 안에 담긴 작품들과는 꽤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작품들이 하나같이 인상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작품인 ‘바다에서 - 한 선원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대개 추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따금 선원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추악하고, 심지어 가장 추잡한 짐승보다도 더 추악해진다. 짐승은 본능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인생을 잘 모르는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원들에겐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할 이유가 많은 것 같다. 언제고 돛대에서 떨어져 파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고, 물속에 빠지거나 거꾸로 떨어질 때만 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가 필요하겠는가?' (9~10쪽) 위와 같은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담백하면서도 인생의 쓸쓸함과 우수, 비애를 세밀하게 표현한 그 문장에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젊은 선원이 타고 있는 배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그가 타고 있는 배에는 ‘신혼부부의 방’이라고 부르는 선실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 방은 (당연히 선실 안에 있는 사람은 모르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 2개 있다. 선원들은 이 선실에 남녀 승객이 탔을 때 심심풀이(?)로 몰래 훔쳐보고는 했다. 이 날은 젊은 선원이 구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차례였다. 그가 이미 갑판 위에서 보았던 목사와 그의 젊은 아내가 이 방에 머물게 되었다. 젊은 선원은 구멍을 통해 이들을 보면서 뜻밖에도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된다.

이 짧은 단편 하나에서도 체호프는 여러 가지를 말한다.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어떤 사람들(목사와 그의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는(훔쳐보거나 혹은 관찰하는) 젊은 선원. 그 선원은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여기는 ‘선원’ 무리 중 하나다. 자기 자신이 삶의 가장 비루한 지점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구멍’을 통해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행위가 추잡한 짓임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하는 선원 무리의 분위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거부할 의지조차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그 구멍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본 타인의 삶이란 도무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어쩌면 그들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더 비속하고 저급할지도 모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니면 겉보기와는 달리 모두가 마찬가지로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삶이라고….

‘한 선원의 이야기’의 화자는 젊은 선원이다. 그러나 선원의 눈을 통해 보이는 여자의 삶(목사의 아내의 삶)도 중요하게 그려진다.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에는 이렇게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위와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여자, 남편을 속이면서 욕망의 충실한 삶을 사는 여자, 돈이 많거나 신분이 높은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여자 등등. 그녀들의 삶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느 순간은 조용히 웃음 짓게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쓸쓸하면서도 씁쓸하고, 때로는 서글프면서도 애잔한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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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역사의 힘 -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
하워드 진 지음, 이재원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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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그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데이비드 보위를 비롯해 미셸 투르니에, 그리고 신영복 선생까지... 올해도 나라 안팎으로 더없이 아까운 죽음 소식이 들려온다. 죽음에 경중이 있겠냐만은, 몇 해 전 하워드 진 그가 죽었을 때처럼 가슴 한 구석이 뻥 뚤린듯한 기분을 느낀 적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게 어느덧 몇 해 전이라니, 이제는 그 사실이 더 놀랍다.  1월 27일 오늘, 바로 그가 죽은지 어느덧 여섯 해가 지났다. 그를 기리며 그의 책을 한 번 더 훑어본다.

언제부터인지 하워드 진의 글을 읽는 일은 비관주의, 냉소, 허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가 되었다. 요즘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희망이라는 게 존재할까 싶다. 그저 이런저런 생각으로 참 허무하다. 이 땅에서 과연 ‘진보’한다는 의미가 무얼까 그 어느 때보다 회의감이 밀려온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은 저마다 제 살기 바쁠 뿐인데, 이른바 ‘먹고사니즘’ 때문에 사회가 정말 ‘진보’하는 일에 관심조차 없을 텐데…. 이 나라가 과연 바뀌는 날이 있을까?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질 리는 없을 텐데 등등.

이 런 생각에 빠져 있는 요즈음 하워드 진의 <역사의 힘>이라는 책을 다시 읽는다. 어떻게 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시대를 살아오고, 지켜보면서 단 한 번도 지치지 않았으며 냉소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관주의에 자신을 내몰지도 않았을까? 과연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토록 사람을, ‘민중의 힘’을 믿을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하워드 진의 확신, 믿음, 희망 근거를 좇느라 내 눈과 마음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은 바로 ‘역사’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았다. 그는 ‘나는 비관주의를 이해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증거로 따져 봐야 할 문제다. 강력한 증거일 필요는 없다.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면 그만이다. 희망을 위해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비록 모든 경우마다 “역사는… 보여 준다”, “역사는 … 증명한다” 같이 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31쪽, ‘비관주의에 반대한다’ 중)’라며 인종차별, 성차별, 노동자 탄압, 소수자들에 대한 탄압, 자본에 의한 억압, 끊임없는 전쟁 등등 이 세계의 어두운 그늘은 항상 어느 순간 억압받았던 민중들의 폭발, 즉 혁명을 통해 변화해왔으며 그것이 곧 ‘진보의 길’로 나아갔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비관주의에 빠질만한 이들에게 역사 속의 변화를 희망의 근거로 들며 권력에 지배당하지 않고 늘 깨어있으라고 촉구한다. 그 어떤 권력도 민중들의 복종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에 ‘파업, 보이콧, 복종하지 않기, 복잡한 사회구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능력 등 이 모든 행동은 여전히 국가나 기업의 무시무시한 권력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임을 강조하며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기를, 필요할 때는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함을 주장한다.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주장들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설득력이 매우 약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그 자신이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노동 현장의 쓰라림을 맛보았고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었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아픔을 함께하며 평생 정의를 위한 투쟁을 멈춘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가슴으로 써내려간 글들은 그 어떤 이의 말보다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이 책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주제로 하워드 진이 써내려간 에세이 묶음이다. 비록 오래 전 글일지라도 현재에도 여전히 그의 주장은 유효하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쉽고 소박하지만 그 어떤 글보다 뜨겁고 열정적이다. 때문에 지치지 않는 희망의 열정가이자 혁명가인 하워드 진의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는 어떻게 그토록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 변함없는 열정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실천가’의 모습에 울컥울컥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하워드 진은 여러 의미로 존경스럽다. 그처럼 살다가야 인생을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오늘은 어쩐지 그가 문득 더욱 그리워진다.


    나는 수업 중에 정치적 관점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전쟁과 군사주의를 혐오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에 분노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와 전 세계 부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분배를 믿는 내 관점을 말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데 ‘객관적’인 척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153쪽 ‘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중)

    우리는 정치적으로 되느냐, 아니면 비정치적으로 되느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지배 세력들이 규정한 우선순위와 목적의 틀 내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존 질서의 정치를 좇을 것인지, 아니면 현재 우리 사회가 부정하는 평화, 평등, 정의라는 인간적 가치를 활성화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213쪽, ‘비밀주의, 역사 기록, 그리고 공익’ 중)

    대학은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선언해야 한다. 대학의 이해관계는 전쟁, 빈곤, 인종과 민족 차별,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통제를 철폐하는 것이고, 협력 정신과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이 특정 민족, 정당, 종교, 정치적 교의를 대변하는 이해관계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정부, 군대, 기업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 자주 봉사해 왔고, 더 크고 우월한 가치들에 대한 지지는 아직 보류하고 있다. (230쪽, ‘학문의 효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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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12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이제 1부 읽었는데
벌써 별 5개 누르고 싶어집니다
첫 페이지 ˝사람들의 힘을 북돋아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결국 내가 선택된 것이다.˝부터 행동하는 멋진 지성이란게 느껴져서 그 멋짐에 감동해 버렸어요
끝까지 꼭꼭 씹어 잘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잠자냥 2023-03-12 23:01   좋아요 1 | URL
아아, 이 책 하워드 진….. ㅎㅎ심장 뛰게 만드는 사람이죠. 즐겁게 읽으세요!
 
이탈리아 기행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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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괴테를 좋아하지 않았는지(아니 그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지), 이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문인이라고 하기엔 살아 생전 너무 많은 권력과 명성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살아있을 때 이미 많은 인정을 받고 너무나도 유명했기 때문에-심지어 오늘날로 치면 정치에도 몸을 담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이미 가진 자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런 그의 세계관에 그다지 공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괴테 자신도 그런 유명세에 지쳐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실행으로 옮겼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독일적인 것과는 정 반대되는 이탈리아에서 그는 제2의 탄생,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이피게니에>를 고쳐 쓰거나 <에그몬트>를 탈고하고 <파우스트>를 다시 쓰게 된다. 괴테의 눈으로 본 그즈음 이탈리아 풍경과 유명한 예술가,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일, 괴테가 그린 스케치 등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탈리아에 그처럼 오래 머물면서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테에 대한 호감이나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이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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