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타자 - 개정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강지하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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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이 부재하는 현실 가운데서 존재를 넘어 존재 저편에서 참된 현실을 찾아보려 애쓰는 레비나스의 철학. 에로스를 환원할 수 없는 타자의 타자성을 체험하는 장소로 정의 내린 점이 기존 서양철학과 매우 다른 지점이라고 여겨지는데 레비나스의 이 관점에 동의한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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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01 14: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감동적인 것은 넘어설 수 없는 이원성이 존재자들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원성은 끝까지 지울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그 사실 자체로 타자성을 마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타자성을 보존합니다. 육체의 사랑이 그토록 감동적인 까닭은 둘만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타자로서의 타자는 여기서 우리 것notre이 되거나 우리nous가 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레비나스,<시간과 타자>

독서괭 2024-11-01 1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자평도 어렵군요...

잠자냥 2024-11-01 15: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레비나스는 사랑으로 ˝하나되는˝ 나와 너~ 우리~ 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ㅋㅋㅋ 타자를 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동일화(흡수)하는 거에 반대. 타자는 타자대로 존중하자 주의.

건수하 2024-11-01 16:51   좋아요 1 | URL
어렵지만 저도 대체로 동의..

독서괭 2024-11-01 19:58   좋아요 1 | URL
그건 좋네요 ㅎㅎ 일심동체 노노!

coolcat329 2024-11-01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자성 보존! 이것이 레비나스 철학의 특징이군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거죠? 좋은 말이네요.

잠자냥 2024-11-05 14:27   좋아요 1 | URL
레비나스는 타자를 이해하거나 포용하거나 공감하는 것 자체가 주체 자기 나름 방식의 이해(흡수)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보더라고요. 기존의 서양철학이 타자를 또 다른 자아로 인식해서 이해(흡수)하는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에 전체주의가 발현되었다...지적하는데 그런 관점에 동의하게 되더라고요.