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재는 ‘영원한 사랑’의 신화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영원한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그래서 더욱 크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평생 너만을’ 혹은 ‘영원히 너만을’이라는 말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런
말을 상대방에게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때문에 허황된 약속이라는 믿음이 그 말을 하는 이에게도,
그런 말을 듣는 이에게도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주 드물게도 가끔 그런 사랑, 그런 연인을 만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태주의 철학자이자 언론인,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꼽혔던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이 그렇다.
2007년 9월 고르와 도린은 프랑스 동북부 자신들의 저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르는 84살, 도린은 83살이었다. 고르는
도린 곁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한다. 동반 자살이었다. 그들이 남긴 쪽지에는 두 사람을 화장한 재를 그들이 가꾼 집 마당에
뿌려달라는 유언이 담겨있었다.
도린과 고르는 1947년 스위스 로잔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2년 뒤인
1949년 부부가 되었다. 60년 동안 서로 사랑했고, 58년간 부부로 지냈다. 그 세월 중 절반인 30년 가까이 도린은 불치의
병과 싸웠다. 아내가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불치의 병에 걸린 것을 알자 앙드레 고르는 1983년 이후 모든 사회 활동을 접고 아내를
간병해왔다. 20년을 넘도록 그렇게 지내다 결국 한날, 한시에 그들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쟤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89쪽
<D에게 보낸
편지>는 앙드레 고르가 그의 아내 도린에게 보낸 마지막 연서다. 그들이 동반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쓰였다. 사는
동안 수많은 글을 써온 고르는 어느 날 문득 아내에 관한 글은 쓴 적이 거의 없음을 깨닫는다. 그나마 아내의 이야기를 썼던
<배반자>에서는 아내의 본질을 왜곡한 것 같아 괴로웠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만남부터, 결혼, 그리고 삶의 전반을
추억하는 편지를 아내에게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 부분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국 함께 생을 등지게 된다.
채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이 짧은 연서를 보면서 수도 없이
울컥하게 된다. 아마도 이 삶의, 이 사랑의 진정성이 글자 하나하나에 빼곡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리라. 흔히 우리는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그 ‘짝’이 진정한 자기 ‘짝’인지 어떤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앙드레 고르와
도린을 보면 그들은 틀림없이 세상에서 둘도 없을 오로지 자기만의 짝을 만났던, 그래서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이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렬한 연인으로, 각자의 생각과 사상을 그 누구보다 지지해준 평생의 친구로, 고난의 순간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한 동반자로, ‘떼려야 땔 수 없는 사이’로 평생을 함께한 고르와 도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박적일 만큼
세심’(47쪽)하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진정한 소울메이트였던 그들의 사랑을 보고 있자면 절로 경외감이 든다.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던 그들의 바람처럼 지금 고르와 도린은 또 함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얇은 책이 주는 감동의 무게는 엄청나다. ‘도린과 고르’- 그들처럼 사랑하다 죽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걸 더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