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안 읽었다’는 글을 써볼까 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얼마 전 지인에게 내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안 읽었다고 하니 그 친구를 비롯하여 다들 놀라더라. 나 같은 독서광(?)이! <백년의 고독>을 안 읽었다니! 그런 분위기였달까. 그래서 난 의외로 그런 책이 많다고 고백했을 뿐이고. 그런 책 리스트를 한 번 뽑아보았다. 사실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읽었을 법한 책들 가운데 안 읽은 책이 제법 많다. 그리고 나름 이유도 있다....


1. 내겐 너무 극복 불가능한 의식의 흐름
독서광이라면 당근 읽었을 법한 책으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작품은 늘 꼽힌다. 그러나 나는 제임스 조이스 작품 읽은 게 <더블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없다. 조이스의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읽지 않았다. 그나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제목 때문에 은근 끌려(지가 젊은 예술가라 생각한 어처구니없던 시절 끌렸음. 푸하하 ㅠ) 집어 들었으나(집에 책도 있음), 도저히 몇 장 못 넘기고 살포시 내려두었다. 그나마 버지니아 울프는 좀 낫다. <자기만의 방>이랑 <세월>은 읽었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은 안 읽었다. 이 두 사람의 특징은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의 선두주자(응?)로 꼽힌다는 점. 난 이 기법이 정말 싫다. 재미없다. 난해해. <세월>과 <자기만의 방>도 딱히 좋지 않았다.




















2. 중남미 환상 소설
문제의 <백년의 고독>이 여기에 속한다. 나는 판타지나 SF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유명한 작품이라면 좀 읽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거짓말을 대놓고 하는 듯해서 손이 안 간다. 중남미 환상 소설, 마술적 리얼리즘. 이런 문장 들어간 책은 그래서 덩달아 잘 안 읽는다. 마르케스 작품은 그런 이유로 외면해왔다. 그나마 읽은 건 이 사람이 다 늙어서 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하나 딸랑인데 별로 좋지 않았기에 더 기피하게 된 작가인 듯. 이 부류엔 보르헤스도 들어간다. 책 좀 읽네 하는 사람들 중 보르헤스 책 안 읽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난 보르헤스 작품 하나도 안 읽었다. 그다지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한번쯤은 그래도 읽어볼까 싶어서 사두었지만, 아직도 손대지 않고 있다. <백년의 고독>도 마찬가지다. 책은 서가에 살포시 꽂혀 있는데.....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한번 도전해볼까 싶지만,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다.




















3. 영국 빅토리아 시대 문학
난 이 시기가 매력적이지 않다. 일단 여자들이 주렁주렁 치마 입고 우아하게 차 마시며 가식 떠는 모습을 보는 게 그다지 흥미 없다. 아마도 이런 시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마다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다고 여긴 적이 많기에 문학작품도 그러리라는 편견이 생긴 듯하다. 그 좋다는 제인 오스틴 작품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엠마> 등등 하나도 읽은 게 없다. 앞으로도 과연 읽게 될지; 같은 이유로 브론테 자매의 작품도 덩달아 안 읽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안 읽었음. 그나마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재미있게 읽었다.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카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의 찰스 디킨스 작품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지만  디킨스의 작품은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하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크다.


































4. (영화로 너무 많이 봐서) 이미 내용을 다 아는 작품
그렇다. 디킨스의 책은 그렇기에 잘 안 읽게 된다. <위대한 유산>을 비롯하여 <올리버 트위스트>도 그렇고 <크리스마스 캐럴>이야 말해 무엇 할까! 영화로 너무 많이 봤기에 책을 읽을 감흥이 떨어진다. 이미 영화로 매년 스포일러 당했어! 게다가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작품은 어릴 때 동화로 많이 읽었기에 성인이 되어 다시 또 읽게 되지는 않는 듯하다(생각해 보면 이런 작품도 꽤 많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그렇다.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이미 읽었지, 게다가 툭하면 텔레비전에서 영화로 나오지. ㅠ_ㅠ 도저히 다시 책으로 읽을 기분이 안 난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도 그런 축에 속한다. 나는 이 영화를 엄청 재미나게 봤기에 아직도 몇몇 장면은 기억이 난다. 책으로 읽어볼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살포시 내려놓기를 반복.



































5. 흑인이 주인공이거나 흑인이 쓴 문학 작품

이 분류만 보면 내가 인종차별주의자 같아 보인다. 그런 건 아니고;; 이런 장르(?)에도 크게 흥미가 없다. 그냥 내용이 뻔해 보인다. -_-;; 인종차별 속에서 핍박받는 이야기가 왠지 주된 내용일 거 같은 편견. 문학 작품만이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흑인이 주인공이거나 흑인으로서의 삶을 주된 내용으로 다룬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와 같은 작품 및 토니 모리슨의 작품도 하나도 안 읽었다. 그래도 요즘은 토니 모리슨 작품은 좀 읽어보고 싶어졌다. <빌러브드>부터 읽어 볼 생각.


















6. 제목을 하도 많이 봐서 책을 다 읽은 느낌이 드는 작품
이 부류에는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아들과 연인>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갖고 있던 소설 전집에 이 책들이 있었다. 난 그 전집을 이것저것 살펴보는 취미가 있었는데 어느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부터 야릇한 기운이 감돌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책은 왠지 내가 읽는다는 걸(심지어 제목이라도)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는 책이라고! 책 표지에 격정 로맨스가 어떻고 외설이 어떻고 이런 말이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간이 작아서 읽어볼 엄두는 안 났고 그저 책 표지만 날마다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내 언젠가 크면 꼭 이걸 읽으리... 하며... 그런데 그렇게 제목과 책 표지만 보다가 너무 질렸나보다. 크고 나니 더 이상 관심이 없어;;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 그러다 몇 해 전에 이 두 작품은 읽었다!!!




















7. 너무 너무 길어서 엄두가 나지 않네
대하장편소설 읽기 힘들다. 한국문학 중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가 여기에 속한다. <태백산맥>은 1권까지만 읽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이건 도서대출 시스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장편을 굳이 사서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대학 때 도서관에 가면 이 책들은 항상 대출 중이었다. 1권 읽었다 싶으면 2, 3권은 누가 가져갔고. 이런 시스템 속에서 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그럼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젠가 꼭 읽을 테야!!! (언제?).


































8. 그리고
성경


이렇게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결국 ‘편견’ 때문에 치우친 독서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좋은 독서를 하려면 저 편견을 넘어서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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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7-02-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구텐베르그가 인쇄기계를 발명해서 최초로 찍은 책, <성경>을 아직 안 읽어봤습죠. 누가 누굴 낳고, 누가 누굴 낳고.... 하루 온종일 낳고, 또 낳는 이야기만 몇 번 읽은 거 같네요. ㅋㅋㅋ

잠자냥 2017-02-15 14:09   좋아요 0 | URL
ㅋ 그러게요. 하루 온종일 낳고, 또 낳고 ㅋㅋㅋ

cyrus 2017-02-1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소개된 책들 중에 제가 안 읽은 게 아주 많아요. ^^

잠자냥 2017-02-15 14:41   좋아요 0 | URL
cyrus 님도 안 읽으신 책이 많다니 왠지 위안이 됩니다. ㅎㅎ

Falstaff 2017-02-17 0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말 나온 김에 이 책들에 관한 짧은 소감 한 마디씩만....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는 스무살 때 읽어봐서 지금 기억 안 나 다시 읽어보려 책 샀음. <율리시즈> 17편의 짧은 이야기와 1개의 희곡으로 생각하고 읽으니까 뭐 그 정도는 ㅎㅎㅎ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해골 흔들림. <댈러웨이...>도 중간중간 번역 되게 후짐. 그래도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음. 하여간 조이스와 울프보다 대한민국의 오정희가 의식의 흐름을 훨 잘 구사함.
중남미 환상문학: 폴스타프 왈 ‘아몰랑주의 문학‘들. <100년의 고독>은 소싯적에 재미나게 읽었는데 보르헤스는 읽다가 하도 어지러워 토할 뻔했음. 여기서 주목. 읽기 더러워 토할 뻔한 게 아니라 하도 골 때려서 어지러워 토할 뻔했다는 거. 보르헤스 팬들은 양해하시압. 푸엔테스의 <아우라>는 아, 멋있음.
빅토리아 시대 문학: 그 시대 최고 작가는 누가 뭐래도 엘리자베스 캐스켈과 조지 엘리엇.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신 디킨스. 나머지는 뽕짝. 내가 흔히 쓰는 말. ˝우라질 빅토리아 시대˝ 운운. 특히 샬럿 브론테는 쓰레기.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호오.
영화로 나온 책들 가운데 <위대한 유산>과 <양철북>은 그래도 책이 훨 남. 일독 권유.
하도 많이 들어본 제목이라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필독서이긴 한데 될 수 있으면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것을 권함. 대가리 터지게 법정소송해서 출판 가능하게 만든 출판사가 바로 펭귄. 거기다가 도리스 레싱이 쓴 서문이 기막힘. 다른 버젼으로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 실비아 크리스텔의 수박만 한 젖가슴이 압권!
흑인문학: 글로리아 네일러가 쓴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강추. 리처드 라이트 <미국의 아들>은 창비 세계문학 넘버 2로 찍은 책. 랠프 앨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은 민음사에서 다시 찍어야 살 수 있는데 요새 나왔나 아직인가는 잘 모르겠음. 생각보다 흑인문학 나름 진지함. <뿌리> 노추.
너무 길어서...: <토지>는 길어서가 아니라 길기만 하고 재미 존나 없어서 비추. <태백산맥> <아리랑>은 괜찮으나, 우리나라 최고의 장편 대하소설은 단연 최명희의 <혼불>. 그러나 아쉽게도 미완성. 해외 장편대하는 <티보가의 사람들>이 대빵인데 민음사가 절판을 해소할 기미가 안 보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미련하게 완독했지만(국일미디어 김창석 역. 번역 죽임) 확실히 과대평가됨. 이거 읽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범으로 독방에 한 1년 수감되는 것. 그거 말고 이책을 첨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사료됨. 나? 나야 며칠 잠깐 미쳤으니까 완독 했음.

잠자냥 2017-02-16 15:11   좋아요 0 | URL
길고 자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양철북>은 그래도 꼭 읽을 생각으로 책은 사놓고 아직 못 봤네요. 조만간 읽을 예정입니다!
조지 엘리엇 소설도 읽어보고 싶고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민음사판으로 읽어버렸네요 0_0;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서 민음사판이랑 펭귄 버전 중에 뭘로 읽을까 고민하다가. 펭귄 버전에서 샤낭터지기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는 거 보고 김이 확 새서..(전 번역하면서 굳이 사투리로 옮기면서 충청도 사투리로 옮기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흑인문학 중엔 <미국의 아들>은 폴스타프 님 리뷰 보고 사두었고요, <보이지 않는 인간> 민음사판도 사실 예전에 사둔 게 있습니다. 다행이죠 ㅋㅋ

장편 중에 <혼불>은 읽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티보가의 사람들>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책이라서 민음사 버전으로 다 갖고 있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0-01-20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 본문 글도 재밌고 폴스타프님 댓글도 재미가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