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이 책을 읽었다. 주석을 제외하고도 장장 700쪽이 넘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 엄청난, 대단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리는 것은 어쩐지 저자에 대한 또는 루스 베네딕트나 마거릿 미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로이스 배너는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를 700쪽 종이 위에 생생하게 살려냈다. 역사와 젠더학을 가르친다는 로이스 배너, 그녀는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의 초상을 그리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단 한 번도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을 텐데 어쩌면 이토록 생생하게 루스와 마거릿을 이 순간 어디에선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려놨을까? 마치,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 없으면서도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듯이 말이다.
대학 때 처음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었다. 문화인류학에 잠시 관심이 있던 때였다. 어떻게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이런 책을 쓸 수가 있지? 놀라웠다. 물론 나중에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지닌 한계도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이 인류학자의 이름은 선명하게 내 뇌리에 남았다. 그 뒤로 몇 해가 지났을까. <사모아의 청소년>이라는 한길사에서 출판된 책을 ‘갖고’ 싶어졌다. ‘읽고’ 싶기 보다는 ‘갖고 싶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거릿 미드를 잘 몰랐으면서도 그 책은 어쩐지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사모아의 청소년>은 번번이 사기 직전에 포기하게 되는(비싼 책값 영향이 컸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와는 인연이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참에 벌써 2년 전, 2016년 여름쯤 이 책이 출간되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이라는 무척 매혹적인 이름으로 말이다. 나오자마자 구매하고는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진도가 팍팍 나가는 책은 아니었다. 특히 맨 처음부터 루스와 마거릿의 조상 이야기가 나와서 곤혹스러웠다. 조금 생뚱맞기도 하고,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1부인 ‘조상’ 이 장은 읽는 동안 이른바 ‘현타’가 오기도 했다. 대체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 난 루스와 미드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고! 얼른 그들을 내 앞에 내놓으란 말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그 고비를 잘 넘기면 드디어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루스와 미드의 유년기 시절, 그 둘이 저마다 대학에 진학해서 이른바 ‘동성 간의 스매시’ ‘걸크러시’ 문화에 빠지고 드디어 둘이 만나게 되는 순간까지-. 숨 가쁘게 읽어가다 보니, 아, 그 ‘조상’들의 이야기가 이래서 필요했던 거구나, 그들의 유년시절, 그들의 정체성과 성격을 형성하고, 그것들이 루스와 미드의 학문적 관심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이런 영향을 끼쳤구나, 끄덕끄덕하게 된다. 때문에 저자의 이런 엄청난 노력, 그러니까 도서관, 교회, 학회 등등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베네딕트 관련 문서를 발굴하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루스와 미드의 편지, 서류철을 총망라해서 루스와 미드, 두 사람의 또는 둘만의 ‘전기’를 새롭게 써낸 로이스 배너의 값진 노력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게 된다.
사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마거릿 미드보다는 루스 베네딕트 쪽이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텐데, 이토록 고혹적인 미모를 지닌 사람이 20세기 초반, 그 완강한, 남성들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문화인류학자로 살아남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시절,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동성 연인에게 애정과 사랑을 비롯하여 학문적 지지를 굳건히 보냈다니, 그녀의 이 수줍은 듯한, 조용한 외모 안에는 어떤 열정이 숨어 있던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시작 부분에는 루스와 미드의 사진이 몇 장 실려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생각보다 키가 매우 큰, 건장한 체격을 지녔다. 그에 비해 마거릿 미드는 키가 작고 왜소한 소녀 같은 모습이다. 이런 외형적인 ‘다름’은 성격적인 면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루스 베네딕트는 그 외모처럼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런 빼어난 미모를 지녔으면서도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미드가 쓴 베네딕트의 전기 <루스 베네딕트>를 보면 거의 며칠 동안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미드는 이렇게 썼다.
소녀 시절에 그리고 그 후에 하나의 전설이 되었던 그녀의 미모는 그 당시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중략) 여러 주가 지나도록 계속 엉성한 모자를 쓰고 칙칙한 색깔의 같은 옷을 입었다. “남자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잖아. 여자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돼?”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거릿 미드, <루스 베네딕트>, 연암서가, 25쪽)
그에 비해 미드는 언제나 발랄한 소녀 같았고, 여성적이면서도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으며 자신을 꾸미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미드는 언제나 ‘사랑에 빠지는’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1922년, 뉴욕 바너드대에서 개설한 인류학 입문과정에서 처음 그 둘이 만나 거의 단번에 서로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지고 마침내 만난 지 2년이 흐른 1924년, 둘은 연인 사이가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미드는 언제나 남성을 선택했고, 그중 몇몇과는 결혼을 하기도 한다. 물론 루스 베네딕트 또한 스탠리 베네딕트, 즉 남편이 있었다. 남자뿐만이 아니라 미드는 동성 애인을 여럿 두기도 했다. 베네딕트도 이런 미드 때문에 질투에 시달리기도 하고 고통 받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관계가 되고, 그 자유 안에서 둘의 학문적 교류는 더욱 크게 발전한다.
루스와 마거릿 모두 자유연애를 신봉했다. 이 원칙은 성적 실험에 환호했고, 질투를 배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의 신성함도 믿었고, 경력에 오점이 생길 것을 두려워했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났다. 그들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여성이 완성된다는 신념도 공유했다. 루스는 아이를 갖는 데 실패했다. 그녀는 마거릿을 자기 애인으로 여겼지만 그녀를 딸이자 총명해서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도 생각했다. 실제로 루스는 마거릿의 연애 행각에 화가 난 만큼이나 그녀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34쪽)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는 1부 ‘조상’ 부분인데, 왜 그런 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지는 저자 로이스 배너의 주된 집필 목표를 살펴봐야 한다. 그녀는 이 책을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이 루스와 미드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거쳤던 심리적 행로 또한 포함한다. 때문에 그들의 성정체성에 영향을 끼쳤을 법한 사람이나 환경 등은 빠짐없이 기술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상을 비롯해 그 조상에서 뻗어 나온 두 사람의 가정환경 묘사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년 시절부터 자라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연애 관계를 맺거나 결혼했던 남성, 여성 등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렇게 빈틈없이 세밀하게 엮은 자료들을 통해 두 사람 인생의 상호 연관성은 물론, 루스와 미드 두 사람이 사랑과 우정, 욕망, 헌신, 불화의 범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넓혀갔는지 알게 된다.
이 책을 기준으로 내가 판단하건데 루스 베네딕트는 동성애자에 가까웠다면 미드는 양성애자였지만 그 시절 문화가 차츰 동성애자에게 배타적으로 변해가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결혼이라는 우산 아래, 이성애자의 가면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루스 베네딕트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성과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미드의 심리를 이해할 만도 하다. 실제로 미드의 전 남편 중 한 사람은 루스와 미드의 관계를 질투하다 못해, 또한 미드로부터 이혼당한 뒤 복수심에 불타올라 미드의 학문적 성과를 하나하나 반박하거나 또는 미드가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녀는 공포를 성 정체성 문제와 연결했다. “온전하게 성별에 소속되지 않는 사람은 무국적자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다수의 직업 분야에서 성공한 여자들은 남자 같고, 그래서 동성애자로 취급되는 사태에 직면한다고 미드는 말했다. (중략) 미드는 자신의 당시 성향과 시대 풍조 속에서 인생의 주된 동반자로 리오 포천을 선택했다. (439쪽)
이 책에는 이렇게 미드의 못난 전 남편(들)을 비롯해 에드워드 사피어처럼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미드가 자신의 구애를 잘 받아들이지 않자 그녀를 학문적으로 공격하거나 그녀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참으로 찌질한 남성 학자들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인다. 미드와 루스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학문적 열정은 그 시절 남성들이 지배하던 학계에 든 반기로서의 의미도 크다. 실제로 해가 갈수록 두 사람의 연구 성과가 두드러지고 마침내 루스 베네딕트가 1930년대에 당대 최고의 인류학자이자 루스와 미드의 스승이기도 했던 프란츠 보애스를 대신해 인류학과를 이끌 때에도 (남성) 교수 전용 식당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이 책은 두 사람의 흥미진진한 인생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이 여성 학자로서 어떤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고, 결국에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 또한 상세히 그려나간다.
1948년 미드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루스 베네딕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루스가 죽자 미드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드는 베네딕트를 몹시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자, 연인, 언니, 어머니, 선배였던 그녀를 그리워했다. 베네딕트가 없었다면 미드는 결코 그렇게 찬란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미드에게 자신의 통찰력을 확장해보라고 격려했다. 미드는 거기서 영감을 얻었고, 베네딕트의 애정과 지원 속에서 그녀를 뛰어넘는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705쪽) 루스의 죽음 뒤 30년이 지난 1978년 미드는 세상을 떠났다. 77세의 세계적 유명 인사로서였다. 미드는 그렇게 베네딕트의 꿈을 실현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많은 이들의 사랑 또는 연애는 서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북돋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서로 구속하고 통제하고 갉아먹는 관계가 되기 싶다. 루스와 미드 또한 인간이기에 아무런 고통 없이 서로에게 자유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고통 끝에 서로 존중하고 ‘자유’라는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두 사람을 문화인류학계 거장으로 우뚝 서는 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 끝없는 지지를 보며 감동 속에 책을 덮는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모두가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집’이라고 베네딕트가 쓰자 미드는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내 삶의 중심은 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에요. 내 존재의 핵심은 당신의 완벽함을 중심으로 마감돼요.” (4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